▲일본 그림책숲에 자라는 버섯을 다룬 생태자연 그림책.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이만하게 그리거나 엮어내지 못합니다.
최종규
자연생태 이야기를 담은 일본 그림책이 잔뜩 보입니다. 나온 지 스무 해 안팎이 된 책들인데 그림결이 훌륭하고 짜임새도 돋보입니다. <小林路子-森のきのこ>(岩崎書店,1991), <松岡達英-JUNGLE>(岩崎書店,1993), <長谷川哲雄-森の草花>(岩崎書店,1989), <長谷川哲雄-昆蟲>(岩崎書店,1987), <야부치 마사유키-野や山にすむ動物たち(日本の哺乳類)>(岩崎書店,1991). 한 집에서 나온 책으로 보입니다. 출판사에서 자료로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고, 저작권대행회사에서 가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출판사라면 어린이책을 엮는 곳에서 가지고 있었을 터이고, 저작권대행회사라면 이 책이 한국에서 옮겨지도록 다리를 놓을 생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출판사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을 테지요.
<小泉るみ子-秋は林をめけて>(ポプラ社,2001)는 가을날 숲길을 걸어가는 느낌을, 어린이 눈높이에 따라서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빛깔을 잘 골라서 그렸고, 그림으로 건네주려는 이야기가 따뜻하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 삶터를 돌아보건대,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사라져서, 이제는 아이들한테 철에 따른 움직임을 보여주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판에 이러한 그림책이라도 몇 가지 있어서 아이들한테, '봄은 이렇단다, 가을은 이렇단다' 하고 들려줄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날씨가 망가져 버렸기에 이러한 그림책을 보여준들 아이들이 살갗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으면서 부럽고, 반가우면서 아쉽습니다. 이웃나라 일본 아이들은 1980년대에는 1980년대에 걸맞는 좋은 그림책이 있었고, 1990년대에는 1990년대에 알맞는 좋은 그림책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인 요즈음에는 2000년대에 알맞춤한 좋은 그림책이 있는 가운데, 다가오는 2010년대에는 2010년대에 잘 들어맞는 좋은 그림책을 품에 안을 수 있을 테지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요. 2000년대 우리 아이들한테는 2000년대를 잘 담아내는 살뜰한 그림책 하나 품에 안을 수 있습니까. 나라밖에서 펴내는 훌륭하다는 그림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일을 넘어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땅과 물과 바람과 햇볕을 고루 헤아리면서 담아내는 우리 그림책을 엮어내려는 땀방울을 얼마나 흘리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우리 땅이 어떤 모습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우리 땅을 사랑하는 그림책을 못 엮어내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못하니, 우리 얼과 넋을 다독이는 그림책을 못 펴내는지 모릅니다.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그림쟁이는 그림쟁이대로, 글쟁이는 또 글쟁이대로.
아름다운 책 하나 엮어내자면, 먼저 자기 스스로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스스로 아름다움을 갈고닦으면서 자기가 디딘 땅을 아름답게 일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움직임은 사회운동이 될 수 있지만, 자기가 몸담은 일터에서 애쓰는 일이 될 수 있고, 논밭을 일구는 농사꾼 모습으로도 할 수 있으며, 집에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일로도 할 수 있습니다(아이 키우기는 여자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웃집과 사이좋게 어울리면서도 펼칠 수 있고, 물질문명 씀씀이를 줄이거나 멀리하면서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