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고국'에서 자란 '움직이는 민족'의 종교

[서평]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유대교 이야기

등록 2008.06.24 18:58수정 2008.06.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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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겉 그림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겉 그림민종원
▲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겉 그림 ⓒ 민종원

삶이 곧 종교이며 종교가 곧 삶인 민족이 있다. 이들에게 있어 민족의 정체성이란 곧 그들이 믿는 바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종교 울타리 안에서 태어나며, 자라면서 그들의 신앙 수준이 어찌 변하든 이 울타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이 신의 손길 아래 있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으면서도 신과 '대화'하는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한 민족이 있다. 이들은 창조와 구원 사상이 투철하며, 이 창조와 구원은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할 대상도 없는 오직 '한 분'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은혜'이다.

 

신과 영원히 지속될 '계약'을 맺고 스스로 기꺼이 신에게 속박당하길 원하는 민족이 있다. 유일신 사상으로만 보면 이슬람과도 비슷해 보이고, 메시아 사상이나 경전으로 보면 기독교(카톨릭, 개신교 모두 포함)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오직 '한 분'에게만 복종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된 자유'를 선택하는 민족과 그들의 종교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하여 영원한 우월감과 자신감을 보인다. 한편, 이들은 1000년 이상 디아스포라(유랑) 세월을 견뎌왔고 20세기 들어서는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하고 처절한 상처를 얻기도 했다. 이 같은 오래고 깊은 세월을 지나 1000년 이상 꿈꾸어 오던 민족국가 재건을 이루었다. 우리는 그들을 유대인이라 부르며, 그들의 종교를 유대교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의 경전을 토라(Torah)라 부른다.

 

'움직이는 고국'과 함께 움직여 온 민족 종교, 유대교

 

'중동의 화약고'라고도 불리며 20세기 내내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민족 국가, 이스라엘. 유대인이라 불리는 민족이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이라 불리던 땅에 재건한 이스라엘은 '움직이는 고국'인 토라(유대교 경전)를 따라 그들의 불안한 삶을 견고히 다지고 있다. '움직이는 고국'인 토라가 있는 한, 유대인은 불안한 땅 위에 살아갈 이유와 힘을 언제든 찾아낸다. 오랜 유랑 세월 동안 이들은 역사(歷史) 안에서 역사(役事)하시는 '야훼'와 끝없이 대화하며 그들의 역사(歷史)를 만들어왔다.

 

유대인들은 세상 모든 것이 '야훼'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또한 그를 '참된 오직 한 분'으로 믿는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종교는 곧 삶이며, 이 같은 삶이 모이고 모여 다시 역사를 이룬다. 따라서, 국가 이스라엘과 민족 유대인 그리고 종교 유대교는 서로 하나가 된다. 어느 것 하나도 따로 설명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야훼'에게 맞추어진 채 역사(歷史)를 달려 온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다.

 

"이스라엘은 역사·정치적 실체, 민족, 국가, 신앙체계, 사회집단, 문화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은 과연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데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똑부러진 정의가 없다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특정 민족국가의 종교로 태어난 유대교는 이런 복합적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끌어안고 수백 년에 걸친 망명 생활을 헤쳐나가야 했다. 한편으로는 유대적 정체성의 바탕으로 기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통된 역사의식과 전세계적인 민족 결속을 지탱해온 것이다. 유대교는 구원의 미래로 가는 길을 가리킴과 동시에 자신의 역사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다."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들어가는 글, 12~13쪽)

 

민족 구성원이 아니고서는 유대인과 유대교, 그리고 20세기 들어서야 다시 나타난 유대민족국가 이스라엘을 한번에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유대인과 유대교는 태어나면서부터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고서는 결코 다 알 수 없는 대상이다. 그렇다고, 민족종교의 대명사 유대교, 민족국가의 대명사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해 유대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유랑민족의 지팡이' 유대교는 그래서 그 이름부터 '움직임'이 많은 종교이다.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를 보기 전에, 유대인 또는 유대교가 '움직임'이 많은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민족 종교, 민족 국가를 지켜가는 방법을 '움직이는 고국'인 토라에 맞추어 갖추어왔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관통하며 활동하고 역사 자체를 주도하는 '야훼'를 철저하게 신뢰한다. 유럽 내 유대인 3분의2가 사망한 '홀로코스트'를 겪고도 야훼 신앙이 결코 흐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투철한 유일신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토라의 중요성은 더욱 깊어졌다. 끝없는 유랑 세월에 들어가면서, 유대교는 어느덧 토라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그 중요한 제사법을 더 이상 현실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다. 또한, 제사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성전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현대 유대교에서 '움직이는 고국'인 토라를 가르치고 전수하는 회당과 그 지도자인 랍비(유대교 율법학자)가 중요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합리주의에서 신비주의까지 폭넓게 형성된 유대교의 이모저모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겉 그림2. 양장본인 이 책의 겉장을 거두어내고 본 겉 그림. 다윗별이 보인다.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겉 그림2. 양장본인 이 책의 겉장을 거두어내고 본 겉 그림. 다윗별이 보인다.민종원
▲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겉 그림2. 양장본인 이 책의 겉장을 거두어내고 본 겉 그림. 다윗별이 보인다. ⓒ 민종원

'움직임'이 많은 종교 유대교를 핵심 내용만 추려 담다보니, 이 책은 유대교의 핵심을 담은 용어 하나가 여러 장에 걸쳐 나타난다. 3, 4장과 6, 7장이 '거룩한 ○○○'(Sacred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룩함'이란 유대인들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럽고도 무서운 용어이다. '오직 한 분'에 대한 강력한 유대감와 신뢰 관계 때문에, '야훼'의 가장 강력하고도 본질적인 성품인 '거룩함'은 유대인들에겐 당연한 의무이다.

 

이것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따라서 징계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야훼’가 허락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이 응답하여 형성되는 ‘거룩함’은 (오직 은혜로 얻는) 권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대인으로서 하나님 성품을 닮아 ‘거룩함’을 지닌다 해도 그는 영원히 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이다. 유대인은 절대 사람을 신격화하지 않는다. 유대 민족 역사 중 최고 지도자로 볼 수 있는 모세조차 유대인은 신격화하지 않았다.(4장 '거룩한 인물들')


'거룩함'에 대한 유대인들의 인식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역사와 일맥상통하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역사의 기초가 되는 시간은 곧 특정한 사건이 발생한 시기와 어우러져 유대교 특유의 명절과 의식을 이루게 된다. 참고로, 7장('거룩한 시간')에 관련 문헌으로 제시된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안식일: 현대인을 위한 의미> 일부를 보면, 유대인들이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유대교의 의례들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중요한 형식들을 다루는 예술, 즉 '시간의 건축'이라 특징지을 수 있다. 안식일, 월삭月朔, 축제, 안식년, 희년 같은 대부분의 관습은 하루 중 특정한 시간이나 한 해의 특정 계절과 관계가 깊다. 예를 들어 저녁, 아침, 오후에 기도를 드리는 의식이 그렇다. 신앙의 주요 주제들은 시간의 영역 안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을, 이스라엘이 시나이에 섰던 날을 기억한다. 또한 메시아를 향한 우리의 희망은 심판의 날에 대한 기다림이다."(같은 책, 4장, 104)

 

복잡다단한 민족종교인 유대교의 핵심 내용을 추려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유대민족의 기원과 역사를 정리한 1장(기원과 역사)부터 근현대에 이르러 내부 변화를 겪고 다양한 분파를 형성하며 다양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유대교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9장(사회와 종교)까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핵심내용을 정리한 머리말과 본문, 본문 중에서 중요 사항을 다룬 문헌 일부를 발췌한 글,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책 끝에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일반 독자들을 위해 주요 용어 뜻풀이가 있다.

 

긴 유랑 세월을 보내고, 근현대의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유대교는 많이 변했다. 이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마지막 9장에서, 우리는 크게 정통파, 보수파, 개혁파 유대교로 나뉘어 여성권리 향상, 민족 교류, 지구촌 문화 등 민족종교인 유대교를 둘러싼 환경에 대응하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올해 2008년은 이스라엘 건국(1948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때맞춰 번역·출간된 이 책이 유대교 전반을 이해하고 세세한 주제로 들어가는 데 적절한 도움을 줄 것이다. 유대교 핵심 사항을 정리하여 적절한 분량으로 나온 책이 필요하거나, 유대교의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요 개념, 사건 등을 파악해두려 한다면 <유대교-유랑 민족의 지팡이>를 읽어볼 만하다.

 

합리주의 유대교부터 신비주의 유대교까지 유대교는 그 범위가 아주 넓다. 유대교는 역사와 함께 성장한 대표적인 종교이다. 그만큼, 유대교의 역사, 신앙, 삶, 정신세계를 압축한 이 책이 얇아보이는 책 분량에 비해 무거워 보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여, 독자들 스스로 각자 처지에 맞게 이 책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목차(주요 문헌 포함)와 주요 용어 뜻풀이

1. 기원과 역사Origins and Historical Development 디아스포라의 삶의 원리

2. 신관Aspects of the Divine 신앙고백

3. 거룩한 텍스트Sacred Texts 권위 있는 랍비의 미드라시

4. 거룩한 인물들Sacred Persons 마이모니데스의 13조 신경

5. 윤리 원칙Ethical Principles ‘빌니우스의 천재’에게서 온 편지

6. 거룩한 공간Sacred Space 영적 고향을 갈망하며

7. 거룩한 시간Sacred Time 시간의 다양성

8. 죽음과 사후세계Death and the Afterlife 애도자의 카디시

9. 사회와 종교Society and Religion 딸의 기쁨

타나크(Tanahk) : 토라(모세오경), 느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으로 구성된 유대교 성서. '타나크'라는 이름은 각 분류명의 맨 앞 글자를 딴 약칭이다. 구약성서의 바탕이 되었고,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저술되어 있어서 <히브리 성서>라고 한다.

토라(Torah) : 성서의 첫 다섯 권, 즉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한다. 흔히 <모세오경>이라고도 하며,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YHWH : 입에 올리지 못하는 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4개의 히브리어 자음. 신의 인격적인 이름으로, <창세기> 2장 4절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신의 이름은 한글번역에서 '여호와', 공동번역에서 '야훼', 영어번역에서 'Jehovah'로 음역하고 있지만 그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칼 S. 에를리히 지음. 최창모 옮김. 유토피아, 2008.
(원제) Understanding Judaism by Carl S. Ehrlich

이 책은 다문화 시대에서 각 문화권의 근간이 되는 종교를 조금이라도 더 균형감 있게 이해하기 위해 시도된 ‘종교도서관’ 시리즈-영국 DBP(Duncan Baird Publishers)사의 'Understanding' 시리즈를 기초로 함-의 일부로 출간되었다. 시리즈를 이루는 각 책마다 해당 종교의 기원과 역사, 교리, 경전, 문화, 성지․성인 등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이 책 역시 그 같은 기본 구성을 바탕으로 해당 종교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진과 그림, 용어 풀이 등을 담고 있다.

참고로, 주요 용어 뜻풀이는 원서 항목을 기본으로 하여 편집자가 새 항목을 추가하여 만든 것이다.

2008.06.24 18:5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유대교-유랑민족의 지팡이>  칼 S. 에를리히 지음. 최창모 옮김. 유토피아, 2008.
(원제) Understanding Judaism by Carl S. Ehrlich

이 책은 다문화 시대에서 각 문화권의 근간이 되는 종교를 조금이라도 더 균형감 있게 이해하기 위해 시도된 ‘종교도서관’ 시리즈-영국 DBP(Duncan Baird Publishers)사의 'Understanding' 시리즈를 기초로 함-의 일부로 출간되었다. 시리즈를 이루는 각 책마다 해당 종교의 기원과 역사, 교리, 경전, 문화, 성지․성인 등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이 책 역시 그 같은 기본 구성을 바탕으로 해당 종교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진과 그림, 용어 풀이 등을 담고 있다.

참고로, 주요 용어 뜻풀이는 원서 항목을 기본으로 하여 편집자가 새 항목을 추가하여 만든 것이다.

유대교 : 유랑민족의 지팡이

칼 에를리히 지음, 최창모 옮김,
유토피아, 2008


#유대교 #종교 #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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