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를 보면서 가슴 속에 바윗덩이 수 만개가 쌓인 듯한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찌 대명천지에 꽃 같은 20대 아가씨를 쓰러뜨려 두들겨 패고 '비폭력!'을 외치며 길거리에 드러누운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방패로 내려 찍는가. 누가 나이 어린 전경들에게 이리도 잔인한 진압을 하게 하는가. 어찌해서 시민들이 전경들이 손가락이 잘리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는 지경에 온 것일까.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며 월드컵 4강을 이루었으며 최첨단 IT 강국인 우리 조국이 어찌하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2008년 우리 대한민국호는 어디로 가는가. '잃어버린 10년' 폐허 위에서 국운을 융성할 지도자, 즉 대한민국호 선장을 주목해야 어디로 가는지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
6월 19일 대통령 특별기자회견 중,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래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6월 24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에서' '불법폭력시위 엄격 대처'로 바뀐 것이 불과 닷새다.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민심은 천심이라는 위민철학이 백성을 지상의 인간으로 여기고 민심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꾸는 가치관으로 변모한다. 편안에서 엄격으로 이동은 이처럼 하늘과 땅만큼 간극이 크다.
그 후 청와대는 언론사에 '촛불집회'란 용어조차 사용하지 말라며 정부 여당과 함께 총력태세로 강력대응을 연일 천명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말을 일부 발췌해 본다.
6월 26일 어청수 경찰청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80년대식 강경진압을 한 번 써볼까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6월 30일 오전 한나라당 최고회의석상에서 권영세 사무총장은 “유모차의 아기를 방패삼아 물대포를 막겠다는 일부 시위대도 있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정말 부모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제 2008년 이명박호는 화가 난 대통령의 가치관 변모에 따라 파도 흉용한 민심의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버렸다.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더디기만 하는 민심이라는 바다를 버리고 홀가분하게 지상으로 올라온 이명박호는 불도저 엔진을 장착하고서 물 없이도 배는 움직인다는 창조적 실용을 과시하며 질주하고 있는 중이다.
지상에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육지도 있다며 촛불의 바다보다 훨씬 크고 소중한 대선 때 압도적으로 지지해준 보수의 땅이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민들에게 80년대는 악몽이다. 거대한 폭력을 경험하고 몸서리치는 공포와 주검들은 영혼과 밤의 세계까지 철저히 지배했다. 국가의 폭력이 끼치는 거대한 상흔은 황지우 시인의 표현처럼 광주의 금남로를 '주검의 수로'로 변질시켰다.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아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물대포를 막겠다고 나온 젊은 엄마들에게 80년대식 강경진압을 하는 모양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80년 5월의 분노를 되살아나게 한다.
80년 5월 광주는 조국을 넘어 아시아로 세계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의 정신을 전파했다. 5월 영령들의 핏빛 영혼들이 글로벌지구의 가치를 지켜내는 세계의 양심 속에 되살아 났던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80년 5월 광주정신에는 '자유'의 가치가 녹아있고, 어찌보면 당시 시대상황을 돌아보건대 공포적 통제에 맞서 자유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있었다고 본다. '민주'의 가치가 보다 사회적이고 간접적이라면 자유는 보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이다. 헌법 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으니 광주의 시민들은 주권재민의 권력을 알리는 한편 민심을 움직이는 자유의 소중함을 죽음으로 증거했다.
이제 정부는 유모차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며 살내음을 풍기는 아이의 자유마저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통제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촛불집회를 계속 지켜 보면서 어린 소녀들로부터 촉발된 촛불시위가 그토록 역동적이고 창조적이며 발랄하게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고 경외감에 넋을 잃었었다.
“시위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특히 80년 5월을 겪은 광주시민에게는 최첨단의 IT문명과 춤사위를 섞어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외경 그 자체였다. 80년 5월도 프랑스 혁명도 자유를 지키기 위한 대가는 엄청났다. 폭압적인 통제에 대항하기 위해서 때론 목숨을 내놓고 피를 흘려야만 했는데, 우리 디지털 세대 젊은이들은 너무도 달랐다.
어찌 시위가 저리도 발랄하고 창조적이며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인가. 그러나 촛불을 바라보며 조국 대한민국의 젊은 역동성에 감탄만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촛불이 폭도로 몰려 진압되고 있었다.
MB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강부자 고소영 내각을 'Best of best'로 자부하며 출범시켰을 때 실망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가 서울시장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공사며 서울시 교통정책 쇄신 등 개혁적인 요소들이 국정에 반영되어 747공약을 실현시키리라고 기대했었다.
이명박 정부가 '권위와 통제'에 익숙한 보수정권이라는 사실을 깜박하고 시대정신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와 평등, 자유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정권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내놓는 정책들을 보고 경악했다. 하나같이 억장이 무너지고 염장을 지르는 정책들 뿐이었다. 대운하는 접어 두고라도 영어 몰입교육, 영교시 수업, 대기업 중심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고환율정책, 수도권 중심 정책, 대북적대정책, 미국에 편중된 대외정책 등등 어떻게 이다지도 거부반응만 드는 정책만 골라서 내놓는 것일까.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표현대로 국민이 잘 몰라서 소통이 되지 않아서 거부반응이 드는 것일까. 또한 조중동의 표현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데 내가 그들의 말대로 '잃어버린 10년'을 살아오는 동안 소위 '좌빨'이 되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해 합천에서는 '새천년생명의 숲'을 전두환의 아호인 '일해공원'으로 바꾸는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비난이 빗발쳤는데도 합천군수는 강행을 했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일해공원을 지지하는 합천의 촌로 인터뷰를 듣고 절망을 하고 말았다.
“광주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전두환이가 영웅이여!”
합천의 한 고등학생이 '이것은 존중받아야 할 다른 의견이 아니고 틀린 것이다'라고 일갈했는데 어청수 청장의 80년대식 강경진압 운운을 보고 영웅 전두환을 부르짖던 촌로의 말이 음울하게 떠올랐다.
이제 MB에 대한 신뢰를 거두려 한다. 시대정신이며 국운 융성의 새로운 활로가 될 남북공조를 통한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도 이정권하에서는 거두려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와 평등 자유도 이 정권 하에서는 접어두려 한다.
국민을 편하게 모시지 못해 자신을 자책했다는 민주의 가치가 불과 닷새 만에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교육과 경제정책이 서민을 위하기보다는 상위 소수를 위해 집행되고 지방분권, 지방경제 활성화가 아닌 수도권 편중정책을 펴는 것을 보고 평등의 가치도 접었다.
유모차를 몰고 오는 갸날픈 엄마들을 향해 진짜 부모가 맞느냐며 80년대식 강경진압을 하며 집회 시위의 자유를 말살하는 대통령에게 더 이상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쓸어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촛불 속에서 뿜어나오는 희망을 생각하면 조국에 대한 신뢰는 거둘 수가 없다.
진주빛 비둘기 머리모양을 한 촛불을 장대비 속에서도 들고 있는 이 땅의 희망들을 보면서 어떻게 지켜온 조국인데 신뢰를 거둘 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사랑하는 내 조국에게 내가 한 일이 무엇이었던가.
우리의 희망들이 손가락이 잘리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는 80년대로 회귀를 바라보며 이제는 두 눈 부릅뜨고 이 시대를 지켜야 한다.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나서는 이 땅의 맑은 양심들을 이제는 대한민국 모두가 지켜야 할 때다.
2008.07.01 09:5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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