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3단체가 주최한 '촛불, 어디로 갈 것인가'란 주제의 토론회 현장.
송주민
"시청 앞 '촛불 집회'를 통해 다수의 대중들이 벌이는 의사결집 구도는 최상위법인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의 하위 법률인 집시법이 이에 '딴지'를 걸고 있다. 국민의 열망을 결집해야 할 집회주체인 이명박 정부가 오히려 의사결정 창구를 닫고 '산성'을 쌓는 등의 상상도 못할 일을 하고 있다." 교수 3단체(전국교수노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촛불, 어디로 갈 것인가'란 토론회에 참여한 김선광 원광대 교수(법학)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 광우병에 걸려 있다"며 "눈 먼 집시법에 눈을 달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과 획일적인 규율방식을 통해 행정 편의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법이 집시법"이라며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형벌로 다스린다면 국민들은 그 법을 지키려 하지 않거나, 법을 고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함께 토론에 참여한 오건호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은 "촛불 정국을 통해 대한민국의 권력이 대의기구 뿐만이 아니라 서울 광장에도 존재하는 일종의 '이중 권력'이 형성됐다"면서 "이를 수렴할 '좋은 정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쇠고기 의제를 제도정치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거리 권력의 성과를 '나쁜 정치'에 헌납하는 꼴"이라며 '촛불 유지'를 주장했다.
이번 토론회는 3일 오후 1시께부터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진행됐다. 황상익 서울대 교수(의학), 김상곤 한신대 교수(경영학) 등 이날 참여한 8명의 학자들은 향후 벌어질 '촛불 정국'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벌였다.
"집시법이 국민 억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발표에 나선 김선광 교수는 "집권정치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집시법으로 집회 참가자를 소탕하려는 발상은 지난 군사독재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집회의 성격을 폭력시위로 단정하고 배후를 캐는 관행으로 반복된다는 것은 집시법을 악용하여 국민의 표현을 일단 억압하고 보겠다는 통치관행이 존재하고, 그 때마다 집시법은 국가폭력의 제일선에서 역할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집회·시위를 필요악이라고 설정하고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공공의 안녕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법리오해의 측면이 강하다"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고시를 강행하고, 재협상은 불가하다고 되풀이하는 정부에 맞서 '촛불'은 진정한 의미의 공공복리를 구현하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집시법에 눈을 달아야 한다"며 ▲ 불분명한 규정을 근거로 집회를 사전에 심사·승인하는 등 사실상 허가제로 전락한 집시법을 통상적인 신고제로 전환 ▲ 집회신고에 관한 권한은 관할 경찰서장이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중립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별도의 심의위원회 등에 부여 ▲ 경찰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장이 아니라 원활한 소통을 도와 집회가 사고 없이 진행되도록 하는 소극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의 사회를 본 오동석 아주대 교수도 "2000년 이후 개정된 집시법은 경찰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내용 많이 들어가 사실상 개정이 아니라 개악된 것"이라며 "과거 독재정권에서는 권력이 법을 무시하고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했는데, 이제는 법을 이용하여 그들만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집시법을 억압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촛불 권력' 계속 유지해야", "재협상 외에는 답이 없다"이어 '촛불이 만든 '이중권력' 성과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란 주제로 발제에 나선 오건호 운영위원은 "거리에서 획득한 '촛불 권력'을 가능한 한 계속 유지해 신자유주의 시장담론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확장해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은 "좋은 제도권 정치가 정착되는 것은 민주주의 안정화에 매우 중요하나 현재 상황에서는 거리 권력을 좀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쇠고기·교육·의료·공기업·비정규직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감독·평가하는 한시적 네트워크 국민전선으로 '서민공공성 국민연대'를 조직해보자"고 제안했다.
한편 황상익 교수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재협상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광우병이 머지않아 사라지리라고 말하는 것은 희망사항일지는 모르나 객관적 사실은 전혀 아니"라고 전제한 뒤, "위험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축소·은폐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영국의 선례가 잘 보여준다"며 거듭 재협상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