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청장 한진희)이 '촛불시위 주최'에 대한 수사결과에 대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경찰 발표의 핵심이자 '주최'의 주요 혐의점은 "5월 6일부터 불법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주도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런 발표와 함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한국진보연대' 지도부에 대해 "사법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과잉폭력진압만으로도 경찰은 이미 상당 부분 신뢰를 잃었다. 게다가, 검찰 역시 조중동 광고기업 불매운동이나 <PD수첩> 등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누리꾼들이 집중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이 보도자료까지 발표하면서 공개적으로 거론한 '혐의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경찰이 주장하는 '혐의점'이 시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촛불'에 대한 수사기관의 대처 자체가 좌우될 수 있다.
'국민토성' 쌓는 방법 제시한 것이 불법행위?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찰이 주장하는 '혐의점'은 '개그'에 가깝다. '촛불'에 대처하는 수사기관의 관점이나 과잉폭력진압으로 일관한 감정의 근거가 잘 드러나고 있으며, 수사의 명분을 경찰 스스로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쥐어짜내고 있는지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보도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까지도 대단한 발견인 것처럼 발표하면서 '혐의점'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국민토성'이다.
경찰이 '불법행위 기획'의 근거라면서 '국민토성'을 쌓는 데에 필요한 '모래 주머니'에 대한 자료 발표를 보자. 개인적으로, 이것을 '불법행위 기획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래주머니'에 대해 경찰이 '불법행위 기획 증거'라고 주장한 자료는 2가지다.
지난 6월 20~22일에 있었던 '48시간 국민행동'에서 한국진보연대가 "모래주머니를 5m 폭으로 쌓을 경우 모래주머니 13만 5천 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는 점, 그리고 국민대책회의 측이 '명박산성보다 더 높은 국민토성 쌓기' 등을 제안하자는 내용이 포함된 자료다.
경찰은 한 마디로 '국민토성'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민토성'을 불법으로 간주하려면, 경찰의 불법 도로점거 행위의 도구로 사용된 컨테이너 20개, 즉 '명박산성'부터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둬야 하지 않을까?
'국민토성'은 어디까지나 '명박산성'에 대한 대처도구였다. '국민토성'을 이용해 시위참가자들이 한 행위는, 그 토성을 밟고 컨테이너 및 전경버스에 올라가 깃발 몇 번 흔들고 내려온 것이 고작이다. '국민토성'이 경찰 병력을 공격하는 흉기로 작용했다면 모를까, 아니지 않나.
게다가, 경찰의 '국민토성' 관련 주장이 개그인 이유는, 이미 6월 18일에 있던 시청 앞 광장 촛불문화제에서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실장이 이미 "경찰이 다시 광화문 일대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올릴 것을 대비해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들고 나와 '국민토성'을 쌓아올리자"고 제안한 바 있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48시간 국민행동' 이전에 알고 있던 상황이다.
경찰은 한마디로 '제안'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한 것이다. 시민들이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들고 나와 토성을 쌓아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에, 대책회의 측이 대거 모래를 동원한 바 있기는 하다.
하지만, '토성 쌓기' 자체가 불법임을 논하려면 '명박산성 구축' 자체가 불법이었다는 것을 논해야 하며, '토성쌓기 제안'이나 '모래주머니 트럭 동원'이 '불법행위 선동'이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앞의 논점에서 수사기관이 이미 논점이나 법적 관점에서 일탈된 행위를 저질렀기에, 뒤의 논점 자체도 성립이 어렵다. 설마, "제안 자체가 불법행위이며 선동"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아니라고 믿겠다. '명박산성 구축'이 공무 집행이라고 주장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경찰에게, 헌법까지 어겨가면서 공무집행을 핑계로 불법행위를 저지를 권한을 줬을까?
경찰의 진의는 "때리고 쏘는대로 맞아라"
이외에도 경찰의 '개그'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지난달 20~22일간 열린 '48시간 국민행동'에서 한국진보연대는 "대학로에서 시청으로 행진을 시작한다"거나 "국회의원에게 항의 전화와 메일을 보내자"고 주장했으며, "모래주머니를 5m의 폭으로 쌓을 경우엔 모래주머니 13만5천 개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식의 구체적인 행동을 기획했다.
2.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48시간 공동행동 제안'에는 '촛불비옷 제작', '명바기의 일기 공모전', '참가자 행진방향 안내' 등을 제안하는 등 가두행진 계획서가 발견됐다.
3. 한국진보연대는 지난 5월 중순에 '투쟁지침'을 발표하면서 "매일 촛불집회를 열고 특히 주말에는 총력 집중해달라"거나 "정부에서 고시를 강행하면 즉각 규탄활동을 조직해달라"고 했으며, "경찰의 폭력에 항의해달라"거나 "가두선전을 강화해달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4. 촛불집회에서 청와대에 나가자고 주장하고 참가단체들에게 정기적으로 투쟁지침을 해달했기 때문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한국진보연대가 불법적인 촛불집회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로 봐야 한다.
웃다 못해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이 주장을 통해 드러나는 경찰의 주장은 아주 간단하다.
"촛불집회 자체가 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동원되는 모든 행위도 불법이다."
대학로에서 시청으로 향하는 행진도 불법, 국회의원에게 항의전화와 메일을 보내는 것도 불법,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도 불법,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기에 정리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 '행진'에 대해 방향을 안내하는 것도 불법, 비와 물대포에 대비해 비옷을 제작하는 것도 불법, 심지어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에 항의하는 것도 불법이란다.
경찰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은 정책에 대해 국회의원에게 항의하지 말아야 하며,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 섞인 비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에 이견이 있더라도 규탄도 하지 말아야 하며, 방패와 소화기 및 물대포도 따지지 말고 쏘는대로 맞고 항의하지 말아야 한다.
압권은, 경찰 스스로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집시법'을 스스로 위반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시인했다는 것이다. 집시법 11조 제2호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 경계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만 집회가 금지"된다. 시위참가자들이 청와대 앞 100미터 이내까지 근접한 적이 있나?
하지만, 경찰은 그보다 한참 앞선 지점에서 불법 도로점거까지 불사해가면서 스스로 법을 어겼다. 게다가, '청와대 앞 100미터'를 넘어설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는 명백한 증거 없이 "청와대로 나가자"는 말 한마디만으로 '불법집회'를 운운했다. 그 집시법, 과연 누가 어겼을까?
'불법기획 증거' 보도자료 발표? 경찰의 헌법 위반 증거 전시장
위의 근거들을 통해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경찰이 얼마나 많은 헌법을 위반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 및 집회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했으며, 비와 물세례, 그리고 폭력로부터 몸을 스스로 몸을 보호할 권리를 박탈하고자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탈취 행위까지 저질렀던 사례가 있다. 얼마나 많은 법을 위반할 셈일까?
'주최' 측의 불법행위 증거를 잡아내기보다, 경찰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우선으로 보인다. 블로거 'MP 4/13'은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해 아래와 같은 패러디 섞인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신(臣)에게는 아직 12개의 컨테이너가 남아있습니다."
'명바기의 일기 공모전'도 불법행위로 간주한 경찰의 관점에 따르면, 이 농담도 불법일 것이다. 이 농담을 한 블로거 'MP 4/13'과 이 농담을 퍼트린 나도 한번 잡아가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 신고한다. 나는 경찰권력의 수장에 대한 패러디를 퍼트린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알아서 하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7.04 18:0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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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규탄'과 '패러디 공모'도 불법... 경찰의 '개그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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