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대통령이 이사갔으면 좋겠어요"

집으로 가는 길 막힌 청와대 인근 주민들 "5공 때도 길은 막지 않았어"

등록 2008.07.07 10:16수정 2008.07.0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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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벽에 대고 전경들에게 편지쓰는 소녀. "국민들 때리지 말아요! 전경도 국민이잖아요? 그리고 어서 길을 열어요!"
차벽에 대고 전경들에게 편지쓰는 소녀. "국민들 때리지 말아요! 전경도 국민이잖아요? 그리고 어서 길을 열어요!"강기희

6일 오후 전경버스가 줄을 지어 시청앞 광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을지로를 지나 시청앞 광장에 집결했고, 곧 이어 광장에 있던 천막들이 강제로 철거되었다. 서울시와 경찰의 찰떡 호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국민은 '평화' 선택, 대통령은 '폭력' 선택

오늘 광장에는 촛불의 상징인 촛불 교회가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천주교를 비롯해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의 종교 단체가 릴레이로 촛불을 지켰다. 그러나 촛불 든 시민을 지켜주던 성직자들의 마지막은 '천막 강제 철거'였다. 촛불을 밝히고 있던 목회자들도 천막 철거를 막지는 못했다.

5일 서울 도심은 평화 그 자체였다. 경찰의 강제 진압에 이은 무차별 폭력에도 국민들은 '평화'를 선택했다. 40여 만 명이 모인 촛불대행진에서 국민들은 '촛불이 승리했다, 국민이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경찰은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꾸어 '평화의 광장'을 '공포의 광장'으로 만들었다. 광장에 있던 비둘기들이 놀라며 하늘로 날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찼다. 승리를 선언했으나 진 편이 없는 '승리'는 공허했다. 스스로 자축하기엔 국민들이 입은 상처가 너무 컸다.

어젯밤 경찰은 세종로와 태평로 종로 등의 도로를 전경 버스로 막았다. 버스가 움직이지 않게 와이어 줄로 경찰차를 스스로 포박했다. 넓은 대로만 그렇던가. 경찰은 마을 주민들이 다니는 좁은 골목까지 차벽을 설치했다. 차벽 뒤로는 경찰이 숨었고, 숨은 경찰 뒤로 이명박 대통령도 숨었다.

'여기도 막혔네….' 주민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 틈을 찾아 나섰지만 경찰은 한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도 막혔네….'주민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 틈을 찾아 나섰지만 경찰은 한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강기희

"이놈들아, 5공 때도 길은 막지 않았어" 경찰에 항의하는 주민들
"이놈들아, 5공 때도 길은 막지 않았어"경찰에 항의하는 주민들강기희

이명박 대통령과 경찰은 차벽을 치고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 시간 국민들은 성숙했으며 차벽을 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풍물이 거리를 흔들었고, 국민들은 평화의 노래를 불렀다.


이웃 주민들 고통은 나몰라라 하는 대통령

40여 만 명이 모인 촛불대행진은 그렇게 끝나나 싶었다. 그러나 그 시간 경찰의 차벽으로 인해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벽 뒤에 사는 몇 개 동의 주민들이었다. 밤 늦은 시간 주민들이 종로구청으로 몰려들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의 통행이 막힌 게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이놈들아, 서슬퍼렇던 5공 때도 주민들 길은 막지 않았어!"

주민들이 길을 막고 있는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주민들의 외침에도 경찰은 묵묵부답이었다. 경찰은 주민들만이라도 집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들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녁밥을 짓지 못한 주부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챙겨 먹으라고 전화를 했다. 먹을 게 없다고 하자 급한대로 자장면이라도 시켜 먹으라고 했으나 자장면 또한 배달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민들 중에는 산행을 나섰다 돌아가려는 여성들도 많았다. 그들은 배낭을 메고 차벽을 돌며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집으로 가는 길을 막는 게 어디 있어요. 이러고도 국민을 지키는 경찰이라고 큰소리 칩니까?"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지만 마땅한 답을 내놓는 경찰도 없었다. 종로구청 직원이 나와서 이러저리 가보라고 했지만 모든 길이 막혔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지하철을 이용해 보려 하지만 광화문역과 경복궁 역은 정차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나가던 순찰차가 주민들에게 항의를 받는 일도 있었다. 주민 앞에 선 경위와 경장. 그들도 답을 내놓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경 버스를 조금만 움직이면 그들은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었지만 그 일을 책임지고 하는 경찰이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야 국민의 고통 따위를 외면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답답한 것은 주민들. 집을 코 앞에 두고 길이 막혀 들어가지 못하자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욕설이 터져나왔다.

"저만 숨으면 되지 주민들까지 못 들어가게 할 뭐냐! 이 대통령이 이웃으로 들어오더니 주민들까지 애 먹이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차벽 뒤로 숨고, 모인 사람이 적으면 폭력으로 진압하는 대한민국 경찰들. 그 비겁함에 주민들의 원성만 높아졌다. 밤은 깊어갔지만 차벽 뒤에 집을 둔 주민들은 혹여 기어들어갈 틈이라도 있나 싶어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집에는 가게 해줘야 할 게 아니에요?" 종로구청에 몰려가 항의하는 주민들
"집에는 가게 해줘야 할 게 아니에요?"종로구청에 몰려가 항의하는 주민들강기희

 주민들이 항의할 곳이라곤 종로구청 밖에 없지만 구청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주민들이 항의할 곳이라곤 종로구청 밖에 없지만 구청도 답답하긴 마찬가지.강기희

어떤 주민은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대통령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주민에게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집에 가는 길을 막는데 누가 대통령을 좋아하겠어요. 대통령이 당당하다면 대화를 해야지 저렇게 숨는다고 해결되겠어요? 5년 내내 이런 일이 생길 텐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통령이 다른 동네로 이사갔으면 좋겠어요."

국민을 상대함에 있어 낮과 밤, 아침과 저녁이 다른 대통령으로 인해 청와대 주변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아이들 주기 위해 먹을 것을 사가지고 온 주부는 음식이 식는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집에 가는 길 막힌 주민들 "대통령 다른 곳으로 이사갔으면..."

주민 몇을 따라 차벽을 돌아 보았다. 전경 버스로 길을 막은 골목은 한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틈 사이로 방패를 든 전경들이 보였다. 촛불 정국이 이어지면서 경찰이 불법으로 통행길을 막은 게 한 두번이 아니다.

한 주민이 말했다.

"평화? 대통령이 먼저 평화를 깨면서 무슨 놈의 평화. 대통령이 평화에 관한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어요."

도법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순례단'의 슬로건은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다. 국민은 평화를 선택하는데, 대통령이 평화를 깨는 나라. 국민은 평화가 되고자 하는데, 대통령이 평화를 거부하는 나라가 2008년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차벽 차벽 안의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길을 찾아 헤맨다.
차벽차벽 안의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길을 찾아 헤맨다.강기희

#촛불교회 #폭력 #비겁한 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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