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있을 테지만

[헌책방 나들이 168]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등록 2008.07.10 20:01수정 2008.07.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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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책방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 끝자락에 자리한 <골목책방>. 이 헌책방은 1971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이웃한 가게 가운데 이만한 세월 절반만큼이라도 지킨 가게는 거의 없습니다.
골목책방서울 서대문 영천시장 끝자락에 자리한 <골목책방>. 이 헌책방은 1971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이웃한 가게 가운데 이만한 세월 절반만큼이라도 지킨 가게는 거의 없습니다.최종규
▲ 골목책방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 끝자락에 자리한 <골목책방>. 이 헌책방은 1971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이웃한 가게 가운데 이만한 세월 절반만큼이라도 지킨 가게는 거의 없습니다. ⓒ 최종규

(1) 집과 책방

 

집이 싫어 집을 나와 서울에서 사는 동안, 집을 잊을 수 있던 만큼 곁에는 책이 있어 주었습니다. 때때로 어머니한테 얼굴을 비추고, 명절맞이로 살붙이한테 소식을 알리고자 찾아가는 집은, 깊이있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고, 서로가 걷는 길은 참 아득하게 벌어졌습니다. 바라보는 곳이 다르고 좋아하는 대목이 다르며 껴안는 일이 다릅니다. 어린 날 사랑으로 돌보고 믿음으로 키운 어버이일 텐데, 머리통이 굵어지면서 이웃으로 함께 지내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더는 어버이한테 “이게 뭐야? 저게 뭐야?” 하고 묻지 않습니다. 스스로한테 묻고 스스로 풀이를 내놓습니다. 때때로 집식구한테 “이게 뭐야? 저게 뭐야?” 하고 물을 때, 저 스스로한테 흐뭇하거나 기꺼울 만한 풀이말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이러는 동안 자꾸자꾸 더 집하고 멀어지고 집식구하고 떨어집니다.

 

서울에서 살았던 아홉 해를 더듬으면, 날마다 책방 두어 곳씩 다녔습니다. 새책방도 틈틈이 다녔으나 헌책방을 훨씬 자주 다녔고, 새책 장만에도 적잖이 돈을 들였으나 헌책 마련에도 퍽 많은 돈을 바쳤습니다. 동대문구 이문동 반지하집에서 신문배달로 살다가 종로구 평동 나무집 적산가옥으로 옮겨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에는, 걸어서 몇 분이면 찾아갈 수 있는 영천시장 '골목책방'에 뻔질나게 찾아갔습니다. 그렇다고 해 보아야, 이곳 '골목책방'에 하루에도 서너 번씩 찾는 만날 단골하고는 견줄 수 없지만.

 

비가 오면 비내리는 소리와 냄새를 맡으면서 찾아가고, 눈이 오면 눈내리는 빛깔과 추위를 느끼면서 찾아갑니다. 햇볕 맑은 날은 부러 쨍쨍거리는 길로 걸어서 갔고, 흐린 날은 구름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걸어서 찾아갑니다. 그러다가 서울을 떠나고 살림을 충주 산골짜기로 옮겼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려서 고향동네에 뿌리내린 이즈음, 영천시장 끝자락 '골목책방' 찾아가기는 좀처럼 어렵습니다.

 

오늘 이맘때 어떠어떠한 책이 들어오고, 아저씨는 수레를 끌고 부지런히 책을 나르며, 아주머니는 손님맞이를 이래저래 하면서 조그마한 자리에 옹크려 앉아서 ‘책읽는 사람이 자꾸 줄어드니 걱정이네’ 하는 한숨을 쉬시겠지, 하고 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기를 그치고, 전철 타고 한 번 휭하고 찾아갔다가 다시 돌아와도 되련만, 혼자서 살아가는 몸이 아니기에 때를 맞추고 날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전철길 시간을 헤아린다면, 가고 오는 데에 네 시간. 짧지 않은 품과 시간을 들여야 하니, 전철이 있어도 가깝지 않은 길. 요 둘레에서 다른 볼일이 있으면 이 일을 핑계 삼아서라도 책방 둘레에서 보자고 하며 들를 텐데.

 

책방 앞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옆, 독립문 바로 코앞에 자리한 이곳. 그냥 지나가면 헌책방인 줄도 알기 어려운 곳. 대충 둘러보면 마땅한 책이 안 보인다고 하는 이곳.
책방 앞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옆, 독립문 바로 코앞에 자리한 이곳. 그냥 지나가면 헌책방인 줄도 알기 어려운 곳. 대충 둘러보면 마땅한 책이 안 보인다고 하는 이곳.최종규
▲ 책방 앞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옆, 독립문 바로 코앞에 자리한 이곳. 그냥 지나가면 헌책방인 줄도 알기 어려운 곳. 대충 둘러보면 마땅한 책이 안 보인다고 하는 이곳. ⓒ 최종규

 

(2) 읽는 책이니 사는 책

 

한동안 자주 찾아가다가, 삶터가 바뀌면서 뜸하게 찾아가게 되면, 책꽂이에 꽂힌 책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제 품에 안기지 못한 책이 무엇이었을까를 헤아리면서, 여러 해 동안 꼼짝 않고 있는 책을 느끼고, 물갈이하듯 바뀐 책 갖춤새를 돌아보곤 합니다.

 

모처럼 '골목책방'을 찾아왔습니다. 달라진 모습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다만, 헌책방 옆 가게는 비었습니다. 금은방 자리인데, 금은방 장사가 힘든가 보군요. 이 빈 자리에는 어떤 가게가 들어올는지.

 

흐르는 땀을 훔치며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구경합니다. <고독한 자에게 보내는 키스>(프랑소아 모리악/오증자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77)라는 책이 보입니다. 사 두면 읽어낼 수 있을까 망설여지는 가운데 옮긴이 말을 읽어 봅니다.

 

.. 그 시기의 아름다운 전원생활과 독실한 신앙생활이 작가로서의 그의 정신적인 기반을 형성하는 내면의 젖줄이 되고 있다 … 그가 구원에 대한 종교적인 확신을 작품 속에 피력하게 되기까지는 그 자신, 종교에 대한 많은 회의와 비판을 거듭했다고 말하고 있다 ..  (옮긴이 말)

 

누구나 자기가 겪어낸 일을 새기고 떠올리고 되뇌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구나 싶습니다. 즐거움이 가득했던 사람으로서는 즐거움을 듬뿍 쏟아낼 터이고, 슬픔이 가득했던 사람으로서는 슬픔을 듬뿍 쏟아낼 테지요. 종교에 몸을 바치면서 살아왔다면, 이분으로서는 종교 이야기를 깊이있게 파헤치면서 선보일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 온몸을 바치면서 살았다면, 이이로서는 정치 이야기를 샅샅이 살피면서 뽐낼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살림이 넉넉한 채 살았다면, 넉넉한 이웃 삶을 선보일 테고, 어릴 적부터 가난하게 살았다면, 가난한 이웃 삶을 보여줄 테지요. 부자로 살았으면서 부자인 줄을 몰랐다면, 이 모습 그대로 세상을 보았을 테며, 가난하게 살았으면서도 가난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 모습 그대로 세상을 품는 눈을 보여주겠지요.

 

일본 만화책이 뭉텅이로 보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갖고 있다가 내놓았구나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 소개가 되었나 안 되었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틈틈이 헌책방에서 찾아보면서 마음이 넉넉해지는 <小さな戀のものがたり (10)>(미쯔하시 치카코, 立風書房, ?)과 <小さな戀のものがたり (2)>(미쯔하시 치카코, 立風書房, 1970 첫/1979 87쇄)을 봅니다. 10권은 판권이 떨어져서 몇 쇄를 찍은 판인지 모르는데, 2권 판권을 보니 아홉 해 만에 87쇄라는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군요. 모르지만, 1970년대 여학생 잡지에 이 만화가 ‘몰래 옮겨지며 소개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키 작은 아가씨가 풋풋한 사랑을 키워 가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1980년대에 만화영화로도 선보여 텔레비전에서 수없이 틀어 주었음에도 오래도록 숱한 사람들을 눈물 찡하게 하는 만화 <新谷かおる-エリア88 (15)>(小學館,1984 첫/1985 8쇄)을 집습니다. 나라안에는 <에어리어88>로 소개된 책. 만화책은 모두 23권으로 이루어졌고, 만화영화와 만화책 끝마무리가 다릅지만 둘 모두 ‘아프게’ 끝맺습니다. 석유재산을 둘러싸고 일어난 ‘내전’에 ‘용병 전투기 조종사’로 고용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며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화책으로 스물세 권이지만, 때때로 집에서 이 만화를 한 번 손대면 끝까지 다 보아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게 되곤 합니다.

 

그림결은 스물 몇 해가 지났음에도, 아니 서른 해가 거의 다 되었음에도 지금 보아도 빠지지 않을 뿐더러 훌륭하기만 합니다. 빈틈없이 그려내기도 했지만, 빈틈없는 그림결을 넘어서는 ‘만화쟁이 얼’이 곳곳에 흘러넘칩니다. 아쉽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제 주머니가 가벼워서, 이 15권 한 권만 겨우 집어들고 다른 책은 얌전히 내려놓아야 한다는 대목. 이렇게 일본판으로 만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건만.

 

셈대 자리 텔레비전이 켜 있는 조그마한 셈대 자리. 안쪽 자리에도 책으로 가득합니다.
셈대 자리텔레비전이 켜 있는 조그마한 셈대 자리. 안쪽 자리에도 책으로 가득합니다.최종규
▲ 셈대 자리 텔레비전이 켜 있는 조그마한 셈대 자리. 안쪽 자리에도 책으로 가득합니다. ⓒ 최종규

 

손바닥책으로 나온 ‘新書版 한국문학전집(삼성출판사)’이 상자에 담긴 채 몇 가지 보입니다. 짝을 맞춰서 만나기 쉽지 않고, 비록 손때도 많이 타고 겉이 낡았지만, 이만한 판으로나마 보기도 어려운 터라, 끈으로 묶여 있는 대로 장만하기로 합니다.

 

아버지 사는 집에는 이 책이 아주 깨끗하게 있기는 있는데, 아버지 집에도 다 있지 않고, 또 아버지 책은 아버지 책이니, 제가 볼 책은 제 책대로 따로 장만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1회 배본] : <운현궁의 봄>(김동인), <驟雨>(염상섭), <금삼의 피 (상ㆍ하)>(박종화), <적도>(현진건)

[2회 배본] : <幼戱>(나도향), <태평천하>(채만식), <고개를 넘으면 (상ㆍ하)>(박화성), <화분>(이효석)

[5회 배본] : <초적 (상ㆍ중ㆍ하)>(최인욱), <일상의 모험 (상ㆍ하)>(임옥인)

[6회 배본] : <백조 산으로 (상ㆍ하)>(유주현), <빛의 계단>(한무숙), <회색의 단층>(박용구)

[7회 배본] : <태양의 계곡>(손소희), <그 여자의 연인 (상ㆍ하)>(박연희), <임진강의 민들레>(강신재), <원형의 전설>(장용학)

[10회 배본] : <여기수 (상ㆍ하)>(요유권), <서울은 만원이다 (상ㆍ하)>(이호철), <사금파리의 무덤, 전야제>(서기원)

 

(3) 곁달린 책

 

책싸개 1973년쯤 만들어서 쓰지 않았을까 싶은 책싸개. 삼성출판사 한국문한적집 손바닥책 가운데 한 권은 이 책싸개로 싸여 있었습니다. 이 책이 1972년에 첫 판을 직고 1973년에 3쇄를 찍었으니, 예전 책임자는 아마도 1973년에 책을 사면서 이 하나만 싸 놓았구나 싶어요.
책싸개1973년쯤 만들어서 쓰지 않았을까 싶은 책싸개. 삼성출판사 한국문한적집 손바닥책 가운데 한 권은 이 책싸개로 싸여 있었습니다. 이 책이 1972년에 첫 판을 직고 1973년에 3쇄를 찍었으니, 예전 책임자는 아마도 1973년에 책을 사면서 이 하나만 싸 놓았구나 싶어요.최종규
▲ 책싸개 1973년쯤 만들어서 쓰지 않았을까 싶은 책싸개. 삼성출판사 한국문한적집 손바닥책 가운데 한 권은 이 책싸개로 싸여 있었습니다. 이 책이 1972년에 첫 판을 직고 1973년에 3쇄를 찍었으니, 예전 책임자는 아마도 1973년에 책을 사면서 이 하나만 싸 놓았구나 싶어요. ⓒ 최종규

‘新書版 한국문학전집’은 끈으로 묶여 큼직한 한 덩이로 있었습니다. 이 책을 사려니, '골목책방' 아저씨는 그냥 통째로 다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사이에 곁달린 책을 덜어내자니 번거로우셨으려나. 어쩌면, 굳이 빼내고 책방에 놓아도 그만 다 가져가도록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셨으려나. 사이에 곁달린 책을 대충 살펴보았을 때 그다지 눈길이 가는 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재미삼아서 한 번쯤 들여다보아도 되겠지, 생각합니다.

 

<古壺>(박영준, 정음사,1970), <사랑은 애달프게>(샤를르 루이 필립/송면 옮김, 범우사, 1972), <새 기르기>(대광출판사, 1974), <에치켓 선생>(오소백 엮음, 명문당, 1969), …… 문득,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옮겨진 나라 밖 문학이 2000년대에도 읽힐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2000년대 오늘날 옮겨지는 나라밖 문학은 2030년에도 읽힐 수 있으려나요. 그때는 또 그때대로 새로 나오는 나라 밖 문학이 소개되려나요. 문학도 시도 다른 책들도, 그때그때 흐름을 타고 바람을 타면서 잠깐 읽혔다가 버려지게 되나요. 책이란, 이렇게 한 번 읽고 버리는 종이조각일 뿐인가요.

 

곁달린 책 사이에는 1975년에 5학년이 된 ‘고기복’이라고 하는 어린이가 쓴 일기책 두 권도 있습니다. 오, 1970년대 국민학생 일기라.

 

[1975년 1월 3일 월요일 날씨 맑음] 나는 오늘 친구들과 함께 돌로 집을 지었다. 매우 재미가 있었는데 돌담이 무너질까 봐 매우 위험했었다.

 

[1975년 1월 15일 수요일 날씨 맑음] 나는 오늘 눈가리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술레를 2번 했는데, 내 친구 동생은 여러 번 당했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 동생 대신 술레를 대 주었다. 그랬더니 친구 동생은 고맙다고 했다.

 

[1975년 1월 22일 수요일 날씨 구름과 해] 오늘은 대나무로 스키를 탔다. 어제 눈이 많이 와서 아이들은 비탈길 꼭대기에서 대나무 스키를 타고 달려내려오면 매우 재미있다. 이번 겨울에 눈이 어제 온 것과 합하면 겨우 2번밖에 오지 않아서, 나는 눈이 굉장히 반가왔다.

 

서울에 살던 아이입니다. 어느 동네인지는 모르겠는데, 동네 비탈길에서 대나무를 깎아서 스키를 만들어 즐기기도 했군요. 눈가리기 놀이를 하면서 나어린 동생이 자꾸 술래가 되니 자기가 술래를 해 주기도 하고.

 

[1975년 3월 4일 화요일 날씨 맑음]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쥐가 뒤덧에 걸려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다. 어제 저녁에 아버지께서 놓은 쥐덧에 걸려 죽은 것이다. 눈뜬 채로 죽은 쥐를 보고 나는 동정심이 간다. “저 더럽고 못된 징그러운 쥐도 생명이 매우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쥐가 불쌍하다고 생각된다.

 

[1975년 3월 5일 수요일 날씨 비] 오늘 (밤) 저녁에 어머니께 야단을 맞았다. 공부를 안 한다고. 어머니께 야단을 맞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무조건 꼬치꼬치 처들면서 말씀하신다. 나는 안만 잘하려고 하여도 어느 것이 잘하는 일이고, 어느 것이 공부하는 것이지 모르겠다. 잘해도 꾸중, 못해도 꿍중하니 나는 어쩜은 좋은가.

 

책방 아저씨 손님이 뜸할 때면 텔레비전도 보고 담배도 태우고 신문도 읽는 <골목책방> 아저씨.
책방 아저씨손님이 뜸할 때면 텔레비전도 보고 담배도 태우고 신문도 읽는 <골목책방> 아저씨.최종규
▲ 책방 아저씨 손님이 뜸할 때면 텔레비전도 보고 담배도 태우고 신문도 읽는 <골목책방> 아저씨. ⓒ 최종규

예전 어린이 일기를 뒤적이면서 그때 삶 한 자락을 살짝 엿봅니다. 제 어릴 적에도 집안에 쥐덯을 놓았습니다. 학교에서도 쥐를 잡는다며 곳곳에 쥐약을 놓았고, 낮은학년 아이들이 쥐약을 건드리지 않도록 단단히 이르기도 했으며, 가슴에 “쥐를 잡자”라고 써넣은 쪽지를 붙이고 학교에 다녀야 하기도 했습니다. 가슴에 다는 쪽지는 늘 바뀌었는데, 이 쪽지를 안 붙이고 다니면 교사나 주번한테 걸려 꿀밤을 맞거나 얼차려를 서거나 행동발달사항 점수가 깎이거나 했습니다.

 

[1975년 8월 4일 월요일 날씨 맑음] 오늘은 보병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독일군과 미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일군의 탄알이 모자라기 때문에 미군에게 지고 말았다. 나는 미군이 독일군에 이기는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미군이 이기는 것이 좋았다.

 

저도 어릴 적에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를 자주 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영화는 으레 전쟁영화였고, 독일군이 미군한테 끔찍하게 깨진다는 줄거리였거든요. 그런데 우리들은 독일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미군이 왜 전쟁에 끼어들었는지, 전쟁통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저 ‘전쟁 일으킨 놈은 나쁜 놈’이고, ‘전쟁 끝낸 분은 훌륭한 분’이라고만 달달 외우듯 머리에 새겨넣었을 뿐입니다.

 

[1975년 8월 13일 수요일 날씨 맑음] 나는 오늘 누나와 대청소를 했다. 구석구석 먼지를 없애고 신문지를 차곡차곡 차리는데 반공자료 사진이 있어서 숙제로 할려고 했는데, 누나가 먼저 맡아서 할 수 없이 누나가 가지게 되었다.

 

[1976년 1월 14일 금요일] 오늘은 내 버릇 중에서 하나를 고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소변을 볼 때 항상 요강에서 소변을 볼 때가 일수였다. 그래서 아버지께도 꾸중을 들은 때가 많았다. 나는 결심했다. 다음부턴 아버지께 꾸중도 듣지 않고, 나도 부지런한 생활을 할 수게도록 노력하고 소변은 항상 화장실에서 볼 것을 결심했다. 그러면 아버지께 꾸중도 듣지 않을 거야.

 

몸에 바람이 들어 드러누운 할아버지는 요강을 썼습니다. 요강은 어머니가 자주 비웠지만 저도 요강을 비우곤 했습니다. 요강을 비우면서 할배 오줌은 참 지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는, 늙고 아픈 사람 오줌에 지린내 짙을밖에 없음을 헤아리기 어려웠겠지요.

 

(4) 책읽는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이렁저렁 책을 고르니 주머니에 남는 돈이 한푼도 없습니다. 맞돈은 다 떨어지고, 집에 갈 찻삯은 교통카드로. 옆지기가 고른 몇 가지 책도, 값에 맞추며 덜어냅니다. 가방에 꾸역꾸역 책을 담고, 안 들어가는 책은 비닐로 싸고 여밉니다.

 

'골목책방' 아주머니는, 날이 갈수록 장사가 안 되어 힘들다고, 당신 두 늙은이야 먹고살 수는 있지만,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지 않겠어요?” 하고 걱정입니다. 책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고, 헌책을 사러 다녀도 마땅한 책이 나오지 않는답니다. 앞으로 “이 나라가 어쩔려고 그러는지 몰라” 하는 근심이 이어집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책 한 번 임자를 만났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와서 다시 새로운 임자를 기다리는 책들입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책한 번 임자를 만났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와서 다시 새로운 임자를 기다리는 책들입니다.최종규
▲ 우리를 기다리는 책 한 번 임자를 만났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와서 다시 새로운 임자를 기다리는 책들입니다. ⓒ 최종규

 

그래도, 독립문에서 가까운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만 가도 책손이 바글바글합니다. 다만, 교보나 영풍을 찾는 책손 숫자가 바글바글하다지만, 지난날과 견주면 그 바글바글도 좀 수그러든 숫자가 아니랴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몸소 다리품을 팔아서 책을 장만하기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서 인터넷 나들이로 책을 사서 집에서 받아보는 사람이 무척 늘었습니다. 이러하니, 인터넷장사를 않는 옛 헌책방들은 책손 구경하기 훨씬 힘들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바쁜 데다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힘을 움켜쥘 자리에 올라서고자, 책하고는 담쌓는 사람이 틀림없이 늘어납니다. 대학교육 받는 이는 끝없이 늘어나지만, 대학교육에서 책읽기는 과제물 내기에서 그치기 일쑤이고, 삶을 가꾸거나 다잡는 책읽기로 뻗어나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책을 찾거나 읽는 사람은 늘 있고, 언제까지나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책을 손에 쥐는 사람들이 펼치는 책이 자꾸만 비슷비슷해집니다. 우리들 책꽂이에 꽂히는 책 가짓수는 차츰 좁아집니다. 우리 삶을 읽어내어 우리 삶을 더 낫고 슬기로운 쪽으로 일구자는 책은 나날이 따돌림받습니다.

 

땀흘려 다리품을 팔아서 긴긴 세월에 몸으로 삭여낸 이야기를 담아내는 책에서 멀어지고 있기에, 또 땀흘려 다리품을 팔아서 긴긴 세월 몸으로 삭여낸 이야기책을 찾고자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땀흘려 다리품을 팔아서 긴긴 세월 몸으로 책을 읽고 삭여내려는 사람이 줄기에 이렇게 될까요. 책상 앞에 앉아서 몇 가지 이야기를 짜깁기하듯 엮어낸 책을 그럴싸하게 껍데기를 씌우고는 ‘베스트셀러’를 꿈꾸는데다가,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멋모르고 집어드는데, 집어드는 매무새도 책상 앞에 앉아서 셈틀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기에, 책읽는 사람은 꾸준히 있어도 책마다 다 다르게 깃든 빛줄기를 헤아리는 사람도 자꾸만 사라지고 말까요.

덧붙이는 글 | -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 02) 313-5066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10 20:0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서울 독립문 〈골목책방〉 / 02) 313-5066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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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골목책방 #책읽기 #독립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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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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