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한국의 부녀자들
.. 이또오 히로부미는 한국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계략으로써 어떻게 하면 한국의 부녀자들을 허물어 놓을 수 있을까 하고 부심한 것 같다 .. <정신대 실록>(임종국 엮음, 일월서각,1981) 12쪽
“한국 통치(統治)를 용이(容易)하게 하기 위(爲)한”은 “한국을 쉽게 다스리려는”으로 손보고, ‘계략(計略)’은 ‘꾐수’나 ‘꿍꿍이’로 손봅니다. “부심(腐心)한 것 같다”는 “속을 썩인 듯하다”나 “근심이 깊었던 듯 싶다”나 “골치를 앓았구나 싶다”로 손질합니다.
┌ 한국의 부녀자들 (x)
└ 한국 부녀자들 (o)
“한국의 남자”가 아닌 “한국 남자”입니다. “한국의 여자”가 아닌 “한국 여자”입니다. “한국의 사람들”이 아닌 “한국사람들”입니다.
어딘가 어설프다 싶으면, 어떻게 적어야 올바른가 헷갈린다면, 임자말 자리에 다른 낱말을 넣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이런 자리 저런 자리에 쓰는 말투를 살피다 보면, 올바르거나 알맞는 말투를 우리 스스로 너끈히 찾아낼 수 있습니다.
ㄴ. 시골의 밀어냄
.. 그러나 보다 최근에는 도시의 유인보다는 시골의 밀어냄이 더 큰 요인이다 .. <맬서스를 넘어서>(레스터 브라운/이상훈 옮김, 따님,2000) 79쪽
‘보다’라는 말은 이렇게 글 사이에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더욱”처럼 적어야 맞습니다. 앞에서 ‘도시의 유인(誘引)’이라 쓰니, 뒤에서도 ‘시골의 밀어냄’처럼 쓸 테지요. 둘 모두 알맞지 못한 말입니다. 앞말부터 올바르게 고쳐야 뒷말도 올바르게 고칠 수 있습니다.
┌ 도시의 유인 → 도시에서 끌어들이다
│
└ 시골의 밀어냄 → 시골에서 밀어내다
‘밀어내다’를 ‘밀어냄’처럼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토씨 ‘-의’를 붙여쓸 생각으로 이렇게 적었다면 얄궂은 말이 되고 말아요.
┌ 도시의 유인보다는 시골의 밀어냄이
│
│→ 도시에서 끌어들이기보다는 시골에서 밀어내기가
│→ 도시에서 끄는 힘보다 시골에서 미는 힘이
│→ 도시에서 끌어들인다기보다 시골에서 밀어낸다고
│→ 도시에서 끌어들인다기보다 시골에서 밀어낸다
└ …
보기글을 통째로 고쳐써도 괜찮네요.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도시에서 끌어들이는 힘보다 시골에서 밀어내는 힘이 더 크다”쯤으로. 알맞게 쓸 낱말, 말투, 말씨, 말법 모두 두루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ㄷ. <군중과 권력>의 저자
.. <군중과 권력?의 저자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 속에서 이러한 기적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이명원, 새움,2004) 41쪽
‘저자(著者)’는 우리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말은 ‘지은이‘입니다. “지은 사람”을 뜻하는 말은 ‘지은이’잖아요. 그렇지만 글쓰는 일을 하는 분들 입에서는 ‘지은이’도 ‘글쓴이’도 잘 나오지 않고, ‘저자’라는 말만 튀어나옵니다. 때로는 ‘필자(筆者)’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기적이 가능(可能)해진다”는 “기적이 이루어진다”로 손봅니다.
┌ <군중과 권력>의 저자
│
│→ <군중과 권력>을 지은
│→ <군중과 권력>을 쓴
│→ <군중과 권력>을 펴낸
└ …
낱말만 다듬어서 “<군중과 권력>의 지은이”처럼 적는 분도 제법 많습니다만,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군중과 권력>을 지은 엘리아스 카네티”라든지 “<군중과 권력>을 써낸 엘리아스 카네티”로 다듬어 주면 더욱 좋아요. 우리가 마음을 조금만 더 기울여 준다면, 한결 살갑고 깨끗하며 알뜰한 말과 글이 두루 퍼질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13 13:4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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