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동굴.계곡의 얼음동굴은 한 여름에도 영상 3도까지 내려간다.
강기희
덥다. 아니 덥다고 한다. 해발 500m의 산촌에 살고 있는 탓에 도시인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숨 막히는 더위를 경험하기란 어렵다. 도시인들은 지금 입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진다고 난리다. 머리 꼭지에서 열기가 아른아른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는 이도 있다. 그런데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더 뜨겁단다. 제 정신으로 사는 게 용한 요즘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원시림을 간직한 정선 가리왕산 계곡으로 오라!"
기가 턱턱 막힐 듯한 더위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 듯 흐르고, 나오는 말이 곧 짜증이란다.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끌고 다니는 게 힘겹단다. 냉골 같이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5분만 x-ray를 찍어도 몸에 한기가 도는 그런 시골집 황토 구들방이 그립단다.
그래서이다. 지친 도시인을 위한 계곡 하나를 소개하련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있는 계곡인데, 시끄럽지 않아 좋고 편히 쉴 수 있어 더 좋은 곳이다. 좋은 곳이라 혼자만 혹은 친한 사람에게만 알려주고 싶은 계곡이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더위로 고생하는 터라 혼자만 즐길 수 없어 소개한다.
계곡의 이름은 회동계곡. 계곡을 빚어낸 것은 가리왕산(1561m)이다. 가리왕산은 옛날 맥국의 갈왕이 이 산으로 피신해 살았다 하여 갈왕산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리왕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산인 셈이다.
가리왕산은 작은 지리산이라 할 만큼 품이 넉넉하다. 산은 높되 악하지 않다. 산나물이 지천이고 약재 또한 많이 자생한다. 피나무와 주목 등의 나무가 원시림을 이루는 곳이라 계곡도 여럿 만들었다. 회동계곡은 가리왕산이 빚은 여러 계곡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계곡은 깊고, 흐르는 물은 차고 맑다. 주변의 풍광은 사철을 가리지 않고 아름답다. 그늘진 곳에 앉아 있으면 굳이 발을 물에 담그지 않아도 서늘하다. 현재 계곡은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관리한다. 그래서 다른 계곡보다 쾌적하고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