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스토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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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과거사 문제. 한국과 일본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문제들이다. 과거와 관련된 분쟁거리가 전혀 없는 국가가 있을까마는, 나라마다 그 정도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한 분쟁의 산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청산되거나 정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무시되거나 잊히는 일도 종종 있다. 이러한 역사 문제는 현재를 사는 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기자가 발트 3국의 <오마이뉴스> 통신원 일을 한 지도 5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발트 3국에 관한 여러 기사를 썼지만, 그중에서도 꾸준히 기자의 관심을 끈 사안들은 역사 청산에 관한 문제였다.
발트 3국에서는 특히 2차 세계대전에 대한 평가 및 소련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동화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이방인'들 문제가 그러한 역사 관련 현안이었다. 그 문제들은 잊을 만 하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기자를 끌어당겼다.
작년 4월 말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며 청동군인동상을 철거한 후 많은 경제적 손실을 입었던 에스토니아의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0.4%에 그쳤다.
그것이 러시아의 경제적 보복에 의한 것인가 하는 논란도 있다. 물론 명확한 물증이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상황을 볼 때 그러한 심증을 무시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이는 발트 3국 같은 작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강대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똑똑히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옛 소련의 역사적 정통성에 정면 도전한 작은 나라 라트비아의 다큐멘터리그런 와중에, 올해 라트비아에서도 작년
에스토니아의 청동군인동상 철거처럼 러시아의 속을 대놓고 긁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5월, 1930년부터 라트비아가 독립할 때까지 벌어졌던 옛 소련의 학정과 학살, 숙청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상영된 것.
<소비에트 스토리(감독 에드빈스 슈노레)>라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얼핏 알려지긴 했지만 전모가 전해지지는 않았던 사안들을 역사적 기록과 연구, 살아있는 증언을 통해 대담하게 재구성해 관객에게 쏟아냈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제시한 옛 소련의 범죄 관련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932년 겨울, 소련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모든 물자 공급을 중단하고 현지의 음식도 몰수해 그 해 겨울 동안에만 자그마치 7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을 아사시킨 사건.▲ '아우슈비츠의 해방군'으로 자처하는 러시아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러시아 내부로 도망쳐온 유대인들을 자진해서 나치 독일에 넘겨준 사실.▲ 나치 독일을 빼닮았던 소련의 일부 정책 및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오늘날 러시아의 정치인들과 젊은이들. ▲ 발트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시베리아 강제 유형 및 생체실험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옛 소련의 반인륜 범죄 관련 내용을 이 영화는 정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자주 등장하는 끔찍한 영상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려야 하기도 했다.
옛 소련의 역사적 정통성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영화가 '폭풍'을 불러올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소비에트 스토리> 개봉을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은 5월 17일 모스크바에 있는 라트비아 대사관 앞에 모여 감독의 인형을 불태웠다. 러시아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 영화가 사실에 전혀 근거하고 있지 않거나, 알려진 사실도 왜곡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감을 표현했다.
러시아 언론이 펴는 반론의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을 영화에서 억지로 편집해 뒤섞어놨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 대기근 사건에 사용된 영상 중 상당수가 그와 상관없는 다른 자료들이라며 감독을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