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새벽 서울 종로1가 한국수출보험공사 앞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누리꾼과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과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며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유성호
[11신 : 20일 새벽 0시 5분]물대포 경고 위협이 의미 없는 '폭우' 1000여명 시위대 "님을 위한 행진곡" 태풍 '갈매기'가 다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다. 그래서 물대포도 소용이 없다. 경찰의 방송차에선 물대포 살수 경고 방송이 끊어졌다.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폭풍이 오는 길목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독도는 우리 땅' 등의 노래를 부르거나 "이명박은 물러나라", "언론탄압 중단하라", "한나라당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YTN 쪽에서 온 시위대가 합류했다. 인도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시위대를 합치면 1000여명쯤 된다. 이들은 경찰이 물대포 대신 쏘아준 눈이 부신 조명을 받고 있다.
[10신 : 19일 밤 11시 30분]3초간 물대포 쏴... 경찰 "폭죽 사용 말라" 경고 3초간 물대포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곧바로 멈췄다. 시위대가 폭죽을 계속 사용한 것에 대한 경고 의미다.
경찰 방송차량에서는 "불꽃이 튀어 사람 눈에 들어갈 경우 실명 위험이 있고 건물이나 나무에 튈 경우 화재 위험이 있다"면서 "폭죽 사용을 멈추라"고 말했다. 또 방송차량의 여경은 "여러분이 폭죽을 사용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며 "경찰은 절대 여러분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충돌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시위대는 40여분 이상을 모여 토론을 했다. 다음 아고라 회원들과 전대협 출신 시민들과의 설전이었다. 다음 아고라 회원들은 "그동안 종로구청 입구, 청계천 입구에서 한 시간 이상을 스크럼을 짜고 본대를 보호했더니 갑작스럽게 후퇴하는 이유가 뭐냐"며 "결국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본대 숫자마저 줄지 않았냐"고 격렬히 항의했다.
이에 전대협 관계자는 "이미 오후 4시부터 전대협은 게릴라 시위를 하겠다고 공지했고 지금까지 오신 분들은 거기에 동의를 한 것"이라면서 "계속 이렇게 논의만 하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말했다.
결국,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 아고라 회원들은 "전대협도 대책회의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고 전대협 출신 인사들은 "우리가 못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쇠파이프를 한번 들면 여기 있는 학생, 할머니, 아이들이 다친다"고 반박했다.
그래서 100여명의 시위대는 전경들과 1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고, 50여미터 후방에 500여명의 시위대가 연좌하고 있다. 인도쪽으로 올라간 시민들도 많다.
한편 행진을 시작한 1000여명의 시위대는 숭례문을 거쳐 YTN 앞에서 10여분간 머물렀다. 300여명으로 줄었다. 이들은 "구본홍은 물러나라" "최시중은 물러나라" "YTN 힘내세요"라는 8박자 구호를 계속 외쳤다. 이들은 원래 여의도쪽 한나라당 당사 앞쪽으로 행진할 예정이었으나, 숭례문쪽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9신 : 19일 밤 10시 50분]2000여명은 종로서 대치... 1000여명은 명동 행진 "당신들의 뒤에서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만들고 있다. 선량한 시민들은 어서 해산하라." 경찰이 경고방송을 통해 이같이 내보내자 시위대는 일제히 "우-"하며 야유를 보냈다.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은 여전히 대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 1000여명의 시위대는 전대협 깃발을 앞세우고 시청 쪽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도 전경에 막히자 이들은 명동 쪽으로 2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행진하고 있다.
밤 10시 30분께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 있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폭죽을 날렸다. 이로 인해 시위대 간 고성이 오가는 등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폭죽 사용을 말리는 시민들은 "확실히 하늘을 향해 쏴야지 어중간하게 사람에게 겨누어 쏘는 것은 위험하다"고 몰아붙였고, 폭죽을 사용했던 시위대는 "또 여기서 앉아서 시간만 죽일 것이냐"며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경찰은 선무방송을 통해 "폭죽을 사용하는 이들을 모두 검거할 것이며 이후 폭력시위를 하는 이들도 모두 검거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전대협 출신 시민들과 누리꾼들이 19일 저녁 서울 종로3가 도로 전 차선을 점거한 채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과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8신 : 19일 밤 9시 50분]물대포 차 대기중... 경찰 해산방송 시작 전대협 출신 시민 100여명, 스크럼 짜고 "20보 앞으로"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시위대는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폈다.
거리에서 연좌농성하던 시위대는 밤 9시 30분께 일어났다. 그리고 광화문 사거리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맨 선두에는 전대협 출신 시민 등 100여명이 스크럼을 짜서 전진했다. 이들은 '전대협 진군가'를 부르고 있다. 경찰의 진압에 대비해 하얀색 헬멧을 쓴 사람도 잔혹 보인다.
이에 앞서 깃발을 든 일부 시위대는 각 대표들을 뽑아 앞으로의 행진 방향과 전경 진압시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전대협 출신 시민들이 선두에 서서 경찰을 막기로 협의했다.
여전히 거리에는 5000여명의 시위대가 있다. 이들은 한국수출보험공사 건물 앞쪽에서 잠시 멈춰섰다. 200여m 앞쪽에는 전경들이 서 있다. 그 뒤쪽에는 물대포 차량과 선무방송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밤 9시 50분께부터 경찰의 살수 예고방송이 시작됐다. 경찰은 "경찰 통제선을 침범하거나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살수를 하겠다"며 "기자들과 노약자들은 비켜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함성을 지르며 20보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7신 : 19일 저녁 8시 40분]5000여 시위대 합창... 전대협 진군가, 임을 위한 행진곡 아스팔트 위에 '전대협 진군가'가 울려 퍼졌다. '헌법1조' 노래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대체됐다. 시위대는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며 아스팔트 위를 누비고 있다. 과거 최루탄의 거리에서 울려 퍼졌던 구호다.
저녁 8시 50분께부터 시위대는 종로3가역 근방 도로 전 차선을 점거한 채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고립됐던 시위대와 아스팔트 위를 질주했던 시위대가 합쳐져 5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광화문 사거리 쪽 도로를 뚫기 위해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로 뛰어들어 질주했지만, 곧바로 경찰에 가로막혔다. 여기저기 막혀 있어 경찰과 숨바꼭질하듯 도로를 헤집고 다녔다. 결국 종로3가 쪽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동지가' 등 6월 항쟁의 거리에 울려 퍼졌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잠시 그쳤던 비가 조금씩 흩뿌리고 있다.
"뉴스 보기 무서울 정도"... 피켓에 담긴 '촛불 시민'들의 분노 |
독도 문제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흔들기', 그리고 교육감 선거까지 최근 굵직한 이슈들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일까? 오늘 모인 촛불 시위대가 들고 온 피켓의 내용도 매우 다채롭다.
"2MB는 언론 장악 음모를 즉각 중단하라" "PD 수첩에 대한 표적수사를 즉각 중단하라" "낙하산 사장 선임 국민들이 막아낸다" "일본 군국주의 반대한다" "두발자유 해주는 교육감을 강추합니다" "7월 30일 우리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킵시다" "어청수 네 이놈, 형이 손 좀 봐줄게" "무능독재 이명박 민생경제 다 죽인다"
광명시에서 10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온 이 아무개(41)씨는 "사실 촛불을 들 일이 너무 많고 한 곳에 집중할 수 없어 정신없는 상황"이라며 "정말 뉴스를 보기가 무서울 지경인데 정부 측의 계략이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인천에서 온 김석운(36)씨는 "솔직히 이런 정권이 너무 싫다"며 "지금과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는 참가 시민이 줄더라도 국민 주권 실현을 위해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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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차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전대협 출신 시민들과 누리꾼들이 게릴라식 시위를 하기 위해 종로1가로 나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과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6신 : 19일 저녁 8시 20분]1500여명은 일사분란... 1000명은 도로에 '고립' 시위대오를 이끄는 시민이 주먹을 치켜들면 1500여명의 시위대열은 일제히 멈춰 섰다. "뛰어"라고 외치면 일제히 아스팔트 위를 뛴다. 그리고 "속보"라고 외치면 빠른 걸음으로 도로를 헤집고 다닌다. 과거 운동권이 하던 방식 그대로다.
미리 종로 쪽으로 거리행진을 나섰던 시민들은 을지로 3가 입구를 지나 종각 쪽으로 이동 중이다. 이들은 일사불란하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모든 시위대가 일제히 합창을 했다. 구호를 외쳐도 마찬가지다.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1000여명의 시민들도 저녁 8시께부터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원래 종로에 나가 있던 시민들과 거리에서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무교동 사거리 쪽에서 방패를 들고 길을 막았다.
이들은 다시 뒤쪽으로 방향을 틀어 을지로 1가 방면으로 행진했지만, 곧바로 전경이 막아섰다. 이들은 도로에서 고립됐다. 이들은 "이명박은 물러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외치고 있다. 이중 절반 이상은 촛불을 들었다.
▲제73차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전대협 출신 시민들과 누리꾼들이 게릴라식 시위를 하기 위해 종로1가로 나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과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5신 : 19일 저녁 7시 40분]'종로통' 도로 전차선 점거... 경찰은 급하게 '차벽' 설치 "독재 타도" "타도 이명박" "해체 한나라"
저녁 7시 20분께부터 청계광장의 일부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며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전대협', '안티 MB', '다음 아고라'의 깃발이 앞장섰다.
시민 600여명이 종로거리 쪽으로 이동해 전 차선을 점거한 채 광화문 사거리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은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 쪽에 전경들을 배치하고 그 뒤로 3대의 차량을 이용해 '차벽'을 설치하고 있다. 도로를 점거한 시민들은 1000여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청계광장에서도 1000여명의 시민들이 차분하게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는 무대차도, 무대도 설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관계자의 사회로 진행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노래를 부르거나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주경복 후보 "30일까지 촛불 끄지 말아달라" |
이날 촛불 문화제가 시작되기 바로 전인 저녁 7시경,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촛불 시민 앞에 섰다. 주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장시기 동국대 교수(영문과)는 "촛불 현장에 나와 발언을 할 수 있는 후보는 오직 주경복"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주 후보는 "나는 잘난 것이 없다. 다만 이명박 정권의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막아내고, 국민을 위한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나왔다"며 입을 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초복이다. 29일은 무슨 날? 중복이다. 그리고 30일은? 경복이다! 초복·중복·경복 이렇게 복 터지는 날 우리는 다 같이 서울시 교육청에서 오늘보다 더 즐거운 축제를 열자.
잘 사는 아이나 못 사는 아이나 똑같이 행복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왜 강남 사람들은 1천만원 짜리 과외를 받는데 강북 사람들은 100만원 학원비도 못 내서 벌벌 떨어야 하나. 모든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주경복이 교육감의 권한을 갖고 이를 책임지고 싶다.
나 혼자는 힘이 없다. 서울 시민들이 함께 해줘야 한다. 여러분들이 모두 주경복이다. 오는 30일, 모두 함께 '이명박 교육'을 심판하고 서울의 교육을 바꾸자. 30일까지 촛불을 끄지 말아 달라. 30일 꼭 함께 촛불을 들고 시청부터 교육청까지 당당하게 행진하자."
주 후보 지지발언에 나선 장시기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가 들어서자마자 미친 교육정책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것이 영어몰입교육"이라며 "왜 영어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책임을 진다고 난리인가? 대학 영문과 교수들은 다 굶어 죽으라는 말인가"라고 크게 외쳤다.
주 후보 대변인이자 참교육학부모회에서 활동 중인 박범희씨도 "주 후보는 교육개혁의지가 투철한 사람"이라며 "비록 휴가철이지만 꼭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교육 정책을 되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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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차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전대협 출신 시민들과 누리꾼들이 미국산 쇠고기 장관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유성호
[4신 : 19일 저녁 7시]청계광장에 모인 1000여명의 시민..."아직 촛불을 드는 까닭" 거리행진을 한 시민들은 오후 6시께 청계 광장에 도착했다. 시청광장이 차벽으로 굳게 봉쇄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의쌰- 의쌰-" 구호를 외치며 들어오자 청계광장에서 한우시식회에 참가했던 시민들과 주변 인도에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오후 6시 40분 현재 시민들은 청계광장 소라기둥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주변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 등을 먹고 있고, 미리 준비한 음료수 등을 서로 나누어 먹고 있다. 청계광장에 모여 있는 시민들은 1천여명 정도다.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선거차량도 청계광장에 들어와 있다. 주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청계광장으로 들어오는 시민들에게 선거팸플릿을 나눠주고 있고, 선거차량에서는 '헌법1조' 노래를 개사한 선거운동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현장 인터뷰] "내가 아직도 촛불을 드는 이유" |
"내가 전대협 깃발을 들고 나온 까닭" 김세랑(37)씨
"촛불을 처음 든 것은 10대 학생들이고 이후 여성과 주부들은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30∼40대 남성의 참가는 부진했다. 여성들과 10대 학생들이 경찰의 진압에 적극 대응할 때도 30∼40대 직장인은 주변인에 불과했다. 그래서 남성 직장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을 상징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 전대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가 나온 것은 10∼20대 어린이의 목소리를 30∼40대가 밀어주자는 뜻이다.
일부는 촛불이 꺼지고 있다며 더 이상 촛불을 들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역사의 길을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도,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도, 김영삼 정부 때도 많은 이들이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며 그렇게 해서 바뀌지 않는다고 말렸다. 그러나 결국 해내지 않았냐. 87년 6월 항쟁은 단 열흘이 아니라 그동안 계속 시민들의 힘이 응축돼 쏟아진 것이었다."
"이 대통령 스스로 퇴진운동 전도하고 있다" '선영아 사랑해' 클럽 황안나(30)씨
"촛불은 얇고 넓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좁고 깊게 변하는 단계다. 지금 형국은 이렇다. 관리인이 강도에게 열쇠를 맡겼다. 그런데 강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집주인이 강도를 잡고자 하는데도 관리인이 공무방해죄라고 소리치는 형국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통령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이명박 대통령 탄핵은 심하지 않느냐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퇴진운동을 전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제 휴가철도 끼어 있기 때문에 촛불이 거국적으로 모이기는 힘든 것 같다. 불매운동, 조중동 폐간운동 등을 통해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세력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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