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지난 5월 2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을 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은 순하디 순하고 착하디 착한 양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특히 6월 19일 거의 눈물이라도 흘릴듯한 표정으로 토해내던 그의 특별회견 모두 발언은 처연한 느낌까지 주었다.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수없이 제 자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 순하고 착하게 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이 며칠 지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양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본래 얼굴이 양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가 국민을 하늘 같이 섬기겠다며 사죄 방송을 하던 때 그는 양의 탈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같은 얼굴 모습의 변화 때문일까 6월 10일 "만의 하나라도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경찰에 당부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폭력시위 엄격대처' 지시를 내리면서 이른바 공안정국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튿날 쇠고기 장관고시가 강행되더니 촛불시위 현장에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연행되고, 5공화국 이후 처음으로 "의원이면 다냐"는 호통과 함께 국회의원들이 경찰에게 맞고 연행되었다. 속상하는 대목이다.
버젓이 임기가 남아있는 KBS 사장에 대해 "나가달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해서 수사가 시작되더니 안전한 쇠고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MBC PD 수첩에 수사의 칼날을 들이댔다. 이런게 바로 언론 목조르기다.
인터넷은 공안정국의 중요한 통제 대상인 듯하다. 촛불집회가 그렇게 큰 호응을 얻을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는것일까. 촛불시위를 생중계하면서 여론에 불을 당긴 '아프리카 TV' 나우콤 대표가 구속됐다. 다른 죄목이 있었으나 사실은 촛불집회 인터넷 생중계 때문에 괘씸죄가 적용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나라당은 인터넷 여론이 과열되면 게시물 게재를 차단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검토하는가 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실명제 강화를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도 촛불집회를 비난하는 일부 신문들에 대한 광고 불매 운동과 관련해 네티즌 20명을 출국금지 시키는 별난 수사를 벌이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네티즌들이 "소비자운동"이라며 "나를 잡아가라"고 항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때문에 이번 수사는 '검찰의 조중동 도와주기 수사'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고 했다.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그동안 뼈 빠지게 노력해 이 만큼이라도 온 것이 세계적 IT 강국 덕분임이라는 명성과 평가도 무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엄청나게 속상하는 대목이다.
바로 이 네티즌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기업을 찾아가 광고 중단 운동을 한 네티즌을 고소하라고 권유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검찰은 부인하고 있으나 대기업의 회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기업에서는 압력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촛불집회 강경진압과 관련해 한국에 달려온 국제 앰네스티 조사관은 시위를 벌이다 구속된 사람들에 대한 접견요청 조차 법무당국에 의해 수차례 거부됐다고 항의했다. 이것이 지금 이 나라 공안정국의 인권수준이다.
검찰이 명예훼손 고소 사건에서 피고소인이 아닌 고소인에 대해 영장까지 발부받아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실도 드러났다. 고소인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보좌진들이고 피고소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의원, 이재오 전 의원등이다. 이 대통령과 안상수 의원 등은 무혐의 처리됐으나 이재오∙박계동 전 의원등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약한 촛불에 맞서 눈부라리며 가스통 들고 거리로 나선 시위대도 있었다. 공안정국 무소불위요, 군사통치 시절까지 연상되는 으스스한 대목이다.
20년 전 8월 '청산해야 할 군사 문화'라는 칼럼을 한 월간지에 실었다가 정보사령부 현역군인들로부터 회칼 도륙(좌측 대퇴부 길이 34cm, 깊이 3~4cm)을 당한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이 판국이 결코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더구나 이명박 정권은 민주화의 기틀을 확실히 다진 지난 10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단정, 잃어버리고 지워버리려 애쓰고 있다. 이 정부, 이 정권은 그래서 지난 10년 이전의 권위주의 시절에 대해 짙은 향수를 느끼고 있는건 아닌지, 때문에 지금 공안정국이 빚어지고 있는건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 전방위적으로 뻥뻥 구멍이 뚫리고 있는 부실 무능외교도 바로 대책도 없이 지난 10년을 부정하는데서 비롯된 사건들이다.
한∙미관계 복원한다고 나섰다가 쇠고기파동을 겪으며 오히려 미국과 서먹해졌고, 순진하게도 '과거를 덮으며 미래지향적인 외교를 펼친다'고 나섰다가 일본에 독도사태로 뒤통수를 맞았다.
실속도 없이 한∙미동맹 강화 외치다 중국을 불편하게 했으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려다 대북관계에서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자초해 외톨이가 돼버렸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와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데 이명박 정권은 뒤늦게 구걸하듯 식량제공을 제의했다가 퇴짜를 맞았고,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 총에 피살됐다는 보고를 받고도 국회연설을 통해 교류를 제의했다가 역시 거절을 당하는 망신살을 겪었다. 그래서 민초들은 불안하다.
정치란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 했던가.
경제문제로 민초들은 지금 눈물을 철철 흐리고 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의 ‘경제살리기’ 공약을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기름 값 원자재 값 난리로 어려워진 여건도 잘 안다.
다만 경제 이외의 문제에서라도 속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제발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제발 더 이상 속상하고 속 뒤집어지는 일을 좀 만들지나 말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홍근 기자는 전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냈으며, 20년 전 월간지에 기고한 '청산해야 할 군사 문화'라는 칼럼 때문에 정보사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2008.07.21 15:31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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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잃어버린 10년' 이전의 정권이 그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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