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르는 중 소수력 발전소를 관심있게 둘러보는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민종덕
<전태일 평전>을 내겠다고? 그는 목숨을 걸었다내가 박승옥 친구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아마 1980년 겨울쯤 일 것이다. 80년대에 청·장년기를 보낸 의식있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떠 올리면 참으로 암울하고, 무엇에 짓눌려 답답하고 춥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바로 그 암울한 색깔의 혹한의 추위 속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 잡혀가 10여 일간 군인들로부터 두들겨 맞아가면서 조사받고 나온 뒤였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신군부는 70년대 민주노조를 폭력적으로 해산시키기 위해 노동운동가들을 군·경합동수사본부에 연행해 조사를 하고 이어 민주노조 파괴를 시작했다. 그 첫번째 대상이 당시 내가 간부로 있던 청계피복노조였다.
나는 신군부의 민주노조 파괴 책동에 어떻게라도 저항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동수 선배의 안내로 당시 우리 사무실과 가까운 곳 충신동의 '형성사'라는 출판사를 찾아갔는데, 여기에서 박승옥을 처음 만난 것이다. 박승옥은 나와 같은 1953년생이었다. 거기에다 그 엄혹한 군부독재시절 뜻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친구가 되었고 동지가 되었다.
그 당시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상태에서 형성사 편집부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박승옥의 도움을 받아 청계피복노조 강제해산에 대한 투쟁을 감행하고 난 뒤 곧바로 수배상태가 됐다.
그리고 1981년 8월경이었을 것이다. 당시 학생운동, 청년운동, 재야운동 등으로 전국에 지명수배 된 몇몇 사람들이 인천 구월동에서 아파트를 얻어 모여 살았는데, 그곳에서 다시 박승옥을 다시 만나게 됐다. 그 때 그 집에서 사는 사람 중 유일하게 수배중이 아닌 사람이 박승옥 친구였는데 '돌베개'출판사 편집장이었다.
나와 박승옥이라는 친구가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인연의 끈을 맺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전태일'이었다. 나는 1974년 전태일의 일기를 보고 그의 뜻을 따라 평화시장에 가서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박승옥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 현존하지 않는 전태일은 무수한 인연을 맺게 해 주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질 것이다.
1982년 겨울쯤에 박승옥 친구는 한 가지 큰일을 도모할 결심을 하고 그것을 나한테 이야기 한다. 그 엄청난 일은 바로 <전태일 평전>을 출판하겠다는 것이다. 그때의 사회 분위기는 80년 광주학살의 피도 채 마르지 않은 전두환 군부독재의 철권통치시절 아닌가? 이런 분위기에서 감히 <전태일 평전>을 공식출판 하겠다니….
돌베개출판사 편집장였던 박승옥의 의지는 매우 강했다. 출판사 편집장만 의지가 강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장인 임승남씨도 전태일 평전을 공식 출판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전태일 평전을 공식 출판을 한다면 자신들이 징역을 가고 또 그로 인해 출판사가 문을 닫는다 해도 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 기꺼이 이 일을 하고야 말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로서는 그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이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나 혼자 간직하고 있던 비밀,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저자가 육필로 쓴 전태일 평전 원고의 사본에 대해 말을 하였다. 그리고 저자가 누구인지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고 난 뒤, 그 복사본 원고를 돌베개출판사에 넘겨주었다.
<전태일 평전> 그 후, 한국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그때 돌베개출판사는 국내에서는 출판이 불가능해 일본에서 먼저 출판된 전태일 평전을 입수해서 그것을 가지고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1983년 돌베개출판사에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평전>이 출판됐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전태일 평전>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판매금지 서적이 됐고, 소지하는 것조차 불온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태일에 관한 글을 비공식적인 인쇄물에 의존해 읽었던 대중에게 공식 출판된 <전태일 평전>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80년대 이후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개개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