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막혔다. 뚫릴 기미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막힌 담은 더 견고해지고 있다. 무엇이 남북관계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선언이 냉전 잔재와 이념이라는 견고한 벽을 허물었지만 이명박 정권은 단 몇 달 만에 과거로 돌려버렸다.
아세안지역포럼(ARF) 의장성명에서 10․4 선언 부문 삭제는 국제 사회와 북한에게 10․4 선언을 공식 부인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남북관계는 말 한 마디로 한 순간에 뒤틀리는데 김정일 위원장 수표(사인)까지 한 10․4 선언을 국제회의성명에서 삭제했으니 막힌 담의 강도는 더 견고해졌다.
막힌 담을 허물 방법은 전혀 없을까?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산파 역할을 수행했으며,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역을 거쳐 현재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쓴 <피스메이커>에서 작은 답을 얻을 수 있다.
<피스메이커>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20년 동안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탈냉전, 북한핵문제, 남북관계에서 일어났던 긴박했던 순간 순간에 직접 참여했던 자신의 기록을 담았다.
임 전원장은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과정에서 남쪽에서 유일하게 남북고위급회담의 전 과정에 협상대표로 참여하면서 경험한 일들, 2000년 6·15 첫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과 이후 특사로서 북한을 오갔던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외교․안보라인이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스 메이커>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 자서전이 아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에서는 지난 20년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분단 극복의 탈냉전과 통일을 향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사료이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2000년 첫 정상회담 이후도 남북 관계가 순탄하지 않았다. 2002년 6월 29일 일어난 ‘서해교전(연평해전)’,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실재를 여부를 두고 일어난 ‘제2차 북핵위기’는 미국 조지 부시 미국 정권과 맞물리면서 한반도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런 위기 상황이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끝까지 평화 기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의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중요한 방법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핫라인’ 개설을 위한 대화를 소개했는데 <피스 메이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 기회에 두 정상 간 비상연락망(핫라인)을 마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정일위원장은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 정상 간 비상연락망은 ‘국민의 정부’ 마지맏 날까지 계속 유지하면서 남북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핫라인의 개설이야말로 정상회담 최대의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112쪽)
남북관계는 외교적으로 정상관계가 아니다. 충돌위험이 언제나 상존하는 상황에서 남북간, 정상간에 핫라인이 개설되어 있다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확전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임 전국정원장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핫라인 개설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한 것은 현실에서 드러났다. 2000년 8월 남쪽 언론사 사장단 방북을 비롯해 9월 김용순 비서의 남쪽 방문, 2002년 6월 서해교전, 10월의 2차 핵위기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미 추진, 2002년 4월과 2003년 1월 임동원 특사 방북 등 주요 현안은 모두 이 핫라인을 거쳤다.
2002년 6월 서해교전이 일어났을 때 예를 보자.
이튿날 아침 일찍 북측은 핫라인을 통해, “이 사건은 계획적이거나 고의성을 띤 것이 아니라 순전히 현지 아랫사람들끼리 우발적으로 발생시킨 사고였음이 확인되었다”며 “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긴급통지문으로 보내왔다. (637쪽)
핫라인이 없었다면 6·15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2차서해교전과 2차 북핵위기 사태같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평화기조보다는 대결 국면으로 갈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15공동선언은 정상회담 직전에 이뤄진 임동원 국정원장의 특사 방북과 2002년 4월 특사 방북을 포함해 고비 고비마다 이 핫라인을 통한 두 정상 간의 ‘대화’에 의해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이명박 정권에서도 핫라인이 개설되어 있다면 금강산 피격 사건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공식, 비공식 모든 라인이 끊어져버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금강산 피격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가져갔지만 10․4 선언 내용과 맞물려 문제만 더 악화시켰다. 남북이라는 특수관계에서 대화창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피스메이커>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문민정부 시설 대북 정책이다.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1차 북핵 위기(1994, 봄)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조문사건으로 남북관계는 노태우 정부가 체결했던 남북기본합의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문민정부가 군사정권보다 남북관계를 더 경색시켜버렸다.
임 전국정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첫 만남 과정을 소개하면서 문민정부 시절 파괴되었던 남북관계를 아쉬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나는 이날의 첫만남에서 핵문제에 대한 그의 예리한 분석력과 판단력, 그리고 명쾌한 해결책에 큰 감명을 받았다, 어느 전문가들보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데 놀라는 한편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아, 이런 분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되었다면 지금쯤 남북관계는 큰 진전을 이룩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315쪽)
<피스메이커>는 세계 4강대국 사이에서 한반도가 평화와 공존을 위하여 남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임을 확인시켜준다. 신뢰가 있어도 살얼음을 걷는 것 관계다. 그러므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고,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인내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이명박 정권 외교 안보라인이 <피스메이커>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읽지 않았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남북관계는 대결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평화정책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다.
대결과 억압으로는 북한 설득할 수도, 붕괴시킬 수 없다. 북한 붕괴론은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존재했던 미국과 한국의 보수 강경파들의 바람이었지 현실은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 외교 안보라인의 기본 생각은 남북 관계를 대결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냉전시대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이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냉전시대는 피스키퍼로 살았지만 냉전이 해체된 이후 피스메이커로 살아가고 있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피스메이커>는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통일은 목표인 동시이 과정이다. 미․북 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과정에 병행하여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및 군비통제를 추진하면서 우리는 통일에 접근해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통일지향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의 통일상황’부터 실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일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742쪽)
남북 관계가 기로서 섰다. 대결과 압박이 아니라 신뢰와 인내, 상호 존중을 통하여 평화체제를 방향으로 잡고 가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피스메이커>에는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반드시 새겨야할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덧붙이는 글 | <피스메이커> 임동원 지음 ㅣ 중앙 books l 2만5000원
2008.07.29 11:17 | ⓒ 2008 OhmyNews |
|
피스메이커 -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5년, 개정증보판
임동원 지음,
창비, 201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공유하기
<피스메이커>, 외교·안보 라인에 추천하고 싶은 책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