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있는 태아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출산용품을 분홍색으로 맞춰야 하는지 아님 파란색으로 맞춰야 하는지는 예비 부모들에겐 암묵적인 의무다. 의사가 '파란색으로 준비해두세요' 식으로 넌지시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은근슬쩍 말해주는 의사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안 될 일이다.
1987년 제정된 '태아 성(性)감별 고지 금지 조항'에 의하면 의료인이 태아의 성감별을 목적으로 산모를 진찰하거나 진찰 중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본인이나 가족에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 이 법이 제정된 이유는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한 여아 낙태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21년 후인 2008년 7월 31일, 헌법재판소는 태아 성감별 고지 금지가 현 시대에 맞지 않는 조항이며 부모의 알 권리를 방해한다는 측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전부터 위헌 논란이 되었던 태아 성감별 고지 금지 조항. 부모들은 낙태가 어려운 임신 후반기까지도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없어 답답함을 보여 왔다. 이미 남아 선호 사상은 사그라졌고 임신 28주가 지나면 낙태 자체가 위험해져 여아 낙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예비부모들의 입장이다.
아들, 딸을 가려 낳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한 인터넷 상담소를 발견했다. 1975년 부산에서 처음 상담을 시작했다는 이곳은 현재 대구에 오프라인 상담소를 두고 있단다.
상담소 왈, 처음부터 과학적으로 아들, 딸을 가려 낳을 수 있다면 태아 성감별은 필요 없을 거란다. 아이의 성별을 가려 낳는 것이 인구 억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상담소의 주장의 전제는 '우리 사회에 남아 선호 사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딸을 낳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부부도 적지 않으나 아들을 낳는 법을 물어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직도 태아의 성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 혹시나 하고 들어간 상담 게시판에 최근까지 문의글이 올라와 있음을 보았다.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가족의 계획대로 낳아야 하는 것이 부부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아들이 둘이나 있어 딸을 원한다는 한 부부는 다시 아들을 갖자 어쩔 수 없이 유산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 사례를 통해 생명의 탄생보다 태아의 성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태아 성감별 고지가 금지 조항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법 개정의 범위가 전면개정이 아니라 임신 중절이 불가능한 시점에 한해 태아 성별 고지를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 새롭게 개정될 법안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모를 일이다. 1987년 이후 성감별 고지 금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부 의료인을 통해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던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가 계속된다면 어떤 법을 만들더라도 태아 성감별 고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법이 금지하고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태아의 성을 미리 알 수 있던 상황에서 법의 지속도, 개정도 효용 없는 셈이다. 태아 성감별을 필요 없게 만드는 방법은 위의 인터넷 상담소의 주장처럼 아들, 딸을 미리 가려 낳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성별에 상관없이 건강한 아이를 낳아 잘 길러보겠다는 부모들의 마음가짐이 성감별을 무의미하게 할 것이다.
2008.08.01 20:44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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