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0교시
이다미디어
우리는 안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늘 안고 살아간다. 시험을 봐도, 답사를 가도, 미술관을 가도 아는 만큼 점수 얻고,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주술에 걸린 채로 주눅 들어 살아간다.
과연 그럴까? <미술 0교시>(이다미디어 펴냄)의 저자 정효찬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눈높이를 같이하고 다른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고개 끄덕이는 게 아는 것이라면 예술을 바라볼 때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는 만큼 보일 수도 있지만, 몰라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게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원시 미술 - 문자 등장 이전의 소통 수단문자는 청동기 시대 등장했다고 전해진다. 문자 등장의 배경이 지배자가 피지배자들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 누가 냈는지를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는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면서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이 출현하는 시대였다.
문자가 등장하기 전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동굴이나 바위에 그리고 새긴 그림을 통해, 진흙이나 석회암으로 만든 조각품을 통해 표현했다. 이들을 우리는 원시미술이라 부른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라스코 동굴 벽화, 반구대 바위그림,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원시 미술을 통해 우리들은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 종교, 사회상 등을 추정해본다. 그런 추정이 진실에 얼마나 접근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생각으로 당시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런 의견이 모여서 지식이 되고 아는 것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렇게 굳어지는 지식은 과연 얼마나 진실에 접근하고 있을까? 저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한 학생에게 메모를 주고 메모의 내용을 문자나 숫자가 아닌 그림으로 칠판 위에 표현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