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보는 할머니의 고백

"얘들아 ,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살자"

등록 2008.08.07 09:57수정 2008.08.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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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녀석은 제 엄마 출근하던 이른 시간, 배가 아파 오늘은 유치원에 못 간다고 선언하였다. 큰 녀석을 간신히 챙겨 보냈다. 어젯밤까지 멀쩡하더니 왠일일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울다가 칭얼거리다가 간간히 자다가 하면서 계속 배를 문지르라 한다. 어제부터 폭염이라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꾸물거리는게 비가 오려나 보다. 그래서 더 덥다. 오전에 가까이 사는 딸이 전화를 했길래 “웅이가 배가 아파 유치원에 못 간단다”했다. “어지간히 할머니 힘들게 하네...”. 딸이 걱정을 한다. 점심때쯤 쫓아온 딸과 밥을 간단히 챙겨먹었다. 웅이는 흐느껴 울기까지 하며 배가 아프단다. 딸이 녀석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간다. 6살 된 작은 녀석은 업으면 허리가 휘청한다. 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웅이는 병원에서도 계속 누워 울기만 한다. 병원에 잠깐 다녀오는데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다. 힘들 때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짜증스럽다.

 

아이들 어멈은 언제 오려는지. 오늘 같은 날은 좀 일찍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아픈 거 보고 나갔는데도 전화조차 없다. 그렇게 바쁜가? 같이 사는 작은 아들네 두 사내아이를 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같이 살고 있으니 자연스레 손자들은 내 몫이 되었다. 내외가 맞벌이 하면서 힘겨워 하는 게 안쓰럽다. 내가 도움이 되어 작은 아들네가 하루라도 빨리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더욱이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간난아이가 지나가면 꼭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니 내 한 몸 편하자고 내 새끼들 남에게 맡기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내가 안 봐주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누가 이 아이들을 봐줄까싶다.

 

그러나 6살 7살 된 사내아이들은 우왁스럽기 그지없다. 힘도 세다. 저희 둘이 싸우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겁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서로 물건 가지고 쟁탈전이고 형은 형대접 받으려 하고 동생은 동생대로 지기 싫어한다. 유치원 다녀오면 간식먹이고 주산학원에 바둑교실, 태권도장까지 데려다 주고 또 데리고 온다. 밖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따라다녀야 한다. 그러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은 감기 걸리면 꼭 장염을 동반하여 배가 아프고 토하고 어지럽다고 징징거린다. 그 치다꺼리 하다보면 날이 저문다.

 

정작 힘든 것은 아들 며느리의 태도에 있다. 직장생활 하느라 힘들까봐 한 가지라도 더 도와 주려고 하는데 도대체 그 마음을 헤아리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주중에는 시간이 없으니 대부분의 빨래도 내가 하고, 아이들의 도시락도 씻어 둔다. 집에 오면 허기질까 밥이라도 해 두고 한두가지 반찬도 마련한다. 술 취해 들어온 아들이 어쩌다 제방으로 쑥 들어가 버리면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혼자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걸 표현하면 더 서먹해 질까봐 참는다. 다음 날 ‘엄마...’하며 아들이 전화를 해 오면 간밤의 복잡했던 생각들은 눈 녹듯 녹아버린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커서 내 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할까. 몸이 아파 운신하기도 어려워 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동생네 아이들 봐주다 병든 시어머니를 큰며느리가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러다 오갈데 없는 늙은이가 되는 걸까. 어떤 신세가 될까. 빚만 남겨두고 먼저 가버린 애들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우리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집에 오기를 기다리던 시절은 참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친구들 만나고 여행 다닐 처지가 아니니 손자들 본다는 핑계로 숨어살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스럽다. 언젠가 이런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 노인네들은 60, 70되도록 노후의 여유는커녕 여전히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든가 그도 아니면 아이보거나 가사일을 돌봐주고 있다는데 그 비율이 선진국의 2배, 3배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탓이건 누구의 탓이건 간에 나도 그런 노인네의 한 사람이다.    

 

그래도 혼자 사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괴괴한 시간들을 혼자 멀거니 앉아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손자들을 보지 않고 어찌 산단 말인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사랑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니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가족이니 더 필요한 일이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것에서 비롯될 수 있는 무례함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무심코 내뱉는 말과 행동, 가볍게 부탁하며 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말이다. 서로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는 측은지심이 있다면 그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는 자식에게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픈 곳은 없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고 건네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친정어머니가 조카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친정어머니 입장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나의 아이들을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보고 계신다면 다정하게 다가가 어깨라도 주물러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2008.08.07 09:5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친정어머니가 조카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친정어머니 입장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나의 아이들을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보고 계신다면 다정하게 다가가 어깨라도 주물러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손자보는 할머니 #노후 #감사의 마음 #경제적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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