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9)

― '직사각형 모양의 묘지', '부채 모양의 잎' 다듬기

등록 2008.08.20 09:56수정 2008.08.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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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직사각형 모양의 마을 묘지

 

.. 직사각형 모양의 마을 묘지에는 높은 담이 둘려 있고 정교하게 만든 쇠문이 달려 있었다 ..  《존 버거/김우룡 옮김-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열화당,2004) 13쪽

 

 ‘묘지(墓地)’는 우리 말 ‘무덤’을 한자로 뒤집어씌운 말입니다. ‘마을 무덤’이라고 고쳐야 알맞아요. ‘정교(精巧)하게’를 쓸 수도 있으나 ‘꼼꼼하게’나 ‘빈틈없이’로 풀어내면 한결 좋아요. ‘철(鐵)문’이 아닌 ‘쇠문’이라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 직사각형 모양의 마을 묘지

 │

 │→ 네모난 마을 무덤

 │→ 네모진 마을 무덤

 │→ 네모반듯한 마을 무덤

 │→ 네모낳게 생긴 마을 무덤

 └ …

 

 ‘직사각형(直四角形)’이나 ‘정사각형(正四角形)’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한테는 ‘긴네모’와 ‘바른네모’가 있는데도. ‘세모’와 ‘네모’가 ‘삼각형’과 ‘사각형’에 밀려나면서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판이고, ‘바른네모’와 ‘긴네모’라는 말마저 이렇게 밀려나거나 사라집니다.

 

 따지고 보면 ‘바른네모’이든 ‘긴네모’이든 사람들이 덜 쓰거나 안 쓰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사라지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동그라미’를 안 쓰고 ‘원(圓)’이라 말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다면 하는 수 없어요. 그런데 이런 토박이말이 ‘쓸모가 없어서’ 사라진다면 모르되, 어줍잖은 지식인들이 자꾸만 일본 한자말을 들여와서 퍼뜨리고 널리 쓰면서 자기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바로잡거나 고칠 생각을 안 하면서 내동댕이치고 있다면 어찌하지요. 말씀씀이가 줄어들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푸대접하거나 업신여기거나 깔보기 때문에 밀려나 버린다면 어떡하지요. 이대로 주눅들게 해도 괜찮은가요.

 

 ‘네모’와 ‘세모’ 같은 말을 자꾸 밀어내니 “직사각형 모양의 묘지” 따위 말마저 튀어나옵니다. 우리 말 ‘네모’와 ‘세모’는 오랜 세월 입으로 써 온 말이라서 ‘네모나다-네모지다-네모반듯하다’ 같은 말로 가지를 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잘 살리면 여러모로 쉬우면서 알뜰하게 자기 말씨를 키우거나 북돋울 수 있어요. 느낌을 조금씩 다르게 하면서 적을 수 있고요.

 

 ‘사각형’이나 ‘삼각형’은 ‘사각형지다’나 ‘삼각형나다’처럼 쓰지 못합니다. 이렇게 못 쓰니 어줍잖게 토씨 ‘-의’를 붙인 ‘모양의’ 같은 말을 뒤에 붙여서 쓸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ㄴ. 부채 모양의 잎

 

.. 부채 모양의 잎은 방금 가지에서 떨어졌는지 싱싱했다. 무수한 세로 줄기가 뻗어 있고 ..  《스에요시 아키코/이경옥 옮김-별로 돌아간 소녀》(사계절,2008) 29쪽

 

 ‘무수(無數)한’은 ‘수많은’이나 ‘셀 수 없이 많은’으로 다듬습니다.

 

 ┌ 부채 모양의 잎

 │

 │→ 부채 모양 잎

 │→ 부채 모양인 잎

 │→ 부채처럼 생긴 잎

 │→ 부채꼴 잎

 └ …

 

 나무에 나는 잎이니 ‘나뭇잎’이지만, 아주 드물게 “나무의 잎”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무에 나는 뿌리이니 ‘나무뿌리’이나, 때때로 “나무의 뿌리”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무에 나는 열매라면 ‘나무열매’일 테지요.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가만히 보면, ‘봄꽃-봄눈-봄나무’를 ‘봄의 꽃-봄의 눈-봄의 나무’처럼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보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며, 느끼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보기에는, 또 느끼기에는 ‘봄비’가 아닌 ‘봄의 비’이고, ‘봄바람’이 아닌 ‘봄의 바람’인지 모릅니다.

 

 ┌ 부채처럼 생긴 잎

 ├ 부채 모양으로 된 잎

 ├ 부채를 닮은 잎

 ├ 부채잎

 └ …

 

 모양이 꼭 부채라 한다면, “부채 모양인 잎”입니다. 생김새가 부채 같다면 “부채처럼 생긴 잎”입니다. 모양새가 꼭 부채를 보는 듯하다면 “부채를 닮은 잎”이요, 부채를 닮은 잎이란 ‘부채잎’입니다. 바늘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바늘잎’이라 하듯, 우리들이 보기에 부채를 닮은 잎사귀한테는 ‘부채잎’이라는 새 이름을 하나 지어 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20 09:56ⓒ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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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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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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