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포스터.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한국에서는 호러라 하면 미국 호러영화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호러영화 중에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1968)이나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The Texas Chain Saw Massacre>(1974)은 호러라는 장르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베트남 전쟁에서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갔음에도 결국 미국이 패한 역사적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60~70년대 서구 사회는 68혁명과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확고하다고 믿었던 사회 질서의 재편을 목도했다.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는 미국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불신을 안겨주었고, 수많은 전사자를 배출하면서 시대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좀비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습격하고 사회 시스템을 공격하는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확산된 사회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좀비를 공포로 바꾸면 더 이해하기 쉬운데, 좀비가 전염병처럼 확산되듯이 공포 또한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일본에서는 1993년 대형 출판사가 '일본 호러소설 대상'이라는 문학상을 만들었다(현재 15회 수상자까지 선정됐다). 가도카와 호러문고(角川ホラー文庫)는 많은 히트작품을 출판하며 확고한 위치를 굳혔고, 이와이 시마코(岩井志麻子), 반도 마사코(坂東眞砂子), 시노다 세쓰코(篠田節子), 온다 리쿠(恩田陸),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등의 여성 작가도 등장했다. 호러는 단순히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망가'(만화)에도 등장한다. 오카자키 교코(岡崎 京子)의 <리버스 엣찌>(1994), <헤르타 스케르타>(2003)등은 호러가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에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도 호러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 자체가 '해결 불가능한' 내부의 갖가지 모순을 안고 있는 것과 깊이 연관돼 있다.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의 윤리적 척도로 한 사회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 사회 자체의 모순이 축적되고 그것이 내부로부터 파열되기 시작한 상황을 의미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는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가치의 붕괴를 알렸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이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는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면서 빈부 격차를 더 확대시켰다. 이러한 사건들은 대다수 서민들의 일상을 순식간에 파괴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은 한강변의 평화로운 일상에 갑자기 괴물이 뛰어 들어오면서 한 서민 가정의 일상이 어떻게 위협받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괴물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그리고 IMF 경제위기로 치환하면 괴물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괴물의 등장은 공포가 어떻게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괴물은 서서히 우리 주변을 서성이다가, 갑작스럽게 일상으로 뛰어든다. 그 갑작스러움이 실제로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포는 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무차별 살인, 당신도 표적이 될 수 있다일본에서는 도오리마(通り魔, 묻지 마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도오리마는 자기 쾌락 및 사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모르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사건의 공통점은 20~30대 젊은이들이 범인의 대다수라는 것과 함께, 인간관계 및 사회에 대한 불만 및 분노가 누적되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범행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구성원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묻지 마 살인' 사건은 2007년 8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2006년에 비해 4배 증가한 수치다(일본경찰청의 범죄 분석 통계). 2008년에는 이미 이바라키(茨城)연속 살상 사건(3월 22일), JR 오카야마역(岡山駅)살해 사건(3월 25일), 아키하바라(秋葉原)무차별 살해 사건(6월 8일), 하치오지(八王子)살상 사건(7월 22일)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히라쓰카(平塚)에서 행인을 칼로 베고 달아난 사건을 비롯해, 열다섯 살짜리 중학생 소년이 부모에게 혼난 후 아이치(愛知)에서 버스를 납치한 사건(7월 16일, 살상자는 없었다)이 벌어지는 등 2008년은 그 어느 해보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무차별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치오지 살상 사건의 범인 칸노 쇼이치(菅野 昭一, 33)는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부모와 상의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며 "부모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어서" 서점 여직원을 식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해 사건은 이바라키 사건(8명 살상) 때보다 많은 17명이 살상된 대형 사건으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과 파장을 안겨줬다. 이 사건의 범인인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 26)는 6월 8일 일요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아키하바라 보행자 천국(일요일에는 자동차 통행을 막고 보행자만 다닐 수 있게 하고 있다)에 2톤 트럭을 몰고 돌진해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치고, 트럭에서 내려 차례차례 사람들을 찔렀다.
가토는 파견사원으로 범행 전 인터넷 게시판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애인이 있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그래도 사람이 부족하니까 오라고 전화가 온다.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모자라니까", "어딘가 다른 공장에 간들 반년도 못 가서 또 이렇게 될 것은 뻔하다" 등의 글을 남기고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후 공술에서는 "생활에 지쳤다. 누구라도 좋으니 죽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누구라도 좋았다"라는 발언은 특히 충격적이었는데, 이는 또한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심리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파견사원이었던 점, 사회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점을 들어 이러한 범죄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예비 범죄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노동백서(労働白書)>에 따르면 1991년 62만 명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매년 10~20만 명씩 증가해 2004년에는 217만 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취직을 희망하는 실업자까지 넣고 계산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1990년 183만 명, 2001년에는 417만 명에 이르는 등 <노동백서>에 담긴 내용보다 훨씬 더 많다는 보고도 있다. 417만 명 가운데 15~34세 사이의 프리타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젊은 층의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