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달라 못된 엄마가 되곤 해요, 어떻하면 좋죠?"

결혼이주여성들과 나눈 '공감 수다'... 모국어로 된 책 필요해요

등록 2008.08.28 17:13수정 2008.08.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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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아줌마들의 공감 수다에 참여한 <아름다운 재단>간사들과 결혼 이주 여성들(왼쪽부터 김희정, 안슌후아, 아리옹, 김진아, 잠자골, 최소영씨)
아시아 아줌마들의 공감 수다에 참여한 <아름다운 재단>간사들과 결혼 이주 여성들(왼쪽부터 김희정, 안슌후아, 아리옹, 김진아, 잠자골, 최소영씨)아름다운 재단

"문화가 달라 못된 엄마가 되곤 해요."
"임신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우리를 위한 출산가이드북은 없나요?"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책이 있었으면 해요."

우리나라에서 가정을 꾸린 결혼 이주 여성들의 '하소연'이다.

2007년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이주민 숫자는 전체 인구의 2%, 무려 1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지원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특히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 이질적인 문화 때문에 겪는 불안과 공포도 높은 편이다. 취직, 육아, 출산 등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구하기 힘든데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가족과의 오해도 생긴다.

이에 <아름다운 재단>은 지난 7월부터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아시아 이주노동자, 이주 결혼한 다문화 가정 부모와 아이들을 위해 전국 각지의 외국인 대상 도서관에 아시아 책을 보내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이다.

이번 캠페인의 일환으로 <아름다운 재단>이 결혼 이주 여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시아 아줌마들의 공감 수다' 자리를 마련했다.

7살 아들과 5살 딸을 둔 몽골 출신 아리옹(35)씨,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카자흐스탄 잠자골(39)씨, 중국에서 한국에 온 지 6년째, 이주여성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번역 통역 활동도 하는 안슌후아(44)씨가 <아름다운 재단> 대표 아줌마, 김희정(36) 간사, 김진아(41) 간사, 최소영 (32)와 함께 수다에 동참했다.

지금부터 지난 7월 29일 열린 이들의 '공감수다'를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지면 중계한다.


'임신하면 원래 그렇다'는 시어머님 말씀 답답했어요

 아리옹(35) - 몽골서 한국에 온 지 6년째. 슬하에 아들(7) 딸(5) 남매를 뒀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현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수학 중.
아리옹(35) - 몽골서 한국에 온 지 6년째. 슬하에 아들(7) 딸(5) 남매를 뒀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현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수학 중. 아름다운 재단
김희정 : <아름다운재단>이 국내거주 아시아 이주민들에게 모국어 책을 지원해 주는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을 진행한 지 2주째가 되어가는 어느 날 재단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오늘 참석하신 아리옹 씨였어요. "저희도 책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문의하셨죠. 방만 옮겨도 필요한 게 많은데 나라를 옮겼으니 필요한 게 얼마나 많았을까요?


아리옹 : 몽골에서 살 땐 아이를 어찌 키우는지 관심도 없었어요. 그러다 결혼해서 임신을 했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몽골의 올케가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오빠가 올케가 읽던 임신 관련 몽골 책을 우편으로 저에게 보내줬어요. 그걸 아직도 갖고 있어요.

김희정 : 임신하고 출산할 때는 정보가 많이 필요해요. 누구한테 얘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내가 책을 보고 직접 판단하고 싶거든요.

아리옹 : 여기선 시어머니밖에는 물어볼 사람이 없죠. 그런데 배가 딱딱할 때, 머리가 아플 때 물어보면 "어, 그래? 임신하면 다 그래" 하시고. 우리 엄마 같으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말할 텐데 시어머니여서 어렵죠. 오빠가 보내온 책에는 임신 주기별로 몸이 어찌 변하는지, 아이 발육이 어찌되는지 다 나와 있어요. 첫째 아이 때도, 둘째 아이 때도 그 책을 보고 도움을 얻었어요.

"그래, 우리 엄마는 몽골사람이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안슌후아(44) - 중국서 한국에 온 지 6년째. 이주여성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번역 통역 활동도 하고, 글도 쓰는 다재다능 아줌마.
안슌후아(44) - 중국서 한국에 온 지 6년째. 이주여성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번역 통역 활동도 하고, 글도 쓰는 다재다능 아줌마.아름다운 재단
최소영 : 그럼, 아이한테 몽골 언어나 말을 따로 가르치시나요?

아리옹 : 가르치고 싶은데 억지로 가르치기보다는 몽골문화를 자연스레 익혀주면서 배우게 하고 싶어요. 언어가 곧 문화잖아요. 제 주변을 보면 몽골에서 나서 자라다가 한국에 온 아이랑 한국에서 난 아이랑 달라요. 몽골에서 자란 아이는 몽골에 대해 자랑스러워해요. 욕심일 수도 있지만 몽골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몽골 책이 있었으면 해요. 친구들이 "너네 엄마 몽골사람이라며?" 하고 물으면 "그래 우리엄마 몽골사람이야. 그리고 몽골에는 이런, 저런 좋은 게 있어"라고 자랑할 수 있게요. 
 
김희정 : 한국에선 표준어가 중요해요. 아이가 엄마 사투리 써서 창피하다 그러면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거예요. 공감이 가네요.

김진아 :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데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늘 곁에 두면 아이가 관심을 갖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책을 곁에 두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잠자골 : 맞는 말이지만 책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다문화가정에 책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어도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공공도서관에 책 갖다 놓아도 우리는 거기 잘 안가요. 차라리 결혼이민자센터나 보건소에 두는 게 좋아요.

안슌후아 : 여기 앉아 있으니 저는 죄책감이 드네요(웃음). 한국에 올 때 중국어 책을 많이 갖고 왔는데도 못 읽혔어요. 이제 집에 가면 중국어책을 많이 읽혀야겠구나 생각해요. 한국인은 중국어 잘 몰라도 그림만 보면 중국이 어떻게 멋진지 알 수 있잖아요. 아이가 자연스레 "우리 엄마 중국인이다. 나는 중국 얘기 많이 해줄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주여성을 위한 모국어 출산가이드북 - 구하기 힘들어요.  

 아시아 아줌마들의 공감 수다
아시아 아줌마들의 공감 수다 아름다운 재단

최소영 : 아이들은 모두 보육기관에 맡기잖아요. 보내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도 아이 친구들 간 사이가 늘 궁금하고 고민인데.

잠자골 : 우리 아이는 울보였어요. 돌도 되기 전에 친정엘 갔는데 솔직히 화장실도 맘 놓고 못 갔어요. 다행히 지금은 잘 지내는데 나중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걸 생각하면 걱정이 돼요. 친구들이 놀릴 때 울어버리면 더 뭐라 그러잖아요. 그게 불안해요.  

아리옹 : 아이가 내성적이고 불안한 게 아무래도 제 잘못인 것 같아요. 애기 낳을 때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것 같아요. 엄마의 불안감이 아기에게 옮겨간 게 아닌지 혼자 생각해요.

잠자골 : 처음 시집 왔을 땐 한국어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고 힘들었어요. 지금은 여성부에서 나라별로 번역한 출산관련 책자가 나와 있어요. 하지만 저희 센터에는 없어요. 인터넷으로 복사해서 봐요. 예산이 없어서 그런가,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아리옹 : 중국어, 필리핀, 베트남은 한국에 많이 진출하니까 모국어 지원이 되요. 하지만 몽골은 아주 드물어요.

"열이 나면 시원하게 하라구요? 몽골에선 따뜻하게 해주는데"

 잠자골(39) - 카자흐스탄서 한국에 온 지 8년째.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현재 성북구 결혼이주민센터에서 아동양육지도사로 일하는 열혈 활동가.
잠자골(39) - 카자흐스탄서 한국에 온 지 8년째.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현재 성북구 결혼이주민센터에서 아동양육지도사로 일하는 열혈 활동가.아름다운 재단
안슌후아 : 중국문화와 한국문화는 많이 달라요. 저는 애기가 한 달 동안이나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어요. 저도 열이 많이 나서 아팠는데 병원에서 산모에게 얼음을 갖다 주는 거예요. 얼음을 안고 있으래요. 지금도 이해가 안가요.

아리옹 : 몽골에선 아기가 열나면 따뜻하게 덮어주고 옷 입히고 따뜻한 차 먹이고 땀으로 열이 빠져나가게 해 줘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열나니까 다 벗겨놓으라고 하시고, 물에 씻기라고 하시고… .

김희정 : 문화 때문에 못된 엄마, 이상한 엄마가 되어버렸군요.

아리옹 : 그럴 때 한국 문화를 몽골어로 번역한 책이 있었다면 아, 이럴 땐 이렇게 하면 되구나 할 텐데, 정보가 없으니 몰라서……. 내가 아는 대로 했더니 나보고 고집 너무 세다고(웃음).

김희정 : 오늘 들은 얘기들은 우리만 알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들이 많아요. 정부가 알아야 해요. 같은 아시아 국가인데도 정부 지원에는 편중이 있군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잠자골 : 저는 아이에게 제 나라말을 가르쳐주지 못했어요. 한국에 와서 2년 만에 임신을 했는데 만일 제가 한국어를 잘 못하는 상황에서 아기를 낳았다면 당연히 가르쳐 줬을 텐데 그 때는 저도 2년이 지난 상황이라서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거든요. 게다가 집안에 어른이 계시니 말하기가 좀 그랬죠. 게다가 엄마가 외국 사람이라서 한국어 잘 못한다고 할까봐서 한국어 교육에 신경을 더 쓰게 되었죠. 지금 아이는 엄마나라 말을 배울 필요성을 안 느껴요. 안 느끼니 당연히 가르치려 하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아요. 어릴 때 가르쳤더라면 조금 할 수는 있었을 텐데 지나쳐버렸어요.

최소영 : 맞아요. 아이에겐 배움의 시기가 있어요.

김희정 : 엄마들은 아이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죄책감을 느끼잖아요. 더 잘해야 하는데, 더 좋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엄마들의 이런 죄책감을 정부가 만드는 것도 있어요. 우리는 좀 덜 나쁜 엄마가 될 수도 있는데 하나부터 백까지 죄다 엄마가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하니…….

잠자골 : 정보는 많은데 우리는 접근하기가 힘들어요.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면 정보를 얻는데, 요즘은 제가 지도사로 일하니까 오히려 제가 주변 이주여성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읽는 엄마나라 책은 물론이고, 저를 위한 모국어책도 필요해요

 <아름다운 재단>은 지난 7월부터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은 "책은 단순히 문자를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담은 것"이라며 "국내 거주 이주민에게 모국어 책을 보내주는 이번 캠페인은 아시아 이주민들을 다문화시대의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해법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했다.
<아름다운 재단>은 지난 7월부터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은 "책은 단순히 문자를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담은 것"이라며 "국내 거주 이주민에게 모국어 책을 보내주는 이번 캠페인은 아시아 이주민들을 다문화시대의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해법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했다. 아름다운 재단
김희정 : 엄마나라에 대해서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싶으세요?

안슌후아 : 제 아이는 중국에서 조금 크다가 왔기 때문에 아직 자연스레 중국에 대해서 자랑을 하곤 해요. 이건 가족과 시댁에서 잘 받아주지 않으면 힘든 거예요. 다행히 저는 시부모님 안모시고 편하게 살아서 걱정이 덜했죠.

잠자골 : 예전에는 외국인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주변에 많아요. 한국사람 인식도 바뀌는 것 같고요. 아이가 눈이 크고 저를 닮았어요. 나가면 엄마가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잘 생겼다 그래요. 그래서 아이가 자랑스러워하죠. 아이가 요즘은 성격이 활발해져서 친구만 잘 사귀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안슌후아 : 우리 아이도 친구를 사귀면서 밝아졌어요. 아이들은 적응을 빨리 해요. 중국어로 번역된 한국 요리책이 있었으면 해요. "우리 엄마는 외국인이지만 한국 요리 정말 잘한다"라고 자랑할 수 있게요. 유치원에 가면 아침에 집에서 뭘 먹었는지 친구들한테 꼭 얘기하라고 그래요(웃음).  

김희정 : 끝으로, 앞으로 후배 이주여성들이 결혼해서 한국에 오면 어떤 책들이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리옹 : 슬플 때 힘 들 때 자기 힘으로 넘어가기 힘들잖아요. 그 때 모국어로 쓴 격언, 명언이 힘이 되요. 몽골에 계신 엄마 마음 아플까봐서 국제전화로는 말 못하는 상황이 있어요. 그럴 때 마음의 위로가 되는 모국어 책이 있었으면 해요. 

잠자골 : 이주여성들은 인터넷을 잘 못해요. 한국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잖아요. 취업할 때 이력서 작성법, 우리는 잘 몰라요. 자기 힘으로 해야 하는데 해달라고 하기가 힘들어요. 혼자서도 이력서 쓸 수 있게 하는 책, 엄마 취업에 도움 되는 책이 많으면 좋겠지만 없어요.

안슌후아 : 저는 한국생활 적응하게끔 도움 되는 책이 있었으면 해요. 한국남편도 같이 볼 수 있는 책. 남편이 이해해주면 힘이 덜 들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책. 남편은 중국을 많이 오가는데도 중국문화를 잘 몰라요. 자식은 둘째 문제죠(웃음).

 <아름다운 재단>의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 홈페이지
<아름다운 재단>의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 홈페이지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재단>은 지난 7월부터 '책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난 해 '이주민의 책 읽을 권리'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이 참여로 다시 이어진 것. <아름다운 재단>은 "책은 단순히 문자를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담은 것"이라며 "국내 거주 이주민에게 모국어 책을 보내주는 이번 캠페인은 아시아 이주민들을 다문화시대의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해법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 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책을 기증받거나, 기부금을 받고 있다. 또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국내 거주 이주민들에게 책 보내기 청원도 함께 받고 있다. 이 캠페인은 오는 11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주여성 #아름다운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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