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 한 마디로 '몰방' 맞은 박재완 수석

'일벌레'의 추락... 연속 '헛방'에 여권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

등록 2008.09.01 18:06수정 2008.09.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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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유성호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 유성호

'일벌레', '행정·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좌충우돌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KBS 사장 해임 논란이 한창일 때, 그는 '공영방송'과 '관영방송'의 차이도 구별 못하는 무지를 과시했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한 촛불시위를 두고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라고 몰아세웠다.

 

급기야 이명박 정부 6개월의 경제 성적에 대해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아전인수식 평가를 내놨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국정 전반에 걸쳐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돌연한 자신감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그의 변신은 쇠고기 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청와대 1기 참모진 전원이 물갈이될 때 이동관 대변인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공기업까지 정실인사에 휘둘려서는 곤란하다"더니...

 

지난해 대선 직후 이 대통령에게 박재완 수석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로 꼽혔다. 신중하다 못해 더딘 인사 스타일로 유명했던 이 대통령이지만, 당시 인수위 정부혁신·규제개혁 TF팀장을 맡고 있던 박재완 수석의 청와대 행은 이미 확정적이었다. 그가 만든 정부조직개편안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이끌어낼 만큼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시 박 수석은 언론들로부터 "뛰어난 학식과 이론적 기반에 끊임없이 준비하는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성균관대 교수 시절부터 밤샘 작업을 하기 위해 집무실에 이동식 간이 침대를 두던 생활은 청와대에 와서도 이어졌다.

 

특히 상사의 심중을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 '윗사람'과의 관계가 대체로 좋은 편이다. 대선 이후 뒤늦게 결합한 그가 이 대통령의 심중을 읽어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인사가 된 것도 이런 성품 탓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는 지난 7월 기자들과 만나 "지난 2년간 대표생활 가운데 가장 괴로웠던 때가 박재완 대표비서실장을 (청와대에) 빼앗겼을 때"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책학박사 학위를 땄다. 그렇다고 대학시절에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유신반대투쟁으로 1974년 11월(명동성당 구국성명서 작성·배포)과 1975년 4월(서울대 4·3가두시위·민청학년 1주년 '기념' 집회) 두 차례 수감생활을 했다. 성실성에 더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러한 전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 수석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시절인 지난 2003년 2월 23일 KBS <포럼21> '새정부 출범제안- 대통령의 성공조건'에 출연, "언론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본연으로 사명으로 한다"며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게 본질적인 성향이라고 봤을 때 위정자나 정부로서는 다소 섭섭하고 때로는 귀찮고 하더라도 언론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공기업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참여정부의 낙하산 인사정책을 맹공격했다. 특히 지난해 5월 공기업 감사들의 남미 외유사건이 터졌을 때 박재완 수석은 '공기업 낙하산 방지법안'을 국회에 정식 발의했다.

 

당시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박 수석은 국정운영 철학이 공기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국정운영 철학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청와대 비서관이나 장·차관 같은 정무직 공무원에 이른바 철학이 같은 코드가 맞는 분들을 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공기업은 사실은 자율책임경영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공기업까지 정실인사에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박 수석은 또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보은·코드인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런 온정주의를 탈피해야만 저희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6월 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실장과 수석 인선내용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지난 6월 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실장과 수석 인선내용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청와대
지난 6월 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실장과 수석 인선내용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 청와대

2003년 "언론 감시기능 존중해야"에서 2008년 "새정부 국정철학 구현해야"

 

박재완 수석의 청와대 생활은 초반부터 순탄치 않았다. 대통령직 인수·인계와 관련한 권위자로 알려진 그가 '야심차게' 내놓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회의 반대에 부딪쳐 '누더기 조직법'으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통일부와 국가인권위 등을 폐지하려고 했던 발상은 비난 여론의 집중 타깃이 됐다.

 

그의 '합리적 사고'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 처음으로 감지된 것은 지난 4월 말경이었다. 당시 논문표절 및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한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의 사표 수리가 며칠째 미뤄지고 있었다.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묻자, 박재완 수석은 대뜸 "언론이 반성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농반진반식이었지만, 논문표절 및 부동산 투기 의혹을 파헤친 언론의 '권력감시'라는 본질적인 기능을 폄훼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의 부적절한 언론관은 4개월 뒤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신동아> 8월호와의 인터뷰에서 "KBS 사장이 정부 산하기관장으로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최적임자인지를 한 번쯤 검증하고 재신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켰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현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KBS 사장은 물러나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언론사 및 언론 유관단체 사장에 대한 정권 차원의 퇴진 압박과 낙하산 임명 강행에 대한 언론계 안팎의 비판이 높은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파문은 더욱 컸다.

 

KBS <미디어포커스>는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퇴진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논리를 만들기 위해 박 수석이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연주 전 사장 해임에 이어 후임 사장 임명 등 'KBS 장악 시나리오'는 차근차근 실행됐다. 이병순 KBS 신임 사장의 취임 일성은 박재완 수석의 발언을 연상케 했다.

 

"KBS가 지난 몇 년간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까지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 온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존폐를 검토하겠다."

 

"선방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직무유기"

 

이후 박재완 수석은 편협한 인식에 기초한 부적절한 막말 행진을 더욱 본격화했다. 박 수석은 지난 7월 '제주포럼'에서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가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특히 이념을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가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걸림돌'에 이어 '대한민국의 잠재력'으로 "높은 교육열과 남다른 근로·저축·성취의욕"을 제시하면서 "OECD 최고의 근로시간 연간 2261시간"을 근거로 들었다. 독일의 연간 근로시간이 1353시간이라는 소개도 덧붙였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는 점을 부끄러워 하는 게 아니라 '잠재력'으로 포장해,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한나라당 의원연찬회 특강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명박 정부 6개월을 두고 "이 정도면 선방"이라는 발언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체감 고통을 느끼고 있는 서민들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4년 6개월에 대한 실낱 같은 기대감을 앗아버렸다는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여당 내부에서조차 박재완 수석의 발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더 이상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로 뭐가 안 됐다고 변명할 상황이 아니다"고 일침을 놨다.

 

다음날 청와대 경제 관련 핵심 관계자도 기자들이 "박재완 수석이 '고용창출 15만명 정도면 참여정부 때에 비해 괜찮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하자, "그렇게 생각한다면 직무유기"라며 "(경기가) 선순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지난 정부와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앞서 박 수석은 불교계의 핵심 요구사항인 어청수 경찰청장 사퇴에 대해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문제를 논의하냐"고 일축, '종교 편향' 문제로 폭발 직전에 있는 불교계의 화를 부추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박 수석이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좀 쉬어야 할 텐데…"라고 꼬집었다.

 

'얼리 버드'를 내걸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와 그에 코드를 맞추고 있는 참모진들이 '제2의 촛불정국'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2008.09.01 18:06ⓒ 2008 OhmyNews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KBS 장악 음모 #종교편향 논란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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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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