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같은 그림에서 동심의 꿈을 낚다

통의동 진화랑에서 '박향숙초대전' 9월 12일까지

등록 2008.09.06 13:10수정 2008.09.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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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화랑 2층 전시실과 1층 입구 전시현수막

진화랑 2층 전시실과 1층 입구 전시현수막 ⓒ 김형순


종로구 진화랑에서는 9월 12일까지 작가 박향숙의 근작 30여점을 선보인다. 그는 일본 동경 다마(多摩)미술대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회화와 유화를 전공했다. 이 학교 교수인 한국미술의 거장 이우환 선생의 촉망받는 제자였다. 예술학박사까지 받은 재원이나 이보다는 작가로서 더 심혈을 기울인다.

작년 학고재에서 처음 뵈었을 때 동심과 모심(母心)이 강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기를 쓰듯 사소한 일상을 그린다고 자신을 소개한 기억이 난다. 이 작가는 소유의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미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일본 같이 경제대국에 살아본 작가로서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그런 생활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본성을 잃고 사회의 부품이나 과장되게 포장한 상품처럼 살아가야 하는 모순이 주는 상처가 컸는지 모른다.

핵가족화 되면서 모성의 신화는 깨지고 이를 대체하거나 회복시킬 기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모든 것을 따뜻한 숨결로 감싸주고 살려내려는 '살림이스트'의 정신과 하찮은 생명도 소중히 떠받드는 '모심'의 미덕을 화폭에 담으려 한 것인가.

작가의 상상력은 바다 속에서 더 꿈틀대고

a  물고기와 함께Ⅰ캔버스에 유채 연필 130×162cm 2008

물고기와 함께Ⅰ캔버스에 유채 연필 130×162cm 2008 ⓒ 김형순


작가는 제주여행 중 잠수정에서 본 바다 속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단다. 그런 추억의 힘에 사로잡혀 이런 여러 형태의 물고기그림을 쏟아낸 것인가. 물고기와 소통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의 상상력은 이런 신령한 바다 속에서 더 꿈틀대는 것 같다.

검푸른 색깔의 물고기 떼들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얼핏얼핏 보인다. 그리고 낙서 같은 그물스케치가 전체적으로 어떤 활기찬 움직임과 리듬감을 준다. 그 현장에서 직접 우리의 육안으로 생생한 바다 속 풍경을 보는 것 같다.


어릴 적 친구 찾아 여행을 떠나다

a  친구Ⅰ캔버스에 파스텔과 유화 162×162cm 2008

친구Ⅰ캔버스에 파스텔과 유화 162×162cm 2008 ⓒ 김형순


작가는 삶이 외롭고 고단하고 쓸쓸해질 때 이를 가뿐이 떨쳐내려 어릴 적 친구 찾아 여행을 떠나는 모양이다. 위에서 보듯 그 시절 개구쟁이들 낙서처럼 마구 그려낸다. 예술은 지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는 학문적 소양도 던져버린 채 동심만 쫓는다. 


어린 시절 천국 같은 경험은 누구나 있겠지만 이 작가에게는 이를 넘어 창작의 큰 동력이 된다. 실제로 작가는 어린 시절, 돈암동 근처 주변의 돌담길, 학교 뒤 산동네, 교회당과 빈 공터가 그의 작업의 근원임을 밝힌 바 있다. 

그의 스승 모토에 구니오 씨도 "그가 그린 마을은 살기 힘겨운 가난한 산동네나 그 한가운데 빈 공터에는 아이들 웃음이 넘쳐나고, 언제나 문이 열려 있는 교회가 있어 마치 정신적 가치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다"라는 참신한 해설로 제자를 추켜세운다.

여기 왕관을 쓴 아이가 나오는데 하긴 어린 시절 가진 것은 없어도 누구나 왕, 왕비 아니면 왕자, 공주가 되지 않았던가. 따사로운 마음으로 꽃을 보고 꿈을 키우던 그런 경험은 누구나 지울 수 없는 달콤한 추억이리라.

무심한 낙서에서 동심을 낚다

a  친구 2Ⅰ캔버스에 파스텔과 유화 162×162cm 2008

친구 2Ⅰ캔버스에 파스텔과 유화 162×162cm 2008 ⓒ 김형순


여기선 상하, 우열, 원근, 명암 등 미술기법이 들어설 틈조차 없다. 무심한 낙서 같은 그림에서 동심을 낚는다고 할까.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바람 스치는 대로,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신기루 같은 교회와 가혹한 사회의 피난처 같은 찻집과 나무와 들꽃을 그려나간다.

꿈과 상상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는 동화 속으로 들어가면 삶의 동력을 얻는 모양이다. 이제 불혹의 나이를 맞아 작가는 눈앞의 것에 연연하지 않고 주변의 모든 걸 더 포용하며 안으려는 것인가. 이런 아동화 같은 그림 이면에는 현대문명의 그늘과 어둠을 은근히 풍자하고 꼬집는 요소가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일상 속에서 삶의 축제를 건지다

a  일기 속의 풍경Ⅰ캔버스에 유화 91×117cm 1998

일기 속의 풍경Ⅰ캔버스에 유화 91×117cm 1998 ⓒ 김형순


위 제목처럼 작가는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개, 연, 의자, 책상, 하트, 기차, 돛단배, 통기타, 오두막, 눈사람 등 다채롭다. 앙증맞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다. 일본에서 오래 유학생활이 이런 노스탤지어를 키운 것인가.

그림이 들려주는 소곤거리는 이야기가 우리를 흥겹고 신나게 한다. 주변에서 작은 것들이 주는 울림과 소소한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에서 조금 다른 방식의 서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하찮고 평범한 것에서 삶의 축제를 건져낸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변하여도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존재하므로 그런 시절을 돌이켜 보고, 다시 한 번 잊었던 꿈을 상기 시킬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작가의 변처럼 이 세상의 적막함도 쓸쓸함도 그의 그림 속으로 들어오면 흥겨운 노래가 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황혼에 물든 나비처럼 지저귀는 새소리

a  저녁 무렵의 새Ⅰ캔버스에 연필과 유화 130×162cm 2003

저녁 무렵의 새Ⅰ캔버스에 연필과 유화 130×162cm 2003 ⓒ 김형순


이런 그림을 보면 마음이 절로 흥분된다. 저녁놀빛에 물든 새는 새가 아니라 차라리 꽃이다. 작가가 화폭에 수놓은 꿈결 같은 새의 지저귐은 고스란히 전이되어 관객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선경(仙境)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보랏빛, 바이올렛 혹은 퍼플컬러, 그 황홀하고 유혹적인 색채로 그림의 분위기는 확 피어나고 새와 꽃들이 춤추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켜 관객을 또다시 사로잡는다.

누적된 피곤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나비처럼 지저귀는 저녁 무렵의 새를 통해 작가는 그들을 위로하며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 환한 웃음을 되찾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하긴 예술이란 일상에서 잃어버린 삶의 축제를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지 않은가.

마음 속의 꿈이 행복하게 피어나는 집

a  마음속의 풍경Ⅰ캔버스에 아크릴물감과 복합매체 41×53cm 2008

마음속의 풍경Ⅰ캔버스에 아크릴물감과 복합매체 41×53cm 2008 ⓒ 김형순


끝으로 '마음속 풍경' 연작을 보자. 이런 연작은 음악에 비유하면 변주곡이라고 할까. 동화 속에 나오는 집들이 옹기종기 앉아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 아니면 살가운 웃음꽃이 사라져가는 가정에 대한 아쉬움의 반영인가.

하여간 이런 마음 속 풍경은 기차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창 밖을 내다봤을 때 예상치 못한 유쾌한 풍경을 만나는 경우와 흡사하다. 작가는 마음 속에 항상 이런 풍경을 그림에 꽃피우면서 행복한 집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나가나 보다.

이제 맺는말로 독배를 마시듯 써놓은 작가노트의 독백을 여기 옮겨본다. 작가는 이 땅에 천국을 그리기 위해 날마다 지옥의 쓴맛을 보는 모양이다.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지 의문투성이고 실패와 좌절과 눈물이 끊이지 않는 삶이다. 인생을 더디고 안타깝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그나마 나의 위안은 내가 작가라는 점이다. 그러한 어리석음과 비현실감이 작가를 계속하게 하는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전시장 진화랑 02)738-7570 전화 http://www.jeanart.net 경복궁 지하철 3호선쪽
작가소개 서울 생 박향숙(1968~) 2005년 다마(多摩)미술대학 대학원(예술학박사). 1999년 동대학원. 1997년 동대학 졸업
개인전 2007년 개인전/노로산레스토하우스(히로시마쿠레시) 개인전/학고재(서울) 등등
수상경력 2006년부터 현재 히로시마 쿠레시 노로산 예술촌입주작가 1999년 행동미술전 장려상 수상-54회 행동미술전 1998년 수도(SUDO) 미술관상 수상(그랑프리) 1997년 후쿠자와 이치로우상 수상


덧붙이는 글 전시장 진화랑 02)738-7570 전화 http://www.jeanart.net 경복궁 지하철 3호선쪽
작가소개 서울 생 박향숙(1968~) 2005년 다마(多摩)미술대학 대학원(예술학박사). 1999년 동대학원. 1997년 동대학 졸업
개인전 2007년 개인전/노로산레스토하우스(히로시마쿠레시) 개인전/학고재(서울) 등등
수상경력 2006년부터 현재 히로시마 쿠레시 노로산 예술촌입주작가 1999년 행동미술전 장려상 수상-54회 행동미술전 1998년 수도(SUDO) 미술관상 수상(그랑프리) 1997년 후쿠자와 이치로우상 수상
#박향숙 #이우환 #다마미술대학 #모토에 구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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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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