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올인'하는 세태 바람직하지 않다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을 준비하는 강의를 듣고

등록 2008.09.06 10:52수정 2008.09.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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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well-dying) 가꾸기 교실

 

지역신문을 보다가 한 대학에서 <참된 삶 가꾸기>라는 강좌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상은 45세에서 65세까지이며,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 내 삶의 회고와 성찰, 존엄한 죽음, 나의 참된 삶과 죽음으로 강의 내용은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황혼기 재테크, 인생설계, 음악과 삶, 명화를 배우는 삶, 입관체험시간 등 다채로운 이론 강좌와 체험실습 형태로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가치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 했다.

 

나는 65세 된 어머니가 들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등록하였고, 첫날 직접 모시고 가게 되었다. 수강자가 10여명 정도는 더 되겠지, 어머니가 싫다시면 어쩌나 하는 우려 섞인 마음으로 아침부터 부산을 떨게 되었다. 처음 방문하는 삼육대학은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솔밭과 선선한 공기가 마치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강의실에 도착해 보니 우려와는 달리 3-40 명의 수강자가 먼저 와 있었다. 손자를 데리고 온 할머니도 있었고, 50대 전후의 여성 역시 눈에 띄었다. 교육과 관련된 책자를 받고 커피 한 잔씩 들고 자리를 잡았다. 애당초 강의까지 들을 생각이 없었던 나로서도 홀린 듯 자리에 앉아 입학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노원구 보건소의 예산으로 운영되어 수강자는 전원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강의였다. 먼저 이경순 삼육대 보건복지 대학장의 환영사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남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 생각해 보기를 청했다. 이어 노원구 보건소 지역 보건과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어 80세 정도 되어 보이는 3기 <참된 삶 가꾸기> 수료생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참된'이 뭐야, 무지하게 좋은, 가짜가 많은 세상에서 진짜인 그런거지. 어떻게 참되게 사느냐는 너무나 어렵잖아. 사람이 산다는 건, 생존과 생활인데, 생존은 밥먹고 목숨부지하는 것이고, 생활은...어쨌든 아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좋고, 좋은 사람보다 즐거운 사람이 좋다는 것이지". 둘러보니 남성 수강생은 1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어 과정 담당인 간호학과 강경아 교수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의 초기 명칭은 '죽음준비교육'이었단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과정부터 이루어진다는, 아름답고 편안하게 죽음을 준비해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왠지 '자살준비교육'처럼 들리는 과정명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에 따라 학생들에게 이름을 공모하여 지금의 <참된 삶 가꾸기> 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죽을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서양인은 비교적 적극적인데 반해 동양인은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녀는 존엄한 죽음에 대해 또는, 그러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소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예로 들었다. 

 

말기암 환자들은 대부분 중환자실로 옮겨져 단지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 중환자실에서는 가족과 격리되며 중환자실에 들어온 사람 중 80% 이상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면 먼저 혈액순환이 원활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완전히 옷을 벗게 하고 그저 이불 하나로 몸을 가릴 수 있다. 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과정이다.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 "야, 여기 심장 멈췄다, 응급 떳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홀로 죽어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가. 누구도 그런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 역시 삶의 한 부분, 마지막 부분이지만 죽음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는 것은 죽음 그 이후를 모르기 때문이다.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강의실을 옮기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성공적인 노년기를 위한 인생설계' 란 주제였으며 충주대학교 노인보건복지학과 김현숙 교수가 담당하였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실태가 여느 선진국보다 빠르다고 설명하며, 정부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노인이 원하는 것은 건강, 돈, 배우자, 자녀의 순인데 많은 사람들이 우선순위에서 뒤쳐지는 자녀에게 '올인'하는 세태는 바람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음을 이해시켰다.  

 

어느 덧 65명이 넘은 눈 밝은 수강생들은 숨 죽여 경청하고 있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휴대전화 진동음, 소곤대는 전화내용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성공적인 혹은 품위있는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건강과 일정한 수입 뿐 아니라 활동적인 생활이 필수임을 강조하였다. 대상이 누구든지 하루 30분 이상 대화를 나눌수만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수명이 8년 정도 연장된다는 것이다. 

 

'9988123',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1년 더 살아 100세를 채우고 이틀 앓다가 3일째 사망하는 것, 이는 분명 고령화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바램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65세 노인 인구중 만성질환 유병율이 90%를 넘어서고, 치매노인의 수는 8.3%, 뇌혈관 질환자는 4.4%에 이른다.

 

그러니 잘 사는 것 못지 않게 잘 죽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선택권은 배우자나 자녀가 아닌 본인에게 주어져야 한다. "평소에 나이 든 부모를 잘 찾아보지도 않다가, 막상 중환자실로 옮겨 가 누워있는 부모에게 할 수 있는 효도가 뭐가 있겠어요? 어떻하던지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입니다". 

 

언젠가 살인죄를 선고받은 의사의 얘기도 들려 주었다. 너무나 가난한 환자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고, 병원비는 하루에 몇십만원씩 쌓여갔다. 어느 날 아내의 간절한 청에 의해 의사는 산소호흡기를 떼 내 주었는데, 집으로 돌아간 후 환자는 사망하였다. 경찰은 담당 의사를 경찰에 고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음에 관한 한 '사전의사결정'이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다.

 

나는 이 과정을 듣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총무라는 중책까지 맡게 되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참된 삶'과 'well-dying',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것 만이 참되다, 그것을 찾는 삶이 참된 삶이다. 그것이 잘 사는 것이요, 잘 죽는 것이다. 

2008.09.06 10:52ⓒ 2008 OhmyNews
#죽음 #존엄한 죽음 #참된 삶 #호스피스운동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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