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96)

―'생활의 빈곤', '생활의 일단' 다듬기

등록 2008.09.06 16:00수정 2008.09.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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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생활의 빈곤

 

.. 생활의 빈곤이 토양과 작물을 한층더 약하게 하는 것이다 .. <쓰노 유킨도/성삼경 옮김-소농>(녹색평론사,2003) 106쪽

 

'빈곤(貧困)'은 '가난'으로, "토양(土壤)과 작물(作物)"은 "땅과 곡식"으로 고쳐 줍니다. '약(弱)하게'는 '여리게'나 '힘없이'로 다듬고, "하는 것이다"는 "한다"나 "이끈다"로 다듬습니다.

 

 ┌ 생활(生活)

 │  (1) 사람이나 동물이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

 │   - 생활 방식이 다르다 / 야생 동물의 생활을 관찰하다 / 생활 터전

 │  (2) 생계나 살림을 꾸려 나감

 │   - 생활에 여유가 있다 / 생활이 몹시 어렵다

 │  (3) 조직체에서 그 구성원으로 활동함

 │   - 교원 생활 / 수사관 생활 하루 이틀 해 먹은 사람 아냐

 │  (4)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감

 │   - 떠돌이 생활 / 취미 생활 / 봉사 생활

 │

 ├ 생활의 빈곤이

 │→ 가난한 삶이

 │→ 가난한 살림이

 │→ 살림이 가난하니

 │→ 가진 것이 없으니

 │→ 가난이

 └ …

 

"생활이 빈곤하니"쯤으로 적어 주면 고맙지만, 이만큼이나마 마음을 기울여 주는 분이 퍽 드뭅니다. 보기글은 통째로 다듬어, "가난 때문에 땅과 곡식은 더욱 나빠진다"로 다시 쓸 수 있습니다.

 

 ┌ 생활 방식이 다르다 →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 생활 터전 → 살아가는 터전

 ├ 생활에 여유가 있다 → 살림이 넉넉하다

 ├ 교원 생활 → 교원살이 . 교원으로 보낸 삶

 ├ 떠돌이 생활 → 떠돌이 삶

 └ 취미 생활을 하다 → 취미를 즐기다

 

살아가니 '삶'입니다. 하루하루 꾸려 나가니 '살림'입니다. 집에서는 '집살림'을, 회사에서는 '회사살림'을, 책방에서는 '책방살림'을 꾸립니다. 농사꾼으로 살고 교사로 살며 노동자로 삽니다. 국어사전에 나온 "수사관 생활 하루 이틀 해 먹은 사람 아냐"는 "수사관 일 하루 이틀 해 먹은 사람 아냐"로 다듬어 봅니다.

 

ㄴ. 생활의 일단

 

.. 그렇게 함으로써 '괴질'에 우롱당한 어민들의 고통스러움이나 남쪽의 미나마따 어민들의 소박한 생활의 일단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 <구와바라 시세이/김승곤 옮김-보도사진가>(타임스페이스,1991) 45쪽

 

 "그렇게 함으로써"는 "그렇게 하면서"로 다듬고, '우롱(愚弄)당(當)한'은 '놀림받은'이나 '들볶인'으로 다듬습니다. '어민(漁民)'은 '고기잡이'나 '바닷마을 사람'으로 손보고, '고통(苦痛)스러움'은 '괴로움'으로 손보며, "남쪽의 미나마따"는 "남쪽땅 미나마따"로 손봅니다. '소박(素朴)한'은 '수수한'으로 손질하고, '일단(一端)'은 '한 가지'나 '한 자락'으로 손질해 줍니다.

 

 ┌ 생활의 일단을

 │

 │→ 살아가는 모습 하나를

 │→ 삶 한 자락을

 │→ 삶 한 귀퉁이를

 └ …

 

그리 길지 않은 보기글 하나에서 퍽 여러 곳을 다듬어 봅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러저러하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를 펼치려 하는지'를 못 알아듣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삶이, 또 생각이, 얄궂은 말투를 얄궂다고 느끼지 않고, 어설픈 말씨를 어설프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잘못되거나 어긋난 낱말을 잘못되거나 어긋났다고 느끼지 못해요. 알맞지 못한 말이 알맞지 못한 줄 모르고, 들어맞지 않는 말이 들어맞지 못한 까닭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말 지식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지식을 다룰 그릇은 작아지는구나 싶습니다. 말 지식은 꾸준히 늘려 나가지만, 지식을 어떻게 추슬러 나가야 하는가는 돌아보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삶이 올곧게 서야 말이 올곧게 설 텐데, 삶이 엉망진창이니까 말이 엉망진창입니다. 삶은 퍽 아름답다고 할 만한데, 자기 삶이 아름다운 줄 느끼지 못하며 자꾸 허튼 데로 눈길을 빼앗기면서, 제 안에 잠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불러내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06 16:00ⓒ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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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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