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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노처녀 대열에 들어선 나를 기다리다 못해 남동생이 먼저 결혼해 맞이하는 첫 번째 명절이었다. 사실, 내가 이번에 고향집에 내려가지 않은 건 3일간의 짧은 연휴 탓도 있지만, 먼저 결혼한 남동생과 첫아이를 가진 올케를 대하는 게 부담스러워서기도 했다.
그래도 올케 들어오고 나서 맞는 첫 명절을 어떻게 보내나 집에 안부전화를 하는데 아무도 안 받는 것 아닌가. 그래서 어머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엄마, 집에 전화해도 안 받는데 어디세요?"
"응. 그래. 명절인데 밥이라도 챙겨먹고 있니? 아빠는 큰집에 성묘가시고 아빠가 네 동생이랑 올케는 친정에 보냈다."
"엄마는 그럼 큰집이세요?"
"나는 친정없니? 너희 외갓집이다."
"네?"
한동안 멍했다.
알고봤더니, 아버지가 첫 손주 가진 며느리가 힘들까봐 집에 오자마자 저녁만 먹이고 친정에 보냈는데 어머니가 반란을 일으키신 거다. 어머니는 첫며느리 들이고 처음 맞는 명절이라 며느리 힘들까봐 음식이랑 준비 다해놓고 사돈집에 보낼 선물까지 준비해 놓았는데, 아버지가 '넘치는 며느리 사랑'을 주체 못하시고 어머니와 의논도 없이 남동생 내외를 친정으로 보낸 것이다. 그것에 뿔이 난 어머니는 친정에 가신 거고. 어머니는 평생 명절날 친정에도 한 번 안 보내줬으면서 며느리는 단 하룻밤도 안 재우고 친정에 보냈다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왜 난 엄마에게도 명절날 가고싶은 친정이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을까?', '친구들이 명절날 친정에 늦게 간다고 같이 흉도봤으면서, 왜 우리 아버지가 명절 때 친가만 가고, 처가에는 안 간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엄마도 여자인데 시집오고 나서 그 수십 번의 명절동안 얼마나 친정이 가고싶으셨을까?' 등등.
성묘갔다 돌아와서 집에 혼자 계신, 안 그래도 노처녀 딸이 시집 안 가는 걸 마냥 걱정스러워 하시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빠 저 결혼 안 할래요."
"뭐야 이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네."
"칫! 아버지같은 남편 만나면 명절날 어머니처럼 친정에도 못오는데 아버지같은 남자만나서 명정날 친정에도 못오고 살까봐 저 결혼하기 싫어요. 나중에 아버지도 명절날 딸하고 사위가 집에 오는 게 좋겠죠? 외할머니랑 엄마도 기다리실 테니 빨리 외갓집에 다녀오세요."
지금까지 '난 우리아버지 처럼 가정적이고 따뜻한 남자랑 결혼해야지'하고 울아버지가 일등 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으로서는 50점짜리였다니 충격이다. 다른집 엄마들은 명절날 친정엔 가시면서 사셨을까? 물론 그분들 세대에는 흔하지 않는 일이었으리라. 음식장만하고, 친척들 접대하고, 제사 지내고,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또는 시댁 눈치 보느라 친정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연휴가 짧은 올 추석엔 이 땅의 많은 며느리들은 친정에 제대로 갔을까?
생각난 김에 우리 아버지를 닮은 남자친구에게도 결혼하면 명절날 꼬박꼬박 친정 보내줄 거냐고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
2008.09.15 11:0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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