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하마와 보낸 하룻밤

[르포] 강원랜드 카지노에 갔다가 지갑 다 털렸다

등록 2008.09.16 11:40수정 2008.09.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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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호텔 건물 안에 카지노가 있다.
강원랜드.호텔 건물 안에 카지노가 있다.강기희

지난 12일(금)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마침 그날은 정선 장날, 추석 대목이라했지만 어머니의 장사는 형편없었다. 어머니는 대목장을 보기 위해 더덕과 도라지, 나물 등을 가지고 나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평소의 장날보다도 썰렁했다. 어머니가 준비했던 더덕과 도라지는 다시 냉장고로 들어갔다. 그날 어머니는 우울해 했다.


갈 곳 없는 폐광촌, 결국 카지노로 향했다

그날 밤 나는 서울에서 온 백범(가명)과 정선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사북에 있었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이 고장에 살고 있는 나를 만났으니 그와 나는 당연히 술잔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요즘 잦은 술로 몸이 좋지 않아 잠시 끊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술자리가 없으니 할 일이 없었다. 아는 이 없는 고장에서 사내 둘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모텔에 방 하나를 잡아 두고 카지노로 올라갔다. 생각해 보니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데 있어 카지노가 큰 도움이 될 듯도 싶었다.

저녁 8시. 입장료를 5천원이나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카지노는 이미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시간을 보아서는 추석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아닌 듯 싶었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는 광부들의 아픈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1990년대 석탄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은 문을 닫았고 광부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하지만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주민들은 정부를 향해 궐기했고 끝내 내국인 카지노를 유치했다. 이른 바 3.3 투쟁이 그것이다. 그러하니 누가 뭐래도 폐광촌 사람들에겐 강원랜드 카지노가 희망인 것이다. 


카지노를 둘러보던 백범이 내게 10만원을 건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임인 터라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다. 그러마 했다.

"추석을 잘 보내려면 지갑이 두둑해야 하니 잭팟 한 번 만들어 보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날 돈을 다 잃었다. 예측할 수 있는 일이라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지도 않았다. 기계를 상대로 이길 수 없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뿐이었다.

카지노입구. 당당하게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풀 죽은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길이다.
카지노입구.당당하게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풀 죽은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길이다.강기희

예전에도 나는 카지노를 몇 번 찾은 적 있었다. 카지노를 무대로 작품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원체 도박이나 게임엔 재주가 없는 탓에 번번히 빈 손이 되어 카지노를 나왔다. 누구는 그런 내게 승부욕이 없어 그런다 했지만 적어도 나는 확률 게임에 승부를 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승부욕을 불태운다고 해서 잿팟이 터져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터져주는 점수 "슬로머신이 사람 놀리네?"

백범은 러시안룻렛 게임판에 앉았고, 나는 객장을 돌아다니며 빈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1000여 개에 달하는 슬롯머신은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주인 없는 자리가 없었다. 한참을 돌고 돌다 찾은 빈 자리도 돈을 잃고 굳은 얼굴로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쓰리 세븐이 나오면 잭팟이 터진다는 슬롯머신을 앞에 두고 만원 권 지폐를 들이 밀었다. 기계는 '20점'을 제공했다. 1점이 5백원인 셈이었다. 배팅은 1회에 1500원. 버튼을 한 번씩 누를 때마다 1500원씩 떨어졌다.

1회 게임을 하는 시간은 2초도 걸리지 않았다. 1만5백원이 들어가는 7회 게임을 하는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돈 만원이 그렇게 슬롯머신에 들어갔으나 그 사이 내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만 원을 넣었다. 이번에도 점수는 떨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돈 7만 원을 잃은 후에야 '불타는 쓰리 세븐'이 걸렸다. 기분 좋은 일, 뭔가 터지는가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계는 잠시 멈추더니 점수를 자꾸만 올렸다. 50점… 100점… 200점… 그렇게 올라가던 점수는 250점에서 멈추었다.

"12만5천원이네요"

옆자리에서 게임을 하던 이가 점수를 보더니 말했다.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그에게 물었다.

"걸리기 힘든 점수인가요?"
"가끔씩 있는 일입니다. 그보다 한 단계 높으면 백만원인데 아쉽네요."

그때까지 머신에 들이 밀은 돈이 7만원, 당시 상황만으로만 따진다면 5만5천원을 딴 셈이었다. 하지만 카지노에 들어온지 30분 밖에 되지 않았으니 게임을 멈추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다. 게임을 끝낸다 해도 달리 할 일이 없었던 탓이다.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 올랐던 점수는 빠르게 떨어졌다. 돈이 빠지니 손가락으로 버튼을 한 번씩 누르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게임은 재미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이도 게임이 되지 않던지 만원 권을 연방 기계에 들이 밀었다. 스롯머신은 돈 먹는 하마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이유였을까. 다른 이들은 돈을 잔뜩 넣고는 배팅 버튼 사이에 카드를 꽂았다. 그러면 수동으로 움직여야 하는 머신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슬롯머신 앞에서 잡담을 즐기거나 객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에도 슬롯머신의 점수는 쉼없이 빠지거나 올라가고 있었다.

"줄을 서시오" 카지노에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신분증이 없으면 입장불가!
"줄을 서시오"카지노에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신분증이 없으면 입장불가!강기희

시간 상으로 1분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점수가 떨어졌다. 다시 돈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불타는 쓰리 세븐'이 또 걸렸다. 하지만 이번엔 점수가 100점이 머물렀다. 100점이면 5만원.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닌 것이다.

돌아갈 곳 없는 카지노 폐인들 "카지노가 이젠 집이래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불타는 쓰리 세븐'은 세 번이나 걸렸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잭팟은 터지지 않았다. 불타는 쓰리 세븐이 잭팟 바로 아래 단계 그림이니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걸려드는 모양이었다. 점수를 내는 다른 그림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한두 번 선을 보이다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불타는 쓰리 세븐'으로 받은 점수는 30분도 되지 않아 '0'가 되었다. 다시 몇 만원을 들이 밀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떨어지는 점수만 있지 올라가는 점수는 더이상 생기지 않았다. 몇 백만원 잃는 것은 순간이라더니 그 말도 맞았다. 나는 지니고 있던 돈까지 다 잃고서야 슬롯머신을 떠났다.

황망했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개평도 주지 않는 기계에 대고 뭐라 할 말도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카지노 객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돈을 잃고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흡연실로 들어가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태 전 카지노에서 돈 40억을 잃었다는 선배를 다시 만난 것도 흡연실에서였다.

당시 그는 아직 10억(부모님이 물려준 산을 팔면 생기는 돈) 정도는 있다고 했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마저 날리고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구걸 아닌 구걸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일상적인 말 밖에 물어보지 않았다. 흡연실을 나온 그는 빈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는 이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선배와 같은 신세인지라 다른 곳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백범에게로 갔다. 그가 하는 게임은 슬롯머신과 달리 숫자에 돈을 거는 게임으로 룻렛이었다. 천원 권 칩이나 오천원, 혹은 만원 권 칩을 테이블 위에 그려진 숫자에 놓으면 딜러가 구슬을 돌리게 되고 그 구슬이 떨어진 번호가 '윈'이 되는 그런 게임이었다.

'0 에서부터 36번'까지 있는 룻렛 게임에서 돈을 딸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들은 경험이 있었던지 그림을 그려가며 확률을 높이고 있었다. 백범은 본전 정도의 칩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잃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정을 넘긴 시간, 객장은 더욱 붐볐다. 테이블 게임의 자리를 팔아 종자돈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지만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그 또한 사실인 듯 싶었다. 그런 이들은 이미 가진 돈을 다 잃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카지노를 떠나지도 못하는 '카지노 폐인' 이었다. 그런 이들이 어림 잡아 천여 명은 된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폐광 후. 폐광된 동원탄좌 수직갱과 탄더미. 강원랜드 옆엔 아직도 지난 역사가 남아있다.
폐광 후.폐광된 동원탄좌 수직갱과 탄더미. 강원랜드 옆엔 아직도 지난 역사가 남아있다.강기희

아쉬움을 느꼈던 백범은 자리를 옮겨 룻렛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도 있었다. 그녀는 혼자 온 듯 보였고, 게임이 되지 않았던지 자주 지갑을 열어 수표를 꺼냈다. 내가 본 것만도 백만원이 넘었으니 그녀의 두툼한 지갑엔 얼마의 돈이 들어있을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한두 번 따는 돈 때문에 발목 잡히는 사람들

어떤 남자는 현금 2백만원을 딜러에게 건네며 칩으로 바꿔가기도 했다. 그 남자는 그 후에도 150만원을 더 가지고 와서는 게임을 했다. 그런 일은 그 남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적게는 백만원에서 수백만원을 그렇게 날리고 있었다.

룻렛 게임을 한 번 진행할 때마다 숫자판에 올라가는 칩을 돈으로 환산하면 5백만원은 기본이었다. 어떨 땐 1천만원 가까이 칩이 쌓이기도 했으니 하루에 수십억씩 돈이 오고 간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자정을 넘기면서 돈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런 이유로 현금지급기 앞에는 돈을 찾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그 돈마저 잃으면 그들은 타고온 차나 목걸이를 잡히기 위해 전당포로 달려갈 것이다.

백범과 같은 테이블에 앉은 여자는 한 번에 2백만원 넘는 돈을 땄다. 그녀가 선택한 번호가 '윈'이었고, 그녀가 놓은 칩의 32배에 달하는 칩이 그녀 앞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검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지갑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동안 잃은 게 많거든요."

그녀는 한 순간 돈을 땄지만 테이블에 쌓였던 칩을 다 잃는데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둠 마저 밀려오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는 시간인 새벽 3시, 그녀를 비롯한 겜블러들은 많은 돈을 잃었다. 백범도 그 무렵 가지고 있던 칩을 다 잃었다. 그와 나는 빈털털이가 되어 카지노를 나왔다.

언제나 명절을 앞두고는 사람들로부터 대박이 터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역시 대박이 터진다는 소문은 여지없이 돌았다. 하지만 오늘까지 카지노에서 대박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려오지 않았다.

"카지노는 재미로 한 두번 하는 거지. 거기에 빠지면 신세 망쳐요."
"주위에 그런 분들 계시나요?"
"말도 말아요. 카지노 때문에 가정을 파탄 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래요"

그 새벽, 모텔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기사가 말했다. 도박도 중독에 이르면 가정도 팽개친다는 것이다. 실제 카지노를 출입했다 목숨을 끊은 이도 많았다. 인생의 막장이던 탄광촌이 또 다른 막장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돈가방을 챙겨 들고 카지노로 몰려 드는 사람들. 그들이 하룻밤을 보내는 그 시간 세상은 절대로 안녕하지 못했다. 몇은 연탄가스를 마시고 자살을 했으며 돈이 없어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그날 돈을 걸고 게임을 하는 카지노엔 사람은 없고 사람의 혼을 빼는 기계만 난무했다. 카지노 안에서 만큼은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서민들의 아우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 돈을 펑펑 쓰고, 누군 하루를 살아내기도 힘들어하는 세상. 우리네 삶이란 게 그렇고 그런 것이었다.

전당포 타운. 돈 잃은 사람들이 찾아 가는 곳.
전당포 타운.돈 잃은 사람들이 찾아 가는 곳. 강기희

#카지노 #룰렛 #슬롯머신 #강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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