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입구.당당하게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풀 죽은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길이다.
강기희
예전에도 나는 카지노를 몇 번 찾은 적 있었다. 카지노를 무대로 작품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원체 도박이나 게임엔 재주가 없는 탓에 번번히 빈 손이 되어 카지노를 나왔다. 누구는 그런 내게 승부욕이 없어 그런다 했지만 적어도 나는 확률 게임에 승부를 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승부욕을 불태운다고 해서 잿팟이 터져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터져주는 점수 "슬로머신이 사람 놀리네?"백범은 러시안룻렛 게임판에 앉았고, 나는 객장을 돌아다니며 빈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1000여 개에 달하는 슬롯머신은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주인 없는 자리가 없었다. 한참을 돌고 돌다 찾은 빈 자리도 돈을 잃고 굳은 얼굴로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쓰리 세븐이 나오면 잭팟이 터진다는 슬롯머신을 앞에 두고 만원 권 지폐를 들이 밀었다. 기계는 '20점'을 제공했다. 1점이 5백원인 셈이었다. 배팅은 1회에 1500원. 버튼을 한 번씩 누를 때마다 1500원씩 떨어졌다.
1회 게임을 하는 시간은 2초도 걸리지 않았다. 1만5백원이 들어가는 7회 게임을 하는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돈 만원이 그렇게 슬롯머신에 들어갔으나 그 사이 내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만 원을 넣었다. 이번에도 점수는 떨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돈 7만 원을 잃은 후에야 '불타는 쓰리 세븐'이 걸렸다. 기분 좋은 일, 뭔가 터지는가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계는 잠시 멈추더니 점수를 자꾸만 올렸다. 50점… 100점… 200점… 그렇게 올라가던 점수는 250점에서 멈추었다.
"12만5천원이네요"옆자리에서 게임을 하던 이가 점수를 보더니 말했다.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그에게 물었다.
"걸리기 힘든 점수인가요?""가끔씩 있는 일입니다. 그보다 한 단계 높으면 백만원인데 아쉽네요."그때까지 머신에 들이 밀은 돈이 7만원, 당시 상황만으로만 따진다면 5만5천원을 딴 셈이었다. 하지만 카지노에 들어온지 30분 밖에 되지 않았으니 게임을 멈추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다. 게임을 끝낸다 해도 달리 할 일이 없었던 탓이다.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 올랐던 점수는 빠르게 떨어졌다. 돈이 빠지니 손가락으로 버튼을 한 번씩 누르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게임은 재미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이도 게임이 되지 않던지 만원 권을 연방 기계에 들이 밀었다. 스롯머신은 돈 먹는 하마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이유였을까. 다른 이들은 돈을 잔뜩 넣고는 배팅 버튼 사이에 카드를 꽂았다. 그러면 수동으로 움직여야 하는 머신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슬롯머신 앞에서 잡담을 즐기거나 객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에도 슬롯머신의 점수는 쉼없이 빠지거나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