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생생한 철학을 맛볼 수 있다

[인터뷰]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박남희

등록 2008.09.16 08:44수정 2008.09.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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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자꾸 높아져만 가는 가을, 문득 혼자 조용한 곳에서 편지를 하염없이 쓰고 싶은 계절이지요. 괜히 커피 한 잔 마시며 분위기 잡고 싶은 가을에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맴 돌아요. "너 자신을 알라." 세상살이를 하면서 마음이 부대끼고 흔들리는 건 아직 자신을 잘 몰라서니까요. 깊어만 가는 가을밤,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철학아카데미를 찾게 되었어요.

철학아카데미 홈페이지 취지문에는 "오늘날 우리는 정체성이 와해되는 혼돈의 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기술문명의 급변, 복제와 환경 파괴로 상징되는 자연과 생명의 변형,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개인주의와 즉물주의,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거침없는 도발, 신자유주의의 무차별 공세 같은 수많은 현상들이 우리 현실을 혼란의 와중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우리 아카데미는 이 땅에서 진실로 사유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대화하는 장이 되려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 깊고 체계적으로 사유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을 철학아카데미에 초대한다"고 밝혔지요.

2000년 3월 창설한 철학아카데미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열려진 철학 공간이에요. 누구나 와서 공부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장소지요. 사단법인으로 확대 개편한 철학아카데미에 대한 관심은 용기로 이어져 현재 철학아카데미 박남희 상임위원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해 지난 10일 만나게 되었어요.

노숙인을 위한 성프란시스 대학의 철학교수이자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와 공원 벤치에서 만났지요. 철학의 나라로 출발하는 기차표를 산 것 마냥 기분 좋은 시간이었어요. 가을에 어울리는 철학의 세계, 같이 떠나시겠어요?

철학은 그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는 노력

a 박남희 상임위원  인터뷰를 한 박남희 위원은 사려깊은 마음씀씀이와 겸손이 묻어나오는 행동으로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분이었다. 그의 자녀 교육과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박남희 상임위원 인터뷰를 한 박남희 위원은 사려깊은 마음씀씀이와 겸손이 묻어나오는 행동으로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분이었다. 그의 자녀 교육과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 박남희

- 철학아카데미가 어떤 곳인지 소개해주신다면?
"철학아카데미는 인간의 자유, 사회의 평등, 민족의 자존심을 고취하고자 현 시대의 반성과 새롭게 성찰을 하는 대중 교육기관이에요. 철학자들이 모여 논문, 번역, 저술 등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요.

이 분들이 대학에서 개론이나 그 학교의 편제에 맞는 것을 강의하다 보면, 실제 자신이 연구한 것과 관심 분야를 강의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철학아카데미에서는 자신의 연구, 학문성과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검증해 볼 수 있는 곳이지요. 이런 젊은 연구자에게 강좌개설은 좋은 기회이고 수강자는 생생한 철학을 맛볼 수 있게 되지요."

- 철학아카데미는 시민 철학 운동이라고 불리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우선 다른 이야기 먼저 짚고 넘어갈게요. 일반인들의 질문 중에 왜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유명 철학자가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어요.


여러 가지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대학에서 학문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학문의 대립이 성립하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일 거예요. 서울대에서 경제학과 김수행 선생님 이후에 마르크스 전공이 없어졌잖아요. 제도권 대학의 철학도 편식이 심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편중된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학생들 또는 졸업 후 관심자들이 철학아카데미를 찾고 있지요.

철학아카데미의 시민 철학 강좌 개설은 시민들로 하여금 편식이나 색안경을 끼고 살 필요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회이지요. 철학은 기본적으로 동서양 철학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이념과 목적이 우선한 것도 아니에요. 누구든 삶의 양상과 시대의 환경이 요구하는 실재성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고 보아야지요. 철학의 다양성은 한 시대의 화두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시대의 삶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지요.

다른 한편 중국철학, 독일 철학, 영미철학을 벗어나서 어떤 한 관점에 머물기보다 새로운 방법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해요. 게다가, 아직도 세계사에서 유래 없는 분단 상황이라는 현실에서 우리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또한 시민들의 욕구를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요.

많은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철학은 그 시대의 모순 또는 더 정확히 문제 거리를 해결하는 노력이에요. 분단 중인 우리의 문제가 지엽적인 것을 넘어서 세계사적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단을 잊고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과 공감하는 철학적 사유와 활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a 철학아카데미 공부하기 싫어 들어가기 싫었던 교실과 달리 철학아카데미는 즐겁게 강의실 문을 열게 된다.

철학아카데미 공부하기 싫어 들어가기 싫었던 교실과 달리 철학아카데미는 즐겁게 강의실 문을 열게 된다. ⓒ 철학아카데미

- 철학을 보통 사람들이 공부해야 하는 까닭이 있다면? 
"사실은 간단한 것예요. 철학이란 공부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 삶의 지표를 신념으로 갖고 살게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각자가 개똥철학이 있다고 하죠. 표현이 그래서 그렇지요, 그게 사실이에요. 저마다 각자의 철학이 있고 또한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와 같은 총합의 철학이 있어요. 동양 유가철학 인의예지라는 사단이 있고, 플라톤 국가론에서 네 가지 덕목의 설명이 있으며, 이들 사상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잘 발휘하자는 것이겠지요.

철학은 민족이나 국가 전체의 정의와 개인의 정의가 상반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에 충실하다가 전체의 이익과 상호충돌하는 경우가 있듯이, 전체의 이익이 개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과 전체의 조화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개인과 민족, 가정과 국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겠지요.

또한 다른 사람의 신념의 근거와 자신의 신념의 근거 사이에 차이를 가질 때, 단순히 관대와 관용으로 어물쩍 넘어갈 것이 아니라, 상대의 미신과 오류를 부드럽게 지적하며 서로 이해 점을 찾고,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스스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게 하는 것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들일 것입니다."

"철학의 대중화에 큰 역할 하겠다"

- 철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는데, 앞으로 방향은 어떤가요?
"이제까지는 철학아카데미가 철학의 대중화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을 뿐이지만 앞으로는 대중화에 많은 부분을 감당하려 한다고 표현하는 게 좋겠네요. 대중화의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수유공간과 같은 연구 집단의 길도, 여러 학술적 모임과 같은 방식도, 또한 출판이나 매체를 통하는 길도 참고 삼을 거예요.

대중화의 길이 만만찮음을 우리는 소크라테스나 스피노자의 삶을 통해서 잘 알고 있어요. 소크라테스와 스피노자는 각자가 자신의 생계를 꾸리는 수단이 있으면서 철학적 대화나 저술 작업을 했지요. 철학의 대중화에서 철학자들이 삶의 터전을 확보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이어가고 시대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어요.

현대 사회는 개체성과 분업의 발달로 학문도 세분화와 전문화로 나아가고, 그 학문의 작업은 노동의 일부라 할 수 있어요. 대중화의 길에서 젊은 철학자들의 노동시간에 대한 대가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젊은 철학자들이 여러 분야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고, 넓어진 폭 만큼이나 대중강좌의 심도도 깊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 상임위원으로서 운영하시는데 힘드신 점이 있다면?
"힘든 점도 있지만 보람이 더 크지요. 그럼에도 상임위원들이 공통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강의를 맡으신 선생님들에게 일정 수준의 강사료를 드릴 수 있는 체제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현재의 수강료 제도를 넘어서 회원등록제로 하여 시민들이, 적은 회비로(월 1만원), 관심 있는 강의를 매 분기별로 자연스럽게 들으러 올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철학아카데미가 지금까지 수강료를 받으면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가 갖추어지면 명실 공히 대중철학운동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겠지요. 운영의 묘미를 살려서 일반인을 위한 무료강좌를 확대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한 전문연구자를 양성하기도 하고, 또한 상임위원뿐만 아니라 조직을 확대하여 일반연구위원을 확충하여 연구소를 운영하고 싶어요. 이러한 질적 성장이 자연스럽게 '철학 평생교육원'을 설립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a 상임위원실 상임위원과 학생들이 어울려 책을 보고 공부를 한다.

상임위원실 상임위원과 학생들이 어울려 책을 보고 공부를 한다. ⓒ 철학아카데미


- 철학 전문 도서관, 철학 전문 서점, 철학 카페를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아는데.
"상임위원들은 강의도 중요하지만 조용히 연구도 하고 싶어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 철학아카데미 산하에 연구소를 몇 개 운영하고 싶어요. 아직 언제가 될지, 예산이 없으니깐 마음뿐이에요.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연구실과 도서관은 필수겠지요. 연구자와 또 공부를 계속하려는 수강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철학전문도서관도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현재로는 우선 상임위원실을 도서관처럼 꾸미려고 하고 있고, 전문서적의 기증도 받고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독지가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려도 괜찮겠지요.

전문서점과 철학카페 등에 관하여 말씀드리면, 현재 철학아카데미에 작은 휴식 공간이 있어요. 이 공간을 활용하여 북카페를 먼저 개설했다가 나중에 공간을 더 확보하면 전문서점 겸 철학카페로 확장할 생각이었어요. 현재 이 공간으로는 수익성을 바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독지가나 또는 관심자가 나서서 운영을 하실 분이 있으시면, 당장이라도 시도를 해보고 싶은 심정이지요." 

가을학기 강좌 9월 29일 개강

- 이번 가을학기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가을학기는 여름·겨울 학기와 달라서 대학은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며, 수강자들 중에서 대학 또는 대학원을 다니는 분들이 있어서, 오전이나 오후시간에게는 강좌를 개설하지 못하고 야간 시간에만 개설해요. 또한 강의 교수님들도 학기 중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분도 있지요.

이번 가을 학기 입문강좌에는 사회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동국대 황태연 선생님의 '주역강의'와 철학 초심자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허경 선생님의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있어요. 전문 강좌에는 아직 잘 소개되지 않았던 3세기경의 플로티투스를 노영덕 선생님이, 현대 프랑스 철학자인 바디우를 홍기숙 선생님이 소개하고 있고, 또한 민승기 선생님의'성 관계는 없다'는 문학 관심자들도 많이 참여하는 강좌입니다.

가을학기에 강좌가 숫자가 적지만 그래도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김진성의 아리스토텔레스, 김장생의 아우구스티누스, 박정하의 밀, 서동은의 가다머, 류종렬의 베르그송, 김진영의 바르트, 조광제의 하이데거, 정지은의 메를로퐁티, 홍기수의 하버마스 등 다양하게 선택의 기회가 있습니다."

- 시민대학인 만큼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할 텐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수강생이 있다면?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간단히, 타학문을 전공하신 교수님들, 예술작업을 하시는 전문가들, 그리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방송 일을 하시는 분들, 정년퇴임 하시고 오신 분들, 개인 사업을 하시면서 대화의 폭을 넓히려 오신 분들, 개인의 학문관심으로 중년에 공부하러 오신 분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다양하지요.

그 중에서도 자식들을 키우시는 어머님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공부도 하고 다른 분들과 서로 상의하는 모습은 매우 좋습니다.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여러 번 말(잔소리)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 받아서 자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매우 좋고 뿌듯하지요. 시민교육이라는 것이 스스로 문제 거리를 풀려는 노력에 있다는 것이 실현되는 느낌입니다."

a 진지한 수업시간 뜨겁게 불타고 있는 학구열, 메말라가는 가슴이 달궈진다.

진지한 수업시간 뜨겁게 불타고 있는 학구열, 메말라가는 가슴이 달궈진다. ⓒ 철학아카데미


박남희 상임위원과의 대화는 소박한 차림새만큼 소탈하고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철학아카데미가 대중철학교육이라는 시대 요구에도 부응하고 새로운 사상의 창조라는 과제에도 힘을 쏟는 곳이라 게 느껴지네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이런 분들이 모였으니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지요.

한편으로는 독지가의 특별 후원금이나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 튼튼한 기반에서 시민들과 호흡을 할 수 있는 솔직한 바람도 말씀하시네요. 철학아카데미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생기길 시민들의 관심을 정중하게 부탁하시더군요.

철학아카데미가 8년 6개월 동안 걸어온 과정은 대단해요. 지금까지 개설한 강좌의 수는 750여 강좌에 이르며, 강의를 맡으신 분들은 총 인원 150여명에 달하지요. 시민들의 강의 참여는 지난해 한 해를 기준으로 여름 겨울 강의 신청자 수는 각 300여명, 봄 가을에는 각 200여명 총 연 인원 1000여명이나 되지요. 게다가 무료 강좌와 학술대회에는 100여명이 참석해요. 새로이 시작하여 현재 20회에 이르는  '철학아카포럼'은 매달 둘째 토요일과 넷째 토요일에 무료로 열고 있지요.

공자는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말하였지요. 이번 가을에는 단풍들듯이 가슴을 철학으로 물들이는 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http://www.acaphilo.or.kr/


덧붙이는 글 http://www.acaphilo.or.kr/
#철학아카데미 #박남희 #인터뷰 #시민대학 #철학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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