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빼곡히 꽂힌 책들송판과 붉은벽돌로 쌓아올린 책장에는 책이 가득, 근래에 읽은 책은 모로 쌓였다.
박종국
그런데 난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 말씀’이라면 반드시 지키고 따라야한다는 순둥이였다(물론 지금도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에만 집착하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쩌나? 어디 가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책을 구해오나? 내 눈썰미를 아무리 챙겨보아도 우리 집안에는 내가 읽을만한 책이 없는 것을 아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일을 얘기 삼으면 그냥 깔깔댈 뿐이다.
"얘들아, 언제든 밥은 꼭꼭 챙겨먹어라. 내가 너희만 했을 때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왜 밥을 굶어요? 밥 먹기 싫으면 빵을 먹거나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
"……."
그랬다.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과부족을 모르고 산다. 책만 해도 그렇다. 학교도서관은 물론, 교실책장에 읽을만한 책이 백여 권은 빼곡히 꽂혀 있는데도 꺼내드는 아이들이 흔치 않다. 그보다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엠피쓰리 이어폰을 끼고 있다. 아이들을 사사로운 따져들 게재가 아니다. 세대차이가 아니라 이미 그것은 그들의 생활문화가 됐다.
책 도둑은 없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던 나는 다음날 하교 무렵 학교 도서관에 몰래 들어가 난생처음으로 책 한 권을 훔쳤다(그때 내가 훔친 책이 ‘장발장’이었다. 헌데 그 책 표지에는 공교롭게도 학교도서관 날인이 찍혀 있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마나 내달렸을까. 숨이 벅찬 것보다 가슴이 더 콩닥거렸다. 한참을 내달리다가 길섶에 앉아 책 표지를 들여다봤다. 빅톨 위고 <레미제라블>(장발장)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빅톨 위고'나 '레미제라블'은 너무 생소했다. ‘장발장’은 라디오를 통해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