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시선 집중된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 등에 따른 국내금융시장의 대책 마련을 위해 16일 오전 서울 팔레스 호텔에서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진정시킬 대책으로 각종 언론매체와 분석가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부실위험에 빠진 AIG나 워싱턴뮤추얼을 포함하여 주요 금융기관들이 '시장'이 신뢰할 만한 자구책과 자금조달 계획을 세워야 상황이 진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살펴보자. 금융시스템에 존재했던 각종 규제와 업무 장벽을 허물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금융위기와 파국의 씨앗이 잉태되었던 것 아닌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후 은행과 증권, 보험 업무를 분리시킨 '글래스-스티걸법'은 1999년 '그램-리치-브릴리법'으로 무력화됐다. 또 규제와 감독을 거의 받지 않는 헤지펀드가 등장해 위험도가 극히 높은 각종 파생상품을 제한 없이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규제가 풀린 투자은행과 상업은행들이 여기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오늘의 세계적인 금융파국이 초래된 것이다.
시장이 조장한 금융부실을 번번이 해소시켜준 것은 바로 시장이 아니라 국가였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베어스턴스로 확산되고, 양대 모기지 업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갈 때 그것을 막은 것은 미국 연방 정부였다.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정부가 지원을 포기했기 때문에 곧바로 파산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 연말 모기지 부실로 인해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등 대형 은행이 불안해지자 이를 긴급히 구제해준 것은 바로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였다. 그러나 그 후 손실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시장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대규모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이들 국부펀드마저 미국 대형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상황을 보면서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장 메커니즘을 따라 확산된 파생상품 연쇄고리와 부실의 사슬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몇 개 금융기업을 구제해 준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어려울 때는 정부에게 손을 벌리다가 심지어 정부가 개입해도 해결이 용이하지 않을 만큼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바로 시장 자신이다.
따라서 지금 신뢰를 얻어야 할 대상은 바로 시장 자신이다. 불신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금융시장 자체다. 금융시장은 각국의 정부들과 국민들에게 자신이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규제 풀린 시장만능의 금융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제조업까지 번지는 금융위기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오직 금융기업에 국한되는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 산업을 대표해왔던 GM과 포드 등 전통 제조업들도 수년전부터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 상태이며, 최근 금융위기로 이들 역시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이들 기업이 자동차 분야에서 일본의 도요타에게 추월당한 것은 물론 신용상태가 이미 정크본드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현재 GM의 회사채 금리는 17~27%, 포드의 회사채는 15%에 거래된다. 사실상 신용이 거의 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GM과 포드는 올해 2분기에만 약 24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사상 최악의 경영상황에 내몰린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3사는 현재 미국 연방정부에게 '에너지 고효율 자동차 개발' 명목으로 500억 달러 자금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는 상태다. 연방정부는 250억 달러 자금 지원을 결정하고도 여전히 집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금융시스템 부실의 파급을 막는 데도 힘에 부쳐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여지가 없는 상태다.
물론 이런 결과는 미국 산업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철저히 금융산업에 의존하는 성장을 해왔다. 미국 기업의 순이익 가운데 1/3 가량이 금융기업에서 나올 정도다. 최근 파산위기에 직면한 투자은행들이 하나 같이 50대 글로벌 기업 안에 드는 대규모 기업들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때 GM은 자동차 제조업에서 밀리는 경쟁력을 금융 부분을 키워 만회하려고 했다. 그래서 GM의 수익가운데 금융자회사인 자동차 할부금융회사 GMAC의 비중이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모기지 부실 사태가 커지고 신용경색이 시작되면서 GMAC은 GM의 수익 원천이 아니라 손실 원천으로 탈바꿈했다.
뒤늦게 GMAC은 인력 규모가 1만 4천명에 달했던 모기지 자회사인 레지던셜캐피털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미 7개 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기록하면서 총 72억 달러의 손실을 본 상태다. 결국 도요타의 자동차금융 및 리스사업 자회사인 도요타파이낸셜서비스가 미국 시장 상반기 시장점유율 6.35%를 기록하며 6.2%를 차지한 GMAC를 추월했다.
GM과 같은 적자 기업은 물론 우량기업들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전체 실물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있다. 프리츠 핸더슨 GM 사장은 지난 15일 "기업의 신용시장 차입이 대부분 중단된 상태"라면서 리먼브러더스 위기로 "당분간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최소한 몇 주 아니면 몇 달간 험난할 수밖에 없다"면서 "AAA+등급 기업 정도나 금융시장을 통한 차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운동 연설에서 "월스트리트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 위기가 더 문제"라고 한 지적은 그런 점에서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IT를 비롯한 몇몇 분야를 제외한 제조업 분야에서 상당 부분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경제가 비금융 분야에서 경제회생의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청와대가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