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아들이다. 우리 부모님은 23년 동안 가게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다. 부모님이 처녀 총각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 장사를 하신 걸 감안한다면, 30년 가까이 장사를 업으로 삼은 셈이다.
나는 놀이방이나 탁아소가 아닌 상가와 재래시장에서 자랐다. 상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해결하고 카운터를 책상 삼아 공부하고 같은 처지 친구들끼리 모여 상가 주차장과 바로 앞 재래시장을 무대로 뛰놀면서 자랐다. 당시의 나는 그 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렇게 영원히 부모님과 상가에서 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은 그 곳에서의 삶은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00년 송두리째 뒤바뀌게 됐다. 부모님께서 새롭게 시작하신 아동복 장사가 IMF 직격탄을 맞은 이후에 결국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남은 건 두 번의 실패로 인한 빚더미 뿐이었다. 부모님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당시 나와 내 동생은 한참 먹어댈 나이였다. 우리가 자는 밤에 몰래 부둥켜안고 울고 계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자는 척하며 그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던 그 때의 심정도 생생하다. 지금 상황에서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 시련을 다 견뎌내며 지금까지 오신 부모님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하다.
요즘 들어 그 당시 생각이 자주 나는 이유는, 바로 심각한 불경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말이지 IMF 때보다도 더 가혹한 불경기다.
자영업 시장은 IMF사태 이후에 꾸준한 내수 침체에 시달려온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이제까지 겪어온 단순한 불경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수가 침체되고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한 데다가, 금융시장 불안으로 담보대출 금리도 치솟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가게의 경우 급격한 물가 상승이 가장 큰 압박이다.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피자가게의 경우 작년에 1㎏당 6000원 하던 치즈 가격이 올해 9000원으로 50%나 올랐다. 밀가루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작년에 10㎏당 7000원 하던 밀가루는 현재 1만1000원까지 오른 상태다.
하지만 소비자 가격은 작년 11월 수준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다. 현재 1만원짜리 피자 한판을 판다고 했을 때 업주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고작 1000원 남짓이다. 이전보다 피자 한 판당 이익이 3000원 가량 줄어든 셈이다.
유가가 하락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진정세를 보인다고 하지만 여전히 치즈와 밀가루 가격은 상승 중이다. 이 상황에서는 기존 마진율을 보장받기 위해 소비자가격을 소폭이나마 올려야 한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업체와 계약을 맺은 경우에는 그것조차도 쉽지 않다. 업체는 원자재 가격을 끊임없이 올려 받지만 그만큼의 소비자가격 상승은 번번이 거부한다. 업주들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계약 갱신을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압박한다.
우리도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지만 딱히 대응할 방책이 없어서 속만 태우고 있었다. 올해 2월 달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지만, 그것만으로 일이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업주들은 사실상 없다.
차라리 월급쟁이가 부럽다
이러한 극심한 불경기와 프랜차이즈 업체의 횡포 속에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살아남을 방식은 사실상 없다. 고용인원을 줄이고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여서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 밖에는 없는데, 이 때문에 자영업자 대부분은 사실상 쉬는 날이 없다. 그렇게 휴일없이 일해도 장사가 안 되면 무용지물이다.
이런 상황까지 가면 장사를 해도 대책이 없고, 문을 닫아도 대책이 없다. 장사를 해봐야 손님이 오지 않아 밑지는 게 뻔하고, 그래서 결국 문을 닫아봐야 그 흔한 고용보험이나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 자영업자의 제한적 고용보험을 허용했으나 실제로 혜택을 보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많지 않다. 보험료를 낼 만큼의 형편조차 안 되는 업주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수의 업주들이 봉급생활자를 부러워한다. 이러한 부러움은 더 나아가 정규직 노조나 노동자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럭저럭 월급 받고 살고 쉬는 날 다 쉬면서 도대체 뭘 더 바라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진보정당들이 서민정책을 지나치게 노동자 중심에 맞추고 있는 데에도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업주들이 많다. 당장에 우리 아버지도 그렇다. 말 나온 김에 아버지가 흔히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옮겨본다.
"진보정당도 내가 볼 땐 문제가 많단 말이지. 뭐? 1400만 노동자 농민? 다 좋다 그래. 근데 700만 영세 자영업자를 등한시하고, 자영업자에 대한 정책 한 건 내놓지 않는 애들이 무슨 서민경제를 책임지겠다는 건지…. 쯧쯧, 우리는 걔네만큼 일 안 하나? 우리는 휴일도 없잖아. 안 그래? 근데 왜 우리는 그 흔한 복지정책 하나 없냔 말이야."
이런 불평에 현실을 모른다며 불쾌함을 표시할 노동자들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당장 우리 부모님도 8년 동안 장사를 하시면서 제대로 쉬어본 날이 없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쉬는 날까지 계산해 월급이 나오지만, 자영업자들은 하루를 쉬면 그날 생계를 포기해야 한다. 그 어려움이 피해의식으로 표출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올해만 5곳 중 1곳 문 닫아... 잔인한 자영업 구조조정
아무튼 이런 어려움 속에서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계속되고 있다. 이미 취업자수 대비 자영업자 비율이 포화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시장의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외부 변수에 의해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사실은 분명 문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발간하는 서울경제 9월호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문을 닫은 점포는 전국 60만여 곳 중 22.97%인 13만 7814곳에 달한다. 1년 사이에 무려 10만여 점포가 줄어든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로로 생겨난 실업인구를 소화할 일자리도, 폐업에 따른 일시적 가계경제의 충격을 완화시킬 사회적 안전망도 없다.
문을 닫은 업주들은 결국 정부나 지자체가 보증하는 자영업 저리 대출정책에 의지해 다시 자영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자영업 시장의 과잉공급이 악순환으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폐업한 자영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제공과 지자체에서 기업 노동자로의 전직을 알선해 주는 방식의 복지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정책이 시행되는 날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요원한 일일 뿐이다.
번화가의 화려한 네온사인. 잔인할 정도로 화려한 그 네온사인의 주인들은 깊은 한숨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10년 전, 가게 문을 닫고 절망에 빠진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나와 같은 우울한 기억이 평생 남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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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1 11:1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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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 피자 한 판 팔아 남는 돈은 고작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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