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와 호연이
이민선
"차렷, 열중 쉬엇, 앞으로 갓…. 하나 둘 해야지~ 이 녀석 군기가 빠져 가지고… 엎드려뻗쳐.""네, 선장님. 하나 둘… 누나, 근데 엎드려뻗쳐는 하기 싫어."
두 녀석 노는 모습을 보니 웃기다 못해 어이가 없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추석을 보내고 올라오면서 하영이는 호연이 군기를 바짝 잡는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이 녀석 감히 친누나를 몰라봐! 군기 바짝 잡아야겠어"라고 하면서.
'선장님'이라는 호칭은 텔레비전 만화 <스펀지 밥>을 흉내 낸 것이다. 언제부턴가 호연이는 누나에게 선장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물론 놀 때만이다. 하영이는 애원 반, 위협 반 하며 끝내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이 녀석 감히 친누나를 몰라봐!" "안돼 꼬맹아, 넌 오늘 누나에게 혼 좀 나야 돼. 엎드려뻗쳐 안 하면 앞으로 안 놀아 줄 야……. 한 번만 해봐, 딱 한 번만!" "알았어 누나! 아참, 네 선장님.""다시 한 번 말해봐. 내가 좋아? 영숙이 언니가 좋아?"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영이 녀석이 샘을 내고 있는 것이다. 영숙이는 호연이 사촌 누나다. 추석날 온 가족에 모였을 때 생각없는(?) 어른 중 한 명이 곤란한 질문을 했다. "호연아, 영숙이 누나가 좋아 하영이 누나가 좋아"라고.
순진한 호연이는 아무 망설임 없이 "영숙이 누나"라고 대답했다. 모처럼 만난 어린 동생을 살 부드럽게 대해주는 '영숙이 누나'에게 마음이 더 끌렸나 보다. 영숙이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다 큰 조카딸이다. 이때부터 하영이 눈에서는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엎드려뻗쳐 자세로 호연이 녀석은 쉽사리 대답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제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이다. 과연 호연이가 어떤 대답을 할까! 자못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10초… 20초… 30초… 1분이 다 지나도록 호연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 영악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순진한 것인지! 이쯤에서 하영이를 말릴까 하다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선택의 순간에 호연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누나, 아니 선장님. 이제 일어서도 돼.""안돼. 대답하고 일어나."이제 아빠가 개입해야 할 차례가 왔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것은 장난이 아니라 가혹행위다.
"그래 하영아, 이제 호연이 일어나라고 하자, 자~ 이제 일어서 호연아." 이 말을 듣자마자 호연이는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 활짝 웃으며 일어났다. 내친김에 호연이 갈등도 끝내주기로 했다.
"호연아, 하영이 누나가 더 좋다고 대답해. 그러면 누나가 좋아할 거야."이 말을 듣자마자 호연이는 "하영이 누나가 좋아"라고 냉큼 대답했다.
병원 가야 돼 vs 가기 싫어 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