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09.20 14:10수정 2008.09.20 14:10
8월 6일(수) 쾌청, 끔찍할 정도로
모닝콜을 5시에 맞추어 놓았다. 타지마할은 그 보는 시각마다 변화무쌍하고 특히 일출 및 일몰의 경관이 좋다하여 새벽에 일어난 것이다.
어제 잠을 잔 '락시미 게스트하우스'는 썩 훌륭했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밖으로 향하는 창이 있고 전체적으로 바람도 잘 통하는 숙소였다. 성환이도 피로가 쌓였는지 코를 골며 숙면에 빠진다.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선선한 바람도 불고 쾌적하다. 아침을 아무런 맛도 없는 밀전병에 카레를 발라먹고 땀에 절은 옷은 세탁서비스를 맡긴 후 숙소를 나선다. 숙소에서 타지마할은 바로 지척이다. 숙소 옥상에서 본 여명의 타지마할은 나를 충분히 매료시킨다.
부푼 가슴을 안고 산보하듯이 타지마할을 간다. 이제 주변에 널브러져 자는 이들이 더 이상 거슬리지 않는다. 매표소에 서니 입장료가 750루피, 우리 돈으로 2만원에 가깝다. 현지인은 20루피, 500원이다. 참 기가 막힌 셈법이다. 하지만 그것을 건설하기 위하여 피와 땀과 목숨을 버린 그들의 조상을 생각하면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인도의 값비싼 입장료가 성환이에게는 모두 무료라는 혜택이 있었다. 입구에서 검색을 한다. 거의 공항 수준이다. 자동소총을 어깨에 차고 눈을 부라리니 꼼짝할 수가 없다.
결국 담배와 라이터를 압수당했다. 아니 온통 돌로 지어진 곳에 불이 날 곳이 어디 있다고 화기를 압수하나. 산불금지 기간도 아니고.
무굴제국 샤자한의 한이 서린 타지마할은 제국과 바꿀 만큼 굉장했다. 그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최고급 대리석과 그 속에 꽃무늬들은 하나하나 다양한 빛깔의 돌을 새겨 집어넣은 것이다. 쇠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법한 망사 모양 장식도 돌을 깎아 만들었다.
인도 대륙을 호령하며 지배했던 거대한 무굴제국을 충분히 재정파탄으로 몰아붙일 건축물인 것이다. 담배 잃은 억울함도 신이 빚은 듯한 예술품 앞에서는 가소롭기만 하다.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앉았다는 곳에 앉아 대리만족을 느끼며 잠시 16세기의 무굴제국으로 빠져본다.
걷거나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 날씨에 놀기 망정이지 일을 하라고 했으면 인권운운하며 난리가 났을 더위가 계속된다.
타지마할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고고한 아름다움에 먹칠을 하는 것 같아 그만두고 이번엔 아그라 성을 향한다. 델리가 무굴의 수도가 되기 전 제국의 수도인 아그라성에도 제국으로 도약하기 전의 모습이 남아 있다. 성 주위에 파놓은 해자는 충분히 견고해 보이고 주변은 풍요로워 제국의 발판으로 삼기에 충분해 보였다.
사암으로 건설된 아그라성은 멋스러움보다는 실용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탄의 공간은 대리석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다만 타지마할의 건설로 인심을 잃고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긴 노령의 샤자한이 감금되어 최후를 마친 쟈스민방은 저 건너 부인의 무덤이 보이는 곳으로 이곳에서 7년간의 참담한 유폐생활을 통해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이 더 처절해 보이게 한다.
이로서 아그라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카주라호를 향하려는데 샌들 끈이 끊어진다. 새것을 준비할 걸이라는 후회를 하며 아그라 역을 향한다.
카주라호는 기차역이 없어 일단 기차로 잔시까지 이동한 후 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해야 한다. 갈 길은 멀은데 신발끈은 끊어지고…….
역에 도착하여 튀김과 음료 등으로 점심을 대충 떼우는데 구두수선공이 지나간다. 그 친구에게 신발 수선을 맡기니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고치는지 미안하기 그지없다. 수선을 마치고 값을 물어보니 100루피를 달라고 한다. 노력한 것에 비하면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현지 물가를 고려하여 60루피(1500원)를 주니 매우 고마워한다. 이 정도라도 그 친구는 오늘 일당을 벌었으리라. 내 평생 샌들에 광을 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 친구는 보너스로 내 샌들에 광까지 내주었던 것이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빨래를 맡긴 것은 속옷까지 다림질을 하여 10벌에 80루피를 지불했다. 이곳은 큰 돈 없이도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나라이다.
잔시를 향한 기차에서도 걸인이 바글거린다. 하나같이 흉측한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성환이보다 어린아이들이다. 동전이 없어 외면을 하다가(이곳에서는 동냥을 지폐로 주면 안 된다는 귀띔이 있어서) 구걸을 마치고 구석에서 수입금을 정리하는 아이를 불렀다. 20루피를 동전으로 바꾸자고 하니 15루피만 내민다. 성환이 또래로 보이는 이 아이가 벌써 인생을 다 배운 듯해서 마음이 씁쓸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게다.
인도 기차는 도무지 규칙적이지 못하다. 지금 잔시를 향한 기차도 벌판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16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 카주라호행 마지막 버스가 잔시에서 15시 30분인데 기차 연착으로 버스를 놓쳤어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잔시에서 카주라호까지는 버스로 7시간 정도가 걸린다. 거리는 300여 km가 채 되지 않지만 도로사정으로 인하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또한 이곳의 버스는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버스이다. 정원을 몇 배 초과하는 인원을 태우고도 지붕에 짐과 사람을 가득 싣고 다니는 그런 버스이다.
버스를 놓쳤으니 대체수단을 찾아야 한다. 한 달 이상의 배낭여행이라면 그냥 잔시를 둘러보며 하루 더 자면 되지만 일정상 오늘 카주라호에 도착해야 한다.
버스를 놓친 배낭여행객과 그룹을 지어 지프를 대절하려니 1인단 200루피를 달란다. 버스요금의 2배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지프가 하나도 없고 지프회사에서 승용차를 제시한다. 규정요금이 1대당 2400루피란다. 한참을 흥정한 뒤 1600루피에 합의를 봤다.
1인당 400루피를 내야 한다. 버스 7시간 걸리는 거리이면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다. 우린 3식구 1200루피를 내고 일단 출발을 했다.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인도에 와서 얼마만에 쐬어보는 에어컨인가? 별천지가 따로 없다.
쾌적한 차량으로 오랜만에 편안하게 이동을 한다. 이동 중에 시간이 왜 많이 걸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구 훼손된 도로, 대책 없이 도로를 점거한 소들이 차가 속력을 낼 수 없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중간의 한적한 마을에 건널목 차단기로 차들이 모두 멈춰서 있다. 기차가 지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차단기가 길을 막은 지 10분이 지나도록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운전기사는 진작 엔진을 끄고 나가서 여유롭게 쉬고 있다. 언제 지날지 모르는 기차를 위해 차단기가 하염없이 내려져 있는 것이다. 인도는 그런 나라이다.
무료함에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순간 수많은 시골 인도인들이 우리를 둘러싼다. 도무지 외지인이라고는 통 구경을 못한 모습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히히덕거리며 집적대는데 동물원 원숭이가 따로 없다. 어색하고 뻘쭘한 시간이 흘러 우리는 카주라호를 어기적거리며 출발한다. 참으로 여러 가지로 기가 막힌 나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카주라호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다. 카주라호에는 한국관광객들이 유독 많은지 작은 도시에 한식당이 몇 개 보인다. 그런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 아닌 인도인이 요리를 배워서 운영하는 곳이란다. 어깨 넘어 배웠는지 일단 모양은 비슷하게 만들어 나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육개장과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육개장은 닭고기를 넣어 만든 것으로 맛이 아리송하지만 일단 얼큰한 게 입에 맞았다. 김치볶음밥은 맵고 짜고 밥도 시원치 않지만 인도 한가운데서 이 정도라도 어디인가. 육개장은 1인분에 50루피 우리 돈으로 1200원 정도이다. 장거리 이동으로 피폐해진 몸을 육개장으로 달랜 후 숙면에 들어간다. 이게 여행인지 노동인지 혼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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