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단지 내 상가의 모습. 지난 6월 1일 입주가 시작됐지만, 낮은 입주율 탓에 텅텅비어 있는 상가가 많다.
오마이뉴스 선대식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나와 10여분을 걷자 은평뉴타운 L 아파트의 상가가 기자를 맞이했다. 멀리서 보기엔 빈 곳도 있었지만 많은 상가에 간판이 걸려있었고 아파트 외관도 고급스러워 은평뉴타운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1층 상가를 둘러보니, 입주 4개월 된 여느 아파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문을 연 27곳의 가게 중 24곳이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였다. 2곳은 떡집과 자전거를 파는 곳이었고, 나머지 한 곳은 은행이었다. 맞은 편 아파트의 상가는 대부분 비어있었고, 문을 연 곳은 그나마 은행과 공인중개사무소 뿐이었다.
공인중개사무소 앞에는 전세 시세표가 쓰인 화이트보드가 즐비했다. 이곳은 일반 분양의 경우, 7년간 전매 제한이 있는 터라 매매 시세표는 내보이지 않았다. 공인중개사무소엔 '급전세' '급월세'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최아무개 H 공인중개사무소 사장은 "여기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며 "6월에 왔는데, 매매는 한 건도 못했고, 전세도 10건도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세를 내놓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여기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3억원 정도로 예상됐던 전용면적 101㎡(분양 41평)형 아파트 전세가격은 2억 아래로까지 떨어졌다"며 "이 때문에 전세금으로 중도금·잔금을 치르려는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 못한 사람들은 분양금 연체료·은행이자로 고통 은평뉴타운 단지 내부에 들어서니, 아파트 입주율은 절반도 안 되는 듯 보였다. 한 아파트 우편함을 살펴보니 40곳 중 비어 있는 곳이 30개가 넘었다.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였고, 그렇지 않은 곳이 적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보통 입주 3~4개월이면 거의 다 입주하는데, 여긴 50~60% 정도"라고 귀띔했다.
단지 내에서 한 택시 운전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김현식(가명·49)씨는 "택시 운전하면서 이 곳 주민들이 돈 때문에 걱정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며 "후분양이라 중도금·잔금을 3개월 안에 치러야 하니, 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살던 집을 팔거나 전세를 빼서 중도금과 잔금을 치러야 이 곳으로 오는데,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집을 못 팔고 전세도 못 빼서 SH공사에 잔금의 14%에 이르는 연체료를 물어야 하는 사람이 많다"며 "아파트를 팔려 해도 전매제한이 있고 전세도 안 들어오니 큰일 났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그는 "집값이 떨어지면 은평뉴타운 사람들 속이 끓겠지만, 집값이 비정상인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1996년에 1억6500만원에 산 영등포의 106㎡(32평) 아파트를 2005년 2억6500만원에 팔았다. 하지만 그 아파트는 2년 뒤 2배가 됐다. 그는 "서민들은 집을 어떻게 사라는 말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