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꽃무릇선운사 입구에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무릇이 붉게 피어있다.
정도길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석산(石蒜)이라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의 종자구입이었다. 다른 말로 꽃무릇이라고 부르는 이 꽃은 명품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곱디고운 꽃이다. 고창 선운사의 가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꽃무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전국의 사진작가와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꽃무릇은 9월 중순경부터 꽃을 피우고 10월 중순 무서리가 내리면 새파란 잎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 겨울을 나게 하는 특별한 꽃이다. 고고히 홀로 피는 자태는 양귀비의 고귀함보다 아름답고, 무리지어 피는 화려함은 환장하리만큼 황홀하다.
응달진 곳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꽃무릇은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오후쯤이면 그 화려함은 절정을 발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듬뿍 안겨주는, 가을을 대표하는 사랑받는 꽃으로 유명하다.
몸은 하나지만 꽃과 잎이 같이 피지 않아 서로 영원토록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꽃. 상상화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아주 먼 옛날, 절에 기도하러 온 예쁜 처녀가 스님을 사모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뒤 절터 곳곳에 붉게 피어났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기다림은 영원히 만남으로 이루지 못하고, 그리움만으로 남는 것 같아 슬프기만 하다. 스님을 얼마나 그리워하였으면, 부도 옆에서도 활짝 피어 웃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