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구(球)
.. 시계를 디자인하게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테마는 지구였다. 구(球) 형체의 시계를 만들기로 했다 .. <다케노부 이가라시/김영희 옮김-디자인은 하나다>(조형사,2000) 28쪽
‘디자인(design)’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앞말과 묶어서 “시계 모양을 생각해 보았을”이나 “시계 모양을 만들”로 다듬어도 됩니다. ‘테마(Thema)’는 ‘주제’로 고쳐 줍니다. ‘형체(形體)’는 ‘모양’으로 손봅니다.
┌ 구(球)
│ (1) 공처럼 둥글게 생긴 물체
│ (2)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모든 점으로 이루어진 입체
│
├ 구(球) 형체의 시계
│→ 공처럼 생긴 시계
│→ 공 모양 시계
│→ 동그란 시계
│→ 둥근 시계
└ …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생각해 보려 하지 않으니까, 또 생각을 해도 우리가 여태껏 엉뚱하게 써 온 말을 버리고 알맞는 새말로 쓸 몸가짐을 추스르지 못하니까 어렵다고 느낄 뿐이에요.
‘球’란 ‘공 구’라는 한자거든요. 우리 말은 ‘공’이에요. “얘들아, 공 차자!” 하고 말하잖아요. “얘들아, 球 차자!”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놀이’이지 ‘球놀이’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학문이나 철학을 하면, 또는 기술과 정비를 하게 되면 ‘공’은 어느덧 사라집니다. 오로지 ‘球’뿐입니다. ‘지구(地球)’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공처럼 둥글기’ 때문에 붙인 말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 이 한자말 ‘지구’를 받아들인 분께서 우리 말과 삶과 얼을 좀더 깊이 헤아렸다면 ‘공별’이든 ‘둥근별’이든 ‘공땅’이든 ‘둥근땅’이든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지구’를 ‘공땅’이라거나 ‘둥근땅’처럼 고쳐서 쓰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이 보기글에서만큼은, “구(球) 형체의 시계”가 아니라 “공 모양 시계”나 “동그란 시계”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고쳐쓸 때가 한결 나아요.
┌ 동글동글한 시계
├ 동그라미 시계
├ 동글뱅이 시계
└ …
한자 ‘球’를 써야만 하는 자리라면 알맞게 쓰면 됩니다. 그리고 굳이 안 써도 되는 자리라면 깨끗이 털어내고 우리 말 ‘공’을 잘 살려서 쓰면 됩니다. 때와 곳을 살피며 ‘동글다-동그랗다’와 ‘둥글다-둥그렇다’ 같은 말을 넣어 보아도 됩니다.
ㄴ. 선(善)
.. 통일은 무조건 선(善)이라는 낭만적 인식과 통일을 더 이상 민족주의적 시각만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 <이수현-우리 옆의 약자>(산지니,2006) 15쪽
보기글은 어딘가 안 맞습니다. 다듬을 낱말은 둘째치고, “통일은 무조건 선이라는 낭만적 인식과 통일을 민족주의적으로만 접근하는 시각은 더 이상 안 된다”쯤으로는 고쳐야지 싶어요. 말얼개가 영 어수선합니다.
이렇게 고친 뒤, ‘무조건(無條件)’은 ‘무턱대고’로 다듬고,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다듬습니다. “낭만적(浪漫的) 인식(認識)”은 “좋게만 보는 생각”이나 “좋게만 보려는 마음”으로 풀어내고,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으로만 접근(接近)하는 시각(視角)”은 “민족주의에 갇혀 보는 눈”이나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눈길”로 풀어냅니다.
┌ 선(善) :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 - 선을 쌓다 / 선을 행하다 /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
├ 통일은 무조건 선(善)이라는 인식
│→ 통일은 어떻든 좋다는 생각
│→ 통일은 어쨌든 좋은 일이라는 생각
│→ 통일이라면 다 된다는 생각
└ …
‘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을 만나는 일, ‘맞선’이 떠오릅니다. ‘善’이라든지 ‘禪’ 같은 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와는 달리 ‘善’이든 ‘禪’이든 떠올리는 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선을 쌓다 → 착함을 쌓다 / 착한 일을 쌓다
├ 선을 행하다 → 착한 일을 하다
└ 선과 악이 존재한다 → 착함과 나쁨이 있다
어느 자리에서는 ‘착함’이고 어느 자리에서는 ‘좋음’입니다. 어느 때에는 ‘올바름’이고 어느 때에는 ‘깨끗함’입니다. 어느 흐름에서는 ‘알맞음’이기도 하며 어느 흐름에서는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착함-좋음-올바름-깨끗함-알맞음-아름다움’ 같은 낱말을 그때그때 살펴서 사뿐히 얹으면 됩니다.
‘禪’ 같은 외마디말은 ‘마음닦음’이나 ‘마음다스림’으로 담아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닦이’나 ‘마음다스리기’로 담아내도 괜찮을 테고, ‘마음씻이’나 ‘마음모두기’로 담아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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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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