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이 말을 걸다>(김대홍 저, 넥서스books. 12,000원)
넥서스
사람들이 흔히 서울 하면 떠올리는 단어는 어떤 것들일까? 서울시장 출마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랑'과 '헌신' 따위는 아닐 테고. 아마도 즐거움, 화려함, 편리함, 혹은 답답함, 매캐함, 잿빛 정도가 아닐지.
충북 음성 고향을 떠난 뒤로 부모님을 따라 인천과 (신도시 개발 이전의) 일산, 군포, 그리고 결혼한 뒤로는 오산, 파주, 다시 부천. 그렇게 서울 시계 바깥으로만 빙빙 돌며 이삿짐 싸고 풀기를 거듭해온 나에게 서울은 숨 막히는 1호선 전철에 실려서라도 매일 밟지 않고는 삶을 꾸려나갈 수 없는 기회의 땅인 동시에 번번이 사납게 솟구치는 전세 값으로 비웃듯 등 떠밀어내는 오만한 성벽이기도 하다.
그래서 빌어먹을 동네라고 한껏 저주를 해놓고도 내 자식 학교 들어갈 나이 먹기 전에는 어느 틈으로든 비집고 들어서봐야 할 텐데, 한숨을 쉬게 만드는 애증의 대상, 뭐 그쯤 된다고도 해야겠다.
이 책, <그 골목이 말을 걸다>(김대홍 지음, 넥서스 북스 펴냄)가 주는 당혹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은 모두 서울에 관한 것이되, 그 서울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로 고요하고 수수하고 느리고, 한편 따뜻하고 넉넉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 외출을 하고, 지나가던 꼬마 녀석은 누군지도 모를 이방인 어른에게 넙죽 인사를 하며, 볼 일이 급하거든 들어와서 화장실을 쓰라고 벽보를 붙여두는 곳. 아직도 정자나무 밑 평상에서는 내기장기와 훈수 실랑이가 벌어지는 그곳이, 과연 내가 알고 있던 서울이 맞느냐는 말이다.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른, 서울 이야기이 책은 저자 김대홍이 감행했던 몇 개월간 자전거 여행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 여행에는 '수백km를 내 다리의 힘만으로 완주해 내겠다'는 식의 결기도 없고, 온몸으로 느끼는 바람결과 자연의 향기 같은 신선한 충격도 없다.
그의 자전거는 손잡이 한 쪽에 순대 봉지와 소주 두 병 담은 까만 비닐봉지 걸고 휘파람 불며 달리기에 딱 맞춤일 15만 원짜리 까만 '발발이'였고, 그 자전거 바퀴가 밟은 곳은 기껏해야 반나절 안팎 거리의 서울 곳곳이었다. 그것은 굳이 여행이라기보다 '마실'이었고, 그 기록을 읽는 것 역시 숨차고 흥분될 것 없는 잔잔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느리고 완만한 만큼이나 깊고 포근하다. 이화동, 남현동, 삼선동, 노유동. 도대체 서울에 있는지도 몰랐던 이름의 동네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이발관에서는 머리를 깎고, 식당에서는 자장면 안주에 생맥주를 마시고(아, 상상만 해도 속 부대끼는 이 궁합에 대해서, 그는 '안 먹어본 사람은 말을 하지 말라'는데…), 골목 문방구 앞에서는 동네 꼬마 녀석들 어깨 너머로 머리를 들이밀고 전자오락 구경을 하다가, 또 어느 구석에서는 그 동네 이름의 유래와 역사와 사회사를 추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