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48) 변하다變

[우리 말에 마음쓰기 447] ‘초기의 모습과 달리 변했다’, ‘기분이 변했다’ 다듬기

등록 2008.10.13 11:28수정 2008.10.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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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초기의 모습과 달리 변했다

.. 우리가 모두 한 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학교도 초기의 모습과 달리 변했다 .. <샨티니케탄>(하진희, 여름언덕, 2004) 23쪽


‘영원(永遠)히’는 ‘언제까지나’나 ‘죽는 날까지’로 다듬습니다.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은 “머무를 수 없듯이”로 손보고, “초기(初期)의 모습과”는 “처음 모습과”나 “예전 모습과”로 손봅니다.

 ┌ 변(變)하다 : 무엇이 다른 것이 되거나 혹은 다른 성질로 달라지다
 │   - 눈이 비로 변하다 / 왕자가 야수로 변했다 /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다 /
 │     떨리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변했다 / 함박 같은 웃음으로 변하며 /
 │     거의 회색으로 변한 낡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 마음이 거칠게 변하다 /
 │     입맛이 맵게 변하다 / 밤하늘이 희뿌옇게 변하다 /
 │     그 말에 철수의 안색은 노랗게 변했다 / 정국이 어떻게 변할지는 /
 │     그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기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 /
 │     그녀는 안 보는 사이에 무척 예쁘게 변했다 /
 │     그는 술기운만 돌면 야수처럼 변한다 /
 │     아이들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온 집 안이 마치 전쟁터같이 변하고 만다
 │
 ├ 초기의 모습과 달리 변했다
 │→ 첫 모습과 다르게 되었다
 │→ 예전 모습과 달리 되었다
 │→ 처음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 첫 모습을 잃고 달라졌다
 └ …

국어사전에서 ‘變하다’를 찾아봅니다. 뜻풀이는 단출하고 딱 한 가지입니다. “다른 것이 되거나 달라지다”. 뜻풀이에 나온 “다른 것이 되다”를 한 낱말로 옮기면 ‘달라지다’입니다. ‘달라지다­’와 거의 같은 뜻으로 ‘바뀌다’를 씁니다. 그러니까, 외마디 한자말 ‘變하다’는 토박이말로는 ‘달라지다’나 ‘바뀌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 눈이 비로 변하다 → 눈이 비로 바뀌다 / 눈이 비가 되다
 ├ 왕자가 야수로 변했다 → 왕자가 야수로 바뀌었다 / 왕자가 야수가 되었다
 └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다 → 검은빛으로 바뀌고 있다 / 검은빛이 되고 있다

국어사전에 실린 ‘變하다’ 보기글이 무척 많습니다. 모두 열다섯 가지입니다. 열다섯 가지를 죽 펼쳐 놓고 하나씩 살펴봅니다. 이렇게 많이 쓰이는 ‘變하다’인데, 이렇게 쓰임새가 많은 ‘變하다’인데, 사람들한테 이 외마디 한자말을 쓰지 말라고 하면 어찌 될까 궁금합니다. 이 낱말이 없이 이야기를 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는지 궁금합니다. 참말, 이 한자말이 없이는 끽소리도 못하게 될는지요. 참으로, 이 한자말을 말하지 않으면 제 느낌이나 뜻이나 생각은 펼치지 못하게 될는지요.


 ┌ 흐느낌으로 변했다 →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 흐느낌이 되었다
 ├ 웃음으로 변하며 → 웃음으로 바뀌며 / 웃음이 되며
 └ 회색으로 변한 → 잿빛으로 바뀐 / 잿빛이 된

보기글마다 ‘바뀌다-달라지다-되다’를 넣어 봅니다. 자리에 따라서 ‘바뀌다’만 넣어야 하는 자리가 있고, ‘달라지다’가 어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되다’를 넣어 넉넉한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이 외마디 한자말 ‘變하다’를 처음 쓴 때는 언제일까 하고. 우리는 얼마나 머나먼 옛날 옛적부터 이 한자말을 써 왔을까 하고. 옛사람들한테도 이 외마디 한자말을 털어내라고 하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느끼겠는가 하고.

 ┌ 거칠게 변하다 → 거칠게 바뀌었다 / 거칠게 되었다
 ├ 입맛이 변하다 → 입맛이 달라지다 / 입맛이 바뀌다
 └ 안색은 노랗게 변했다 → 얼굴빛이 노랗게 되었다 / 얼굴이 노래졌다

어쩌면, ‘變하다’가 자꾸자꾸 쓰임새를 넓히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바뀌다’와 ‘달라지다’가 어떻게 다른 자리에 따로따로 쓰이는가를 가리는 눈썰미를 잃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뜻은 같을지라도 쓰이는 자리가 다른 두 가지 토박이말 씀씀이를 우리 스스로 잃거나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알맞게 잘 쓰던 말투요 낱말이었으나, 이제는 누구도 알맞게 잘 쓰는 말투도 낱말도 아니게 되었다고 할까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달라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 어떻게 변할지는 → 어떻게 바뀔지는 / 어떻게 달라질지는 / 어떻게 될지는
 ├ 예쁘게 변했다 → 예뻐졌다
 └ 전쟁터같이 변하고 → 싸움터같이 바뀌고 / 싸움터같이 되고

우리 스스로 보고 느끼고 바꾼다면 무언가 길이 열릴 테지요. 우리 스스로 살피고 깨닫고 거듭나려 한다면 어딘가 구멍이 트일 테고요. 우리 스스로 배우고 삭이고 새로워지려 한다면 어느 결엔가 빛줄기를 찾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들은 스스로 애쓰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꾸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버립니다.

ㄴ. 기분이 쉽게 변했다

.. 보리스는 묘한 녀석인데 기분이 쉽게 변했다 .. <하얀구름 외길>(조지 오웰/권자인 옮김, 행림각, 1990) 31쪽

‘묘(妙)한’은 ‘알쏭달쏭한’이나 ‘알 수 없는’으로 다듬어 줍니다.

 ┌ 기분이 쉽게 변했다
 │
 │→ 기분이 쉽게 바뀌었다
 │→ 마음이 쉽게 달라졌다
 │→ 마음이 쉽게 오락가락했다
 └ …

마음이든 생각이든 기분이든 느낌이든 쉽게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쉽게 달라지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갈팡질팡하지요. 왔다갔다 합니다. 오락가락입니다.

모든 사람이 꼭 한결같을 수 없고, 한결같을 때가 가장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좋다고 하는 마음이라고 고이고이 잇기란 어렵고, 얄궂다고 하는 마음이라고 쉽사리 떨치지 못합니다.

하긴, 알맞게 잘 써야 할 말을 찬찬히 느끼거나 깨달으면서 붙잡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얄궂게 뒤틀린 말씨를 털어내거나 씻어내면서 아름다이 다잡는 사람 또한 얼마 안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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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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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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