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학생들이 '괴담'에 속았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촛불 시위에 참여한 청소년들도 인터넷 괴담에 휘둘렸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괴담이 단지 괴담에 불과한 것일까?
지난 7월 교과부는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교육(복지) 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과 관련해 공문을 내려보냈다.
내용은 ▲ 사업명에서 '복지'라는 단어를 뺄 것 ▲ 사업의 핵심을 문화나 심리정서, 보건 및 복지 관련 프로그램이 아닌 학업성취도 향상을 꾀하는 프로그램 중심으로 할 것 ▲ 사업성과를 학력 증진 효과가 얼마나 있느냐로 할 것 등으로, 복지 중심에서 학력성취 중심으로 달라졌다.
배정 예산도 기존 642억원에서 513억원으로 총 129억원이나 삭감했다.
이에 비해 지난 4월 교과부가 각 지방 교육청으로 보낸 '08년 초·중·고 학생대상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 및 학업성취도평가 기본 계획안'에 따르면 지방비까지 합친 소요 추정예산은 170억3천만원이었다.
표집평가에 드는 예산은 현행대로 교과부가 담당하되, 각 시·도 교육청이 전수시행에 따른 추가 소요 예산을 산정해 쓰도록 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20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는 추정 예산이고, 실제 각 시도 교육청이 사용한 금액은 절반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말에 따른다 해도 일제고사 비용은 최소 80억원 선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올해 학업성취도평가 등 전국단위 학력평가 예산을 지난해보다 9억 6천만원이 늘어난 42억9천만원으로 책정했다.
장애인 특수 교육관련 예산 20% 삭감설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19일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와 서울시 장애인교육권연대 관계자들이 만난 '특수교육발전협의회'에서 사단이 났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가 "예산담당관실에서 내년에 특수교육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올해 예산 대비 80% 정도로 사업을 세우라고 해 모든 걸 줄이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하고있다"고 말해 20% 삭감설이 불거졌다.
이에 발끈한 장애인 자녀 학부모와 장애인교육권연대는 9월 29일부터 지난 7일까지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결국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선거 당시 공약했던 '장애인 교육예산 6% 확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특수교육법 시행에 따르는 최소한의 환경을 위한 예산 확보를 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간신히 무마됐다.
"내신·수행평가에도 안 들어가는 시험 왜 봐야 해?"
학생들 입장에서는 일제고사를 열심히 봐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육과정 수준과 학생성취도를 점검하는 연구용 목적이 강하다. 내신이나 수행평가에 반영될 수도 없고 선발기준에도 사용될 수 없다.
특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표집 대상으로 뽑힌 학교만 보던 시험이었다. 올해부터 교과부가 초등학교 3·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해당 학생 모두를 시험 대상에 넣긴 했지만 정작 표집 비율은 작년 대비 1~2%p만 늘렸다.(2008년 교과부 표집 규모는 초등학교 6학년 4%,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각 5%다.)
비표집 학교의 평가 결과를 수집하는 각 시·도 교육청도 각 학교 당 1개 반의 성적만을 표본 추출한다.
물론 2010년부터 학교정보공개법에 따라 학교별 일제고사 성적이 공개될 경우, 아이들에게는 부담이다.
교과부는 "교과별 성취수준 비율만을 공개하고 학교 간 비교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서열화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교의 위신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일제고사 대비 모의고사·수행평가 반영 등 학생들에 대한 압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미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일부 학교 당국이 이같은 일을 했음이 드러났다.
이번에 집단 백지 답안을 낸 강남 S중학교는 특목고에 학생들을 많이 보내기로 유명한 명문학교다. 따라서 학교의 자존심이 강했고,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17일 기자가 취재 중 만난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이유를 묻자 "학교 줄세우기 하자는 거다,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 우리를 가만히 두겠냐"고 답했다. "사교육비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 학원에서 대비시험을 치른다 하고 머리 아프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전교조, <오마이뉴스>에 전화해 "어느 학교인가요?" 문의
백지답안 제출과 전교조를 무조건 엮어보려는 것도 상투적이다.
지난 17일 오전 등굣길에서 취재에 나선 기자가 "선생님이 '백지답안을 내자'고 했느냐고 물었으나 일부 학생은 되레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아니다"고 답했다. 이들의 답변은 간단했다.
"없던 시험이 생겼는데 다들 보고 싶겠어요? 게다가 내신에도 안 들어가는데… '백지 내자'는 말이 애들 사이에서 나왔어요."
지난 17일 오후 <오마이뉴스>에 첫 보도가 나간 뒤 "어느 학교인지 알려달라"고 제일 먼저 물어온 곳은 다름이 아니라 전교조였다.
이번 백지 답안 제출이 발생한 곳은 사교육 1번지 강남이다. S중학은 강남에서도 세칭 잘 나가는 학교다. 이런 곳에서 만약 보수언론 말대로 교사의 몇 마디 말에 학생들이 '현혹'되어 백지 답안을 냈다면, 이것이야말로 일제고사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 아닐까?
지난 17일 오전 만난 학생 중 한 명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제고사 시험지 만드는 데 돈 많이 든 걸로 아는데 그 돈으로 다른 일이나 했으면 좋겠다."
일제고사 관련 괴담은 과연 누가 유포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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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1 09:2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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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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