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기차를 타고 문산역에 내려서 임진강역을 향해 가는 길에는 쌀익는 노랑 들판의 물결이 넘칩니다.
NHN
임진강은 북한의 함경남도 덕원군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서 한강과 합쳐지는 강으로,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경계를 흐르고 있어서인지 다른 강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강입니다.
저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지 못하는 세대이지만, 1968년을 배경으로 일본 교토에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삶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 <박치기>에서 어떤 젊은 배우가 '임진강'이라는 애잔한 가사의 노래를 어눌한 우리말로 부를 때는 눈물이 나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경의선 기차의 현실적 종점인 임진강역에 여행갈 때면 그 영화가 생각나 맘이 짠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라 친근한 나들이길 같기도 합니다.(서울역에서 임진강역까지 52Km.)
요즘 TV 뉴스를 보니 가을이 한창인 산에는 노랗고 빠알간 단풍들로 가득합니다. 가을산은 그렇게 계절의 절정을 오르고 있지만, 가을 들녘은 누렇게 익은 쌀알들을 사람들에게 낳아주고 내년에 또 보자며 이별을 고하고 있네요.
지금 임진강역 가는 길은 노란 셔츠 입은 벼들이 들판에 가득히 서서 농부들의 추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차길이가 짧아 멀리서 보면 장난감처럼 생겨 귀여운 경의선 기차에 애마 자전거를 싣고 문산역에 내려서 애마를 타고 임진강역을 향해 북쪽으로 달려갑니다.
1번 국도인 통일로와 경의선 기차길이 서로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하는 길을 조금만 달리면 어느새 눈이 시리도록 노란 가을 들판이 나타나 자전거 페달질을 늦추게 합니다.
노란 벼들 사이로 포도알처럼 나와있는 꼬들꼬들한 쌀알들을 구경하며 논둑길을 서성이다보니 저도 모르게 통일로 주변의 마을길로 들어서게 되네요.
유유자적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에게 인사도 드리고 이미 추수를 하고 쌓아놓은 볏짚들을 구경하자니,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께서 그게 뭐 신기해 그리 쳐다보고 사진을 찍냐고 저를 신기해하십니다.
그러다보니 지도상의 큰 길인 1번 국도(통일로)로 가지 못하고 경의선 기차길이 가까운 마을의 농로와 논둑길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심심하면 땡땡땡 종소리를 울리며 지나가는 기차와 나란히 농로를 달리기도 하고 때론 애마를 끌고 논둑길을 걸어갑니다.
무엇을 태우는지 구수한 가을 냄새 가득한 동네를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보고, 콤바인과 경운기로 논에서 한창 쌀을 거두고 있는 농부님들을 멀거니 쳐다보기도 하다보니 지도상에서도 그리멀지 않은 임진강역 가는 길이 늦어지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