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에 이전에 토스카니니가 있었다

등록 2008.10.21 11:42수정 2008.10.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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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요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내가 채널권을 행사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시간대이다. 음악 전문지식이 없어 강마에의 지휘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평가할 능력은 없지만 강마에와 연주자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음악 세상을 보면서 갈수록 빠져 들어가고 있다.

 

베토벤에 빠져들어가는 이유는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권력과 명예, 학연보다는 음악실력 자체에 둔 강마에의 가치관이다. 타협을 거부한 완벽주의자 강마에가 조금씩 '사람'을 알아가는 모습도 나를 빠져 들어가게 한다.

 

강마에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타협을 거부한 완벽주의자 마에스트로가 있으니 '토스카니니'(Toscanini, Arturo)이다. 불멸의 지휘자로 불리는 토스카니니는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고 완벽주의로 불멸의 음악을 탄생시켰다.

 

법을 전공한 뒤 기자와 작가 생활을 하며 장편소설 <회생>, 산문집 <내눈의 빛을 꺼다오>, 발레입문서 <발레에의 초대>,  평전 <전혜린> 따위를 펴낸 이덕희씨가 쓴 <토스카니니-세기의 마에스트로>는 완벽함과 불멸을 나은 토스카니니에게로 이끈다.

 
 토스카니니
토스카니니을유문화사
토스카니니 ⓒ 을유문화사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토스카니니>는 음악 비평서가 아니다. 전시대를 통틀어 종종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불리우는 토스카니니의 삶과 예술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토스카니니는 베르디 오페라와 베토벤 교향곡 해석에 정평이 있었으며 지휘는 섬세하였다. 거침없는 호흡과 셈여림을 잘 표현했으며 강렬하고 엄혹한 지휘자였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항상 암보로 지휘해서 좋지 않은 눈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암보는 전설이었다.

 

"토스카니니 이 얼마나 기막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가! 어쩌면 그렇게 확고하고 그렇게도 침착한지 이탈리아 음악의 최고의 지도자며, 이탈리아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그처럼 장려한 수법으로 지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게다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암보로써 지휘한다는 생각을 해보라."(24쪽)

 

<토스카니니> 1부에서는 토스카니니 전기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베이 삭스의 <토스카니니>와 '토스카니니 숭배열'의 진정한 본질과 비밀 탐구에 독보적인 조지프 호로비츠의 <토스카니니 탐구> 따위를 바탕으로 거장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되짚어 본다.

 

2부에서는 수년 동안 토스카니니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뮤얼 초트치노프의 <토스카니니 - 친밀한 초상>에서 좀더 개인적이고 흥미 있는 에피소드를 발췌, 재구성함으로써 그간 왜곡되고 우상화되었던 거장의 인간적이고 진실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정확함에 있다." 토스카니 예술관을 가장 명쾌하게 정의한 말이다. '정확함'은 주관보다는 객관이다. 이는 지휘자 중심의 곡 해석이 아니라 작곡자 중심의 지휘를 일컫는 말이다.

 

같은 시대 지휘자들이 낭만주의 전통에 젖어 자신의 개성을 지나치게 발휘하여 곡을 해석하고, 음악 속에 자신을 투영하려 한 반면 토스카니니는 작곡자가 표현하고자 의도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데에 노력한 음악상의 강렬한 객관주의,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직역주의자(literlist)였다.

 

"토스카니니가 지휘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고 그 이전에 한 세대의 지휘자들이 숱하게 범함 제멋대로식의 해석을 바로잡아놓았다는 사실은 이제 엄연히 확증된 역사가 되었다. 토스카니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후기 낭만주의적 해석자들의 전횡을 일소해버린 데 있었다. 그는 수십년 동안 누적되어온 해석상의 뉘앙스에 덕지덕지 앉은 때를 씻어버렸다."(20쪽)

 

토스카니니는 심포니 악장마다 연주자들에게 마지막 땀한방울까지 요구하고 극도의 집중력을 이끌어내었다. 리허설 도중에는 어느 연주자가 부적당한 소리를 내거나 연주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나가버렸다. 아니 공연중에도 나가버렸다고 한다. 

 

원칙주의자이면서 완벽주의자였던 토스카니니의 삶을 따라가면서 한 번씩 '똥떵어리'를 외쳤던 강마에와 겹치는 느낌을 가졌다. 토스카니니의 연주를 들은 청중은 '사랑과 무조건적인 존경 및 공포와 절대적인 복종'으로 반응했다.

토스카니니 - 세기의 마에스트로

이덕희 지음,
을유문화사, 2004


#강마에 #토스카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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