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 대신 노래방, 대안학교가 이쯤은 돼야

[탐방] 내홍 극복한 한마음고의 특별한 대안교육

등록 2008.10.22 16:27수정 2008.10.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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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 체육대회를 마친 한마음고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가을 체육대회를 마친 한마음고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장재완

가을 체육대회를 마친 한마음고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장재완

"다른 학교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해요."

 

충남 천안의 대안학교인 한마음고등학교(동면 장송리)가 내홍을 딛고 빠른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

 

이 학교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폐교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2005년부터 3년여 동안 계속돼온 내부 갈등의 골은 깊고 첨예했다. 내부 대립양상은 수년 동안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연초에도 학부모들이 학교 법인을 고발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한 대립이 계속됐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혼란한 상황에 학생들도 하나 둘 학교를 떠났다. 100여명에 이르던 학생은 폐교에 대한 우려로 70명으로 줄었다. 친구를 잃은 학생들의 얼굴도 그만큼 침울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이후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는 급상승했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웃음꽃도 다시 피어났다. 21일 찾은 교정은 학생들의 호방한 목소리와 웃음으로 생기가 넘쳤다. 

 

오랜 내홍에도 학생들은 OK∼ OK∼

 

a  천안 한마음고등학교

천안 한마음고등학교 ⓒ 장재완

천안 한마음고등학교 ⓒ 장재완

오랜 분규 속에서도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OK'를 되뇌는 이유는 뭘까?

 

우선 재단 측과 학부모-학생들간 수년째 벌여왔던 갈등이 말끔하게 봉합됐다. 이들은 지난 3월 양측이 제기한 모든 고발과 소송을 취하하고 학교 살리기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후 개방형이사가 학교운영에 참여했고, 법인 측이 직위해제 및 해임한 교장과 교사들도 모두 복귀했다.

 

식구회의는 학생들의 생활만족도를 높인 요인이 됐다. 학생들은 최근 교내에서 술을 마신 한 학생과 관련 식구총회를 소집해 경위를 듣고 상호 토론을 통해 '한 달간 외출금지'라는 징계수위를 결정했다. 무단외출한 학생에게는 일정기간 동안 휴대폰 사용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처럼 대부분 문제는 총회를 통해 학생들이 자체 해결하고 있다. 교복 착용여부에서 디자인까지 학생들이 결정했다. 학교 측도 중대 사안을 제외하고는 학생들의 결정을 따르고 있다.

 

다양한 체험위주의 인성교육도 학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마다 열리는 '수요문화기행'은 학생주도형 특기적성교육이라 할 만했다. 헬스반 학생들은 천안 시내에 있는 헬스클럽으로 원정수업을 나간다. 영화반 소속 학생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후 소감을 나눈다.

 

재활용반의 경우 인근 마을을 돌며 재활용품을 모으고 있다. 지난 9월 시작했지만 두 달 만에 29만원의 재활용 수익금도 생겼다. 학생들은 수익금을 북한결핵아동 돕기 성금으로 기탁할 예정이다.

 

방과후에는 일반 인문계학교가 하는 야간 자율학습 대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별도 마련된 노래방과 인터넷실에서 자율시간을 갖는다.

  

식구총회-수요문화기행-외국문화체험... 자율체험학습 효과 '톡톡'

 

a  학교 뒷편에 있는 '하늘농장'

학교 뒷편에 있는 '하늘농장' ⓒ 장재완

학교 뒷편에 있는 '하늘농장' ⓒ 장재완

특성화수업은 학습의욕이 없는 대부분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교과과정을 읽힐 수 있게 하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일례로 영어시간에 '신나는 팝송'을 부른다. 수학 시간에는 퍼즐 맞추기 등을 통해 일상생활과 수학을 연결시킨다. 미술과에서는 석고로 두상을 뜬 다음 도자기 탈을 만들고, 음악시간에는 '두드리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사회시간에는 생활 속 법률과 인권을 얘기한다.   

 

이명범 교장은 "인문계 학교라서 교과과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며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교과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전체 교과수업의 30%(70시간)를 특성화 수업에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1학년은 백제문화 도보기행과 중국문화 체험학습, 2학년은 제주도 자전거일주 및 일본문화체험학습 등 교외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매년 운영중이다.  

 

미술을 지도하는 안경찬(34) 교사는 기자를 하늘농장으로 안내했다. 학교 뒤편 농지를 개간해 만든 농장에는 제법 속이 찬 배추를 비롯하여  무·고추·생강·고구마 등이 빼곡하다. 이랑마다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푯말이 꽂혀 있다.

 

안 교사는 "주로 토요일 오후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가 아이와 함께 농작물을 돌보고 간다"며 "함께 풀을 뽑고 벌레를 잡으며 얘기를 나눠 자연스럽게 부모와 자녀간 소통의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2학기 동안 수확한 유기농 농작물로 학교 구성원이 모두 모여 김장을 담그는 행사를 마련중이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한별이 학생은 여러 나라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국제유치원' 원장을 꿈꾸고 있다. 그는 "공부보다는 적성을 찾기 위해 진학했다"며 "학과공부를 덜하고 취미와 독서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태양 학생은 "경제학자를 꿈꾸며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며 "조금만 공부하면 내신이 잘 나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고 말했다.  

   

"취미·독서 실컷... 학교 성적은 묻지도 않아요"

 

a  한마음고 이명범 교장

한마음고 이명범 교장 ⓒ 장재완

한마음고 이명범 교장 ⓒ 장재완

이휘동 학생은 "연극과 영화 쪽에 관심이 많다"며 "머리도 자유롭게 기르고 염색과 파마까지 할 수 있어 다른 학교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 한다"고 밝혔다. 유중현 학생은 "실업계는 싫은데 성적이 좋지 않아 고민하다 이 학교에 진학하게 됐다"며 "면접 당시 학교 성적은 묻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아 너무 맘에 들었다"고 말했다.  

 

김홍운 교감은 "폭넓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학교가 재미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대부분 학생들이 처음에는 학습에 의욕을 보이지 않다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대학진학을 위해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때문인지 대안학교장 추천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명범 교장은 "현재 도교육청에서 학교운영비의 85%를 지원하고 있다"며 "지원비를 현실화해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보다 경감시켜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작은 학교, 소규모 학급을 원칙으로, 극단적 이기심과 경쟁심, 서열화를 극복하고 모두 주인공이 되는 '자연을 닮은 인간'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학교는 지난 20일부터 내달 4일까지 신입생 모집을 위한 원서를 교부하고 있다. 합격 여부와 관련 1박 2일간 캠프활동을 통해 벌이는 면접이 가장 중요하다고.(문의: 041-567-5525) 한마음고는 지난 2003년 자연친화적이고 신나는 대안교육을 표방, 개교해 정원 120명(현재 70명)에 교사 13명이 몸담고 있다.

#대안학교 #한마음고등학교 #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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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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