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진 재정경제부 정책조정국장이 21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및 구조조정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유성호
21일 정부는 또 한 차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죽어 있는 건설시장을 활성화하여 경기를 살리자는 게 요지이다. 그런데 서민의 입장에서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대책들이 즐비하다. 건설사를 살리자는 건지, 서민 경제를 살리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제까지 만들어져 있던 투기 제한의 장치들을 푼다고 침체된 경기가 살아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자칫 투기꾼들에 의해 집값만 왕창 올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지는 게 아닌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추석 때 만난 시골에 사는 처남은 살고 있는 지방도시에 가장 잘 지어 놓은 아파트가 분양이 안 돼 난리라고 했다. 현금으로 천만원을 깎아 주고 인테리어를 최고급으로 무료로 바꾸어 준다는 홍보도 별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구릉지를 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여러 가지 문제가 뒤섞여 원인분석이야 쉽지 않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수요자와 공급자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누군들 좋은 주거 환경을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돈이 없는 것이다. 거주 인구가 극감하고 비정규직의 대량 양산과 실업자의 증가, 돈줄이 말라버린 지방 소도시에서 1억 5천짜리 아파트(수도권에서는 싼 아파트일지 모르겠지만)는 그림에 떡일 뿐인 것이다.
서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총선에서 대량으로 쏟아낸 뉴타운 공약들은 기대심리만 잔뜩 부풀게 만들었다. 그리고 경제 위기 이후 내가 사는 동네(서울 광진구)만 보더라도 집값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당장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물론 집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야 조금의 하락에도 가슴 철렁거릴 테지만 세입자나 거주의 개념으로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요란 떨 일도 아니다.
전세나 월세는 오히려 올라가는 추세이다. 같은 동네의 동생처럼 지내는 후배는 11월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집세가 너무 올라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천만원 전세를 7천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요구에 그 후배는 조금은 변두리로 방을 구한 것이다. 서운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이번 부동산 대책에서 주택담보 비율을 높이고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처방을 내놓았다. 1가구 2주택 양도세의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덧붙였다. 주택을 사기 위해 대출을 쉽게 하고,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처방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든다. 지금도 대출을 끼고 내 집을 산 사람들은 높은 이자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주택 담보 비율을 높여 많은 돈을 빌린다는 것은 돈을 빌려 쓰는 채무자로 보면 채무액이 그만큼 늘어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미국과 다르다고 강변했었다. 미국 은행의 주택 담보 비율과 우리나라 은행의 주택 담보 비율은 다르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 정부에서 주택 담보 비율을 높인다는 발표는 어떻게 봐야 할까?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 이거 대책 맞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야기된 경제 위기의 핵심은 무었인가? 상환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많은 돈을 빌려주고, 대출 받은 사람들은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는 경제구조. 즉, 실물 경제의 성장 없이 금융 자본만 성장시키는 경제 구조가 한계에 다다르면서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 형국이 아닌가? 대출 받은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하고 담보로 잡힌 집값이 폭락하고 은행이 부실화되고, 나라 전체가 백척간두 위기에 놓인 모습이 지금 미국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도 실물 경제에 대한 대안 없이 대출 규모를 늘리고 대출을 쉽게 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경제 위기를 닮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