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가 발생한 행사장 도로
육군본부
은하배씨는 "안전관리 소홀로 사람이 죽었는데도 주최측이 행사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화자찬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울화통이 치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경민이가 사망한 당일에 장례식장에 안치됐지만 행사 주최 측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다음 날인 20일 오후 1시 경 계룡시청에 직접 전화를 해 '왜 와보지도 않느냐'고 항의했다"며 "그때서야 계룡시 부시장과 직원 몇명, 육군본부 측 중령이 찾아왔다"고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는 "계룡시와 육군본부 측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특히 육군본부의 경우 관계자가 '상관이 해외출장 가서 모르겠다며 돌아오면 상의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은군의 아버지 은아무개씨는 외아들을 잃은 충격에 장례식을 마친 후 한동안 가족들과 연락을 끊다 23일 늦은 밤이 돼서야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9일 (재)계룡군문화 발전재단(이사장 최홍묵 계룡시장)과 육군본부가 각각 같은 장소에서 주최한 제2회 계룡군문화축제와 제7회 지상군페스티벌 행사 도중 행사장을 순회하는 셔틀버스에 은경민군이 치여 사망했다. 하지만 행사를 총괄한 계룡군문화발전재단 이사장인 최홍묵 계룡시장은 언론에 '사고 없이 무사히 성황리에 행사가 끝나 감사하다'는 요지의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다음은 23일 저녁 고 은경민군의 큰아버지 은하배씨와 한 인터뷰 요지.
- 숨진 경민군은 어떻게 생활해 왔나?"경민이는 외아들이고 4세 되던 해 아버지가 이혼한 후 줄곧 할아버지와 생활해왔다. 경민이 아버지가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식당이 집에서 멀고 늦게 끝나 할아버지에게 맡겼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돌봐 왔다."
- 경민이는 이날 계룡군(軍) 문화축제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경민이는 구김살이 전혀 없는 밝고 명랑하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이날도 같은 반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축제를 간다고 해 단체로 같이 갔다."
- 처음 사고 소식을 들은 때는 언제였나?"아버지인 남동생이 오후 5시 반 경 처음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보니 이미 숨이 멈추기 직전이었다. 계룡시 공무원 1명만이 응급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축제장에서 병원까지는 평소 구급차로 15분 이내 거리인데 축제 마지막 날이라 길이 복잡해 후송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육군본부, 상관 해외출장 가 모르겠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