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후보자 대기실 안내표지판(10.16 인천지법)
박근용
그런데 이번 두 재판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배심원이 등장하는 국민참여재판에 맞추어 재판에 임하는 준비가 진짜 되어있나 하는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했다. 이는 수원지법 재판과 인천지법 재판에 등장한 변호사가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수원지법 재판에도 피고인을 변호한 변호사는 1명이었고, 인천지법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지법 재판의 변호인은 이른바 '사선' 그러니까 피고인측에서 수임료를 주고 선임한 변호사였다. 반면 인천지법 재판의 변호인은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국가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국선(전담)변호사'였다.
인천지법 사건의 변론을 맡은 그 국선 변호사는 이번 재판이 첫 국민참여재판이 아니었다. 16일 재판은 인천지법에서 벌어진 6번째 국민참여재판이었는데, 그중 2~3번 이상을 맡았던 이다(어쩌면 그것보다 더 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원지법 사건의 변론을 맡은 그 사선 변호사는 분명 그 재판이 난생 처음 맡은 국민참여재판이었을 것이다.
수원지법 사건을 변론한 변호사는 시종일관 재판장쪽을 바라보며 변론을 하였다. 물론 재판의 쟁점과 입증계획을 설명하는 재판의 앞부분, 그리고 배심원들에게 변호인의 최후의견을 진술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배심원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증인신문, 증거물품 조사 등 재판의 핵심과정 내내 배심원들의 상태를 살피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배심원들이 듣기에 그리 분명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간혹 재판장하고만 이야기를 나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배심원도 방청객도 알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자신의 질문 이후 나오는 증인들의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배심원들에게 재차 설명하거나 또는 그 의미가 모호한 증인들의 답변을 재차 추궁하거나 분명하게 바로잡아주지도 않았다.
어쩌면 배심원의 결정을 판사가 꼭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게 지금 우리 참여재판에 관한 법률규정이므로,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판사만이라도 설득하겠다고 맘을 먹었기때문이었을까? 평소 이런 모습을 많이 보아온 재판장의 입장에서는 별로 불편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 답답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심원과 똑같은 정보량을 가지고 재판을 방청하고 배심원들과 똑같이 재판과정을 지켜보던 나의 입장에서 변호인의 태도는 정말 불만스러웠다. 물론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함께 방청한 동료 간사와 학생 5명도 이구동성으로 변호인에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인천지법의 변호인은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목소리도 몸짓도, 시선의 방향도 거의 배심원들을 향해있었다. 꼭 필요한 경우는 증인석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증인의 말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는 자신이 한 질문이 어떤 의미의 질문인지를 배심원들이 이해하게끔 부연설명을 꼭 해주었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입장에서는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을 것이다.
배심원으로 나온 시민들을 소외시켜서는 안 돼
▲참여연대는 수도권 지역 법원의 국민참여재판을 시민들과 함께 방청하는 행사를 진행중이다.
박근용
올해초부터 지난 9월 16일까지 전국에서 진행된 38건의 국민참여재판중 국선변호사가 맡은 사건이 28건이고, '사선' 변호사가 맡은 사건이 10건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피고인들에게는 국선전담변호사를 각 지방법원별로 배정해준다. 이때 문제되는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인 경우에는 그 지방법원에 지정되어 있는 국선전담변호사중에서도 1~2명이 도맡아 변론을 맡는다. 국민참여재판 준비의 노하우를 고려한 방침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서 각 지방법원에 소속된 국민참여재판 담당 국선변호사는 최소 2~3번씩 참여재판을 하면서 배심원이 있는 재판의 특성에 맞게끔 재판에 임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사선 변호사들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앞으로도 몇 년동안 사선 변호사가 국민참여재판을 맡을 기회는 개별 사선 변호사당 1~2번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직접 해본 경험이 없는 경우 그 노하우가 쌓일 수는 없다. 직접 경험은 없더라도 많은 리허설이나 간접경험, 교육의 기회라도 있다면 나을텐데, 그나마 없는 실정이다. 변론을 맡긴 의뢰인에게 변호사는 절대적으로 기대는 사람이다. 그들이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호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변론을 맡긴 의뢰인뿐만 아니라, 배심원 역할을 위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이틀 사흘 동안 법정에서 고생하는 일반시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배심원은 국민참여재판에 들러리로 나와있는게 아니다.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이야말로(실제 그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는지를 떠나서) 국민참여재판의 본질이자 성공여부를 가르는 것이다. 만약 배심원을 소외시키는 현상이, 배심원의 결정을 판사가 뒤집을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 규정때문이라면 이는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것이다.
만장일치로 결정한 살인사건과 다수결로 결정된 특수강간 사건 |
재판을 방청하는 사람들은 다 느끼겠지만, 재판을 모니터하러 들어왔지만 재판에서 다루는 사건의 드라마틱함에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수원지법에서 다룬 사건은, 발목 이하 다리가 절단된 80대 노인을 때려 숨지게 해 살인혐의로 기소된 남자이야기이고, 인천지법에서 다룬 사건은, 가사간병도우미 일을 위해 자신에 집에 온 30대 후반 여성을 식칼로 위협해 강간하여 '특수강간'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자이야기였다.
두 사건 모두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두 피고인 모두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했다. 수원지법 사건의 피고인은 대문안에서 반지하 방으로 연결되는 계단아래로 내려가다 휠체어가 굴러 떨어져 심하게 부상당한 노인을 자기가 오히려 구해주고 방안에 데려간 일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인천지법 사건의 피고인은 평소 성적인 관계를 맺어온 피해자와 간단한 실랑이가 있었을 뿐이지 칼을 가지고 강간을 했던 일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각 사건 현장 주변에 있었거나 또는 사건발생 직후 피해자를 만났던 사람들의 증언(윗집 주인, 탈출해나온 여성을 본 아파트 주민과 성폭력상담소의 상담원 등)을 비롯해 경찰과 검찰에서의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미루어 이들에게는 모두 공소 사실대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수원지법의 경우는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라고 결정했고 인천지법의 경우는 배심원들이 다수결에 의해 유죄라 결정했다. 두 법원의 재판부도 모두 배심원과 동일하게 유죄를 선고했고, 수원지법의 경우는 징역 3년 6개월형이, 인천지법의 경우는 징역 6년형이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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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여연대 웹사이트에 오시면 이 글 이외에 다른 국민참여재판 방청기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peoplepower21.org/Judic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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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권력감시와 사법개혁, 반부패 운동, 정치개혁 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약 20년 시민운동 경험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보려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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