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서울 한 대학의 중앙도서관 풍경. 취업 준비에 중간고사까지 겹친 대학가 도서관은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송주민
머리도 식힐 겸 간만에 찾은 내 모교. 그곳에서 내가 활동했던 동아리 선후배들의 소식과 학교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들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나처럼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
내가 신입생일 때만 해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같은 새내기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다른 학년보다 1학년들이 도서관 열람실에 가장 많다는 이야기. 그것도 전공수업 공부는 물론 토익책을 꺼내 공부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이야기. 영어 동아리나 과내 학술 동아리, 공모전 위주의 동아리에는 사람이 계속 늘어가는데, 그 외 동아리에는 등록만 해놓고 나오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 동아리 회장을 세워야 하는데 다들 공부한다고 하기 싫어해서 세울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 등등…. 정말 '나는 학교 다닐 때 뭐 했나'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내 귀와 머리를 망치로 때려댔다.
학교 곳곳에 있는 게시판에는 온갖 종류의 강좌 홍보 포스터가 빼곡이 붙어 있다. 토익 강좌, MOS 강좌, 각종 자격증 강좌, 공무원 시험 대비 강좌….
현실의 벽은 어느새 '진리의 상아탑'이라던 대학을 '취업을 위한 청년 양성소'로 바꿔 버렸다. 어디에도 인문학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 침 튀기며 토론하는 곳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취업 관련 강좌들이 고스란히 차지해 버렸다. 마치 그런 학문이나 사회 현상은 취업에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듯이.
날개를 접은 백조, 다시 날아오를 수 있기를1년 9개월째 백수(청년실업자, 주로 남성)인 아들도 모자라 딸까지 백조(여성청년실업자)가 된 뒤로 어머니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으신다. 모임 구성원 중 우리집에만 백수·백조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가족들끼리 집에 모여서 식사를 하면 예전과 다르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학교 다닐 때보다 줄어든 생활비 때문에 한 달 중 반 이상의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운 적도 있다. 길을 걸으면 모두 다 나를 비웃는 것 같다. 가끔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연일 현재의 상황을 위기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취업 잘하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이러다 정말 몇 년 동안 백조로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1년 3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이 시간 동안 '나'라는 백조 한 마리는 날개를 접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내게 '취직'이라는 하늘은 그저 목을 쭉 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를 열심히 움직여봐도 다시 물에 곤두박질쳐 버린다. 이제는 '날개를 펴고 날아야 한다'라는 생각까지 서서히 사라지고, 그냥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과연, 난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까. 날개를 접은 백조,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제발 언제, 어디라도 좋으니, 꼭 날개를 펴고 날 수 있기를.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날아오를 수 있기를.
오늘도 소박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 소원을 가지고 하루를 마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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