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강연회에 참여했던 30여 명의 독자들이 가장 궁금했던 주제는 '분당사태'일 것이다. 실제로 질의응답 시간에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이기도 했다.
심상정 의원은 "분당을 했다기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분당이 된 거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당 때문에 총선에서 손실된 측면이 분명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5년 전 권영길 후보는 의석 하나 없는 정당을 가지고 97만 표나 차지했으며, 17대 국회에서도 10석을 차지할 정도로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5년 전에 비해서 27%나 득표율이 떨어졌고, 게다가 민주노동당의 배타적 지지세력인 민주노총마저도 20%만이 민노당을 선택했다는 것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들의 최후통첩이었다. 여기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거에서 크게 실패했다면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하고, 노선에 대해서 투쟁을 벌일 만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당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새로운 문법과 새로운 시대정신을 쟁취하며 스스로를 쇄신시키지 못할 때 자주(NL) 대 평등(PD)이라는 낡은 구도는 엄존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새로운 지지기반 획득 실패라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정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결국 비정규직 서민들은 민주노동당을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할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혁신안에서도 '참패'가 '실망스러운 결과'로 수정되는 모습을 보고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으로서 활력을 잃었다고 그는 판단했다. 특히 가슴아팠던 대목은 단기필마로 대선과 총선경쟁에 뛰어든 창조한국당의 성적이다.
30년 사회운동과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4년 동안 원내활동을 했던 정당이 양심적 중소기업주에 불과한 문국현 개인에게 더블스코어로 진 것은 변명의 여지도 없는 상황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 어떤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 심상정 의원은 지금까지 진보세력이 비판에는 굉장히 유능했지만, 반대와 비판만 가지고는 전략적 지지층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을 넘어서 대안으로서 신뢰를 얻어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브라질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브라질의 집권당은 룰라의 뻬떼당(PT : 브라질 노동자당)은 7개 정당이 연립하여 구성된 정부인데, 맛보기정치를 잘 하기로 유명했다. 지자체를 장악해서 기존 보수가 할 수 없는 정책을 시행하는 등 진보정치의 진수를 보여주어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진보정치의 모범을 창출해서 이를 확산시키고, 확산이 반복되다 보면 자연히 확신이 된다는 것이 심상정 의원의 지론이다.
"관념에서 생활, 삶으로 내려가 아래로부터 진보신당의 슬로건이 흥건히 고일 때 (진보정치의 이상이) 발현될 수 있다"
의석이 한 표도 없는 정당이라 9시 뉴스에도 나오지 않지만, 한국 정치에 '의석 1표'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심상정 의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오래 전에 지나가다 인사를 나눴지만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고 나를 기억해주고, 사람들의 말에 온몸, 온마음으로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데서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40년 세월 동안 정신없이 달려와, 이젠 여유가 필요해
심상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애정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지난 17대 대선에서 500만표 이상의 차이로 압승을 거둔 것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잘 해서가 아니라 민주당과 정동영 후보가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노무현에 대한 역선택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면,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은 현재 시점에는 이명박에 대해서도 역선택을 하는 징후를 잘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에 대한 결정적인 근거는 지지율인데, 당선 시점과 베이징올림픽 때를 제외하고는 20%대를 넘어서지 못한 점이다. 더 답답한 것은 '야당'이다. 홉스봄은 야당을 '대안권력'이라고 했는데, 민주당은 15% 지지율로 완전히 굳혀 버렸다. 심상정 의원은 민주당이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노선투쟁이 나거나 지도부 책임론이라도 불거질 만한데 너무도 조용한 데서 이미 민주당의 종말이 예고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연이 끝나 질의응답 시간에는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대체로 분당에 대한 질책과 민노당과의 차별성을 주문하는 말이었다. 예정된 시간을 초과해 9시 30분경에는 뒤풀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정치 이야기보다는 책 이야기로 말문을 꺼내며 준비했던 '독한 질문'을 던졌다. <당당한 아름다움>은 여느 정치인이 벌이는 요식행위를 뛰어넘는 진솔함과 높은 품격이 담겨 있다. 정태인 씨가 별 다섯 개를 줬을 정도다.
하지만 책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심상정'이 있어야 할 '주어' 자리에 '열사, 동지' 같은 말에 대한 '대명사'로서의 작가가 있을 뿐이다. 숨가쁜 인생을 살아왔지만 '상황논리에 짓눌린' 인간 심상정의 모습이 비췄다.
심상정 의원은 강연에서 진보신당의 '총선'과 '대통령 선거'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당의 정책뿐만 아니라 개인의 캐릭터도 분명히 중요하다. 현대사를 살펴봐도 소수에 의해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된 기록이 많을 정도로 대중은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다 덧붙여 시대가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인물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심상정 의원이 '대통령'으로서 경영능력과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간 심상정'을 드러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질문의 골자였다. 즉, 인간 심상정을 드러내는 <당당한 아름다움> 2부가 나와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심상정 의원은 특유의 진솔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4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당당한 아름다움>이 나왔을 때 '인간 심상정'의 부분에 대해서 주위에서 지적한 부분이 그것이었으며 자신도 그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비상대책위원장, 공동대표 등 직위에 가려져 있던 그의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휴식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것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심상정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충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정치인 심상정뿐만 아니라 '인간 심상정'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여성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사람의 아내로서 심상정의 공간을 이제는 조금씩 허락할 때가 되지는 않았는지. 심상정 의원을 만나기 전에 떠오르는 책이 있어 새 책으로 선물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1권인데, 리쿠르고스 편을 주목해서 봐달라고 심 의원에게 부탁했다. 서양철학의 아버지가 플라톤이라면, 리쿠르고스는 플라톤의 정신적 아버지다. 실제로 <국가 정체>라는 대작의 모델은 리쿠르고스의 스파르타였다. 리쿠르고스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개혁정책을 폈지만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고, 한 소년이 던진 돌에 한쪽 눈을 실명했을 만큼 큰 시련을 겪었는데,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 심상정 의원을 떠올랐다. 심상정 의원과 진보신당이 의석 없는 4년을 슬기롭게 보내고 진보정치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올렸습니다.
2008.11.03 15:4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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