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입이 열 개라도...
 우린 '작은돈' 귀중함 잊었다"

[인터뷰] 이시재 환경연합 특별대책회의 의장

등록 2008.11.04 18:08수정 2008.11.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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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특별대책회의 의장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특별대책회의 의장장윤선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특별대책회의 의장 ⓒ 장윤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환경운동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기가 팍 죽은 상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싸워야 할 환경 사안이 너무 많아졌다."

 

전·현직 활동가들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환경운동연합이 공황상태다. 기획운영국 K부장이 기업과 시민들로부터 받은 후원금 3억원을 빼돌려 자동차 구입대금과 애인의 부채변제 등에 썼다는 검찰발표는 충격 그 자체다. 

 

"정부탄압이라더니 꼴좋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실무진은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납작 엎드려 있다. 죄질이 너무 나빠 대응할 엄두도 못 내겠다는 자성도 터져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창립멤버인 이시재(60) 가톨릭대 교수는 이 사건을 기화로 사의를 표명한 윤준하 공동대표와 안병옥 사무총장을 대신해 '해결사'로 나서게 됐다. 이달 29일 열리는 전국대표자회의를 통해 발표될 쇄신안 마련의 총대를 메게 된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4일 오전 서울 목동의 한 찻집에서 '환경운동연합 특별대책회의 의장'을 맡게 된 이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특대위 의장을 맡은 후 언론과의 첫 인터뷰"라는 그는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이 때문에 환경운동 전체가 침체돼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응해야 할 환경 사안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환경운동연합 전·현직 활동가들의 억대 공금유용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과거에는 인사와 재정을 통합 운영했으나 독립채산제로 분화해왔다. 대부분 독자 회계구조로 되어 있었으나 습지센터는 본부 안에서 관리됐다. 그러나 습지센터 실무자들은 독립을 지향했다. 습지사업을 기안해 올리면 그것보다 우선되는 사업을 먼저 집행하는 등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또 재정적 어려움이 있으니 남겨서 쓰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로도 횡령은 합리화될 수 없고, 조직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다."

 

- 검찰에 따르면 기획운영국 K부장은 3억원을 빼돌려 자동차 구입대금, 애인의 부채변제 등에 썼다. 이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윤준하 공동대표와 안병옥 사무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달 29일 열리는 대표자회의 이후 쇄신안을 발표할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국내에서 가장 큰 NGO로 시민사회 전체의 자산이다. 잘 개혁해서 함께 나가야 할 단체다."

 

- K부장이 큰 돈을 횡령하는 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것도 좀체 이해되지 않는다.

"K부장이 산림조합중앙회로부터 <로빈슨> 연극을 하면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찰 발표는 어폐가 있다. 공연이 다 끝난 뒤에 따로 받아 가로챈 게 아니다. 어떤 행사를 추진할 때 예산집행이 굉장히 느린 경우가 있다. 먼저 사업을 집행하고 예산지원을 나중에 받은 것이지 다 해놓고 나중에 따로 돈 받아먹은 게 아니다. 충분히 해명 가능하다."

 

- 그럼에도 1억원 이상의 돈을 횡령했다는 것은 큰일 아닌가.

"정말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간사 대부분이 100만원 수준의 활동비를 받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과 중앙환경운동연합을 합쳐 한 달에 거치는 회비가 6000만원 수준이다. 회원회비가 전체예산의 45% 정도다. 그걸로는 부족해서 1년에 한 번 여는 후원회로 충당한다. 정부 프로젝트는 비판적 견해가 많아 2~3년 전부터 안 받는다. 다만 지역 환경연합은 재정상황이 열악해 안할 수 없다. 회비 내는 회원이 서울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회계부정사건, 환경운동의 독이냐 약이냐

 

-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회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가장 걱정되는 대목이다.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은 대개 30~40대 샐러리맨이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때는 자발적 회원들이 많이 참여했고, 회원이 많이 늘었다. 자원봉사자를 무려 1만5000명이나 꾸릴 수 있었다. 이 때 결합한 사람들은 실망하고 떠날지 모르겠다.

 

시민운동은 풀뿌리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나는 이 희망의 근거를 발견했다. 환경운동연합 후원의 밤 때 기업후원은 거의 끊겼지만 일반 시민 후원이 늘어났다. 물론 나 같은 임원들도 작년의 곱절을 냈다. 나는 풀뿌리의 힘을 믿는다. 이 땅에 환경운동이 정녕 필요하다면, 지금은 불명예를 안고 있지만 극복할 거라고 믿는다."

 

- 이번 사건이 환경운동연합에 약이 될 것 같나, 독이 될 것 같나.

"잘 헤쳐가면 약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감시체제를 갖춰야 하지만 그렇다고 시민단체를 관료제로 운영할 수는 없다. 관료제로 하면 조직이 죽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람을 믿고 일했다. 앞으로도 사람을 계속 믿고 일할 수 있을까, 제도개선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신의 문제다. 시민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활동가들을 어떻게 키워내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 조직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보나.

"기획사업부 같은 게 필요한가 고민이다. 프로젝트를 전문으로 하는 부서인데 필요 없지 않나 싶다. 가장 이상적인 조직운영은 지역조직이 분담금을 내고 소수 중앙조직이 사업비 걱정 없이 일하는 것인데 그건 쉽지 않다. 그래도 가급적 중앙은 조직을 슬림화해서 정책과 운동기획, 국제연대만 하는 것으로 축소해야 한다."

 

 지난 9월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가운데 경찰들이 건물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지난 9월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가운데 경찰들이 건물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권우성
지난 9월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가운데 경찰들이 건물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 권우성

 

"주먹구구식 회계는 아니었다... 이명박정부 걸림돌 제거용 수사는 아닌가"

 

- 주먹구구식 회계운영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많다.

"주먹구구식은 아니었다. K 부장의 경우는 도저히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였다. 서두에 독립채산제로 분리했다고 말했는데, 그 인수인계 과정에서 그가 사업비 통장 하나를 꿰찼고 돈을 가로채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환경운동연합에는 부서별로 여러 개의 통장이 있고, 그걸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회계의 헤드쿼터(본부)가 통제하지 않으니까 틈새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이런 경우엔 통장이 있어도 그 통장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회계감사를 해도 안 나타나는 부분이었다."

 

- K 부장 사건은 어떤 경위로 확인됐나.

"환경연합 점검반과 검찰 조사에서 일부 확인했다. 계좌추적과 활동가 소환조사에서 이 계좌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뒤 점검반이 K 부장을 상대로 추궁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 조사는 몇 주간 계속 됐고 돈도 일부 반납받았다. 파면조치 했고, 검찰에 고소도 했다."

 

- 검찰이 처음 이 사건을 수사할 때 환경운동연합은 대운하 반대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를 옥죄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금도 비슷한 생각인가.

"결과적으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이명박 정부 이후 환경사안이 많아졌다. 대운하·그린벨트 규제완화·수도권 규제완화 등 싸울 일이 많은데, 이것 대응하느라 다른 걸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검찰이 수사를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자기 주장에 걸림돌이 되는 시민운동을 제거하는 용도로 이 수사를 활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환경운동은 기가 팍 죽었다.

 

수사과정도 굉장히 정치적이었다. 피의자 소환 없이 사무실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두 간사 사건 이외의 대운하 자료도 모조리 가져갔다. 검찰은 지속적으로 언론에 일부 사실을 흘리며 언론플레이 했다. 이게 옳은가?"

 

 언론은 환경운동연합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은 환경운동연합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장윤선
언론은 환경운동연합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 장윤선

"언론의 '썩은 내 진동하는 돈 오염' 비판 겸허히 받겠다 그러나..."

 

- 언론은 '환경운동을 팔아먹었다'부터 '썩은내 진동하는 돈 오염' 등 온갖 비난을 쏟아낸다. 

"검찰의 기소의견만을 토대로 쓴 거라고 본다. 1970년대 기자들은 간첩사건 나면 그대로 받아썼다. 진위를 따지지 않았다. 그때와 똑같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K 부장이 큰 금액을 횡령한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이다. 그 돈을 아버지를 위해 썼든, 애인을 위해 썼든. 검찰은 왜 유독 그 부분을 강조했을까. 또 언론은 왜 그걸 타이틀로 뽑았을까. 도덕적으로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라고 본다. 변명할 마음은 없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 이명박 정부 이후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기업 후원이 끊겼다.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참여연대는 회비만 갖고 운영한다. 환경운동연합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난 수년간 여러 프로젝트를 잘 활용했지만 시민들이 내는 작은 돈의 귀중함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500원, 1000원의 귀중함을 새로 인식해야 한다. "

 

- 특별대책회의 의장을 맡았는데, 어렵지 않나.

"나는 공해추방운동연합 때부터 활동했다. 환경운동연합 창립멤버다. 환경운동과 여성운동은 기존 가치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운동이다. 내 인생에서 결코 후회하거나 반성할 이유가 없는 운동이라고 본다. 그래서 시간 내고, 돈 내고, 정성 쏟고 있다. 작은 일이지만 환경운동연합에 봉사하는 걸 내 인생 최고의 명예로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이 어려움은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2008.11.04 18:08ⓒ 2008 OhmyNews
#환경운동연합 #회계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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