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결혼식은 마당에서 하겠다고?

구체적 마당결혼식 계획 같고 있는 남편... 축의금에 대한 미련은 어쩌죠

등록 2008.11.07 17:28수정 2008.11.07 17:2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식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옛말도 못 들었는지 입만 열면 "우리 아이들 결혼식은 마당에서 하겠다"고 큰 소리 치는 간 큰 아빠가 있다. 그는 바로 내 남편이다. 복잡한 웨딩홀에서 주례를 몇 번 서본 뒤부터 하기 시작한 말인데 아이들을 출가시킨 날이 멀지 않은 지금은 아예 입버릇이 되었다.

 

"결혼식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음 결혼식 하객이 들이닥치는 난장판 결혼식은 정말 할 것이 못 돼. 게다가 하객들 좀 보라지. 이건 축하를 하러 왔는지, 눈도장 찍으러 왔는지…. 그저 축의금 봉투 내밀고 곧바로 식당으로 직행하기 일쑤잖아. 우리 아이들은 마당 결혼식을 시킵시다. 아주 가까운 친인척들만 초대해서 경건하고 조촐하게. 우리집 마당이 좁다 싶으면 주변에 지인들 마당을 빌리면 되지 뭐. 풍경도 근사하겠다 잔디밭 마당도 아름답겠다 뭐가 모자라?"

 

아직 시집 갈 생각이 전혀 없는 딸아이를 앞에 앉혀놓고 결혼식 장소부터 못 박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그 정도가 지나쳐 자식들 혼사를 앞둔 친구들한테까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마당결혼식'을 강요하는 상황이니, 중증도 보통 중증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부부를 앉혀놓고 피로연 계획까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는 것이었다. 

 

"유명 웨딩홀, 호텔결혼식 음식은 값만 비싸고 맛도 없더라. 그럴 바에야 우리가 음식도 직접 장만하자. 멸치 다시국물에 잔치국수를 말아내고 김치를 맛있게 담아 푸짐하게 담아내면 10만원 육박하는 뷔페 음식만 못 하겠어? 그리고 떡과 과일 마른안주, 섭섭하다면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잡채 정도 추가하면 먹는 사람 즐겁고 대접하는 혼주 뿌듯하고 뭐 그럴 것 아니야. 우리집사람이 잔치국수는 잘 하니까 결혼식 음식은 우리가 책임질게."

 

이렇게 남편이 큰소리를 치니 친구부부가 "그거 너무 좋겠다"고 박수까지 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랬으면 좋겠다"며 희망사항을 읊는 정도로 남편의 주장을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쯤에서 제동을 걸지 않으면 곤란할 것 같았다. 친구부부가 간 뒤 정색을 하고 남편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당신 결혼식도 당신 마음대로 못 했는데 자식 결혼식을 마음대로 결정하겠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아이들도 나름대로 활동무대가 있고, 사돈집 사정도 있는데 한쪽 의견대로 시골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주장하면 그게 먹히겠냐고. 더구나 야외결혼식은 날씨가 관건인데 봄가을, 화창한 날씨를 무슨 수로 골라잡을 것이며 또 결혼식 축의금은 상부상조 개념인데 우리도 준만큼 돌려받아야지…."

 

마지막 축의금 얘기를 할 땐 너무 치사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뭐 솔직한 심정인데 어쩌랴. 밀려오는 경조사 소식에 허리 휠 때마다 '나중에 돌려받을 것인데'라며 애써 자위하며 버텼는데 가까운 친인척 몇 분 모시자니,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모를까 동의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사실 우리 혼례문화가 너무 겉치레 중심이고 사치스럽다는 데엔 이견을 달 생각이 없다. 평생에 한 번인데, 마음껏 해주고 싶은 부모 입장이나 그 하루만큼은 왕자, 공주 부럽지 않게 화려하고 싶다는 신랑신부 입장이나 모두 같을 것이다.

 

모아둔 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아서까지 혼례준비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는 뒷감당 어려워 쩔쩔매는 친구들 사정과 별반 진배없는 내 형편. 벌써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선 실리적이고 소박하게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해주자는 남편의 의견에 쌍수 들고 환영해도 부족한데 우리 혼례문화 관습에 도전장을 낼 만큼 용기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긴 하다.

 

이럴 땐 서양인들의 결혼풍습이 너무나 부럽다. 자기 집 정원이든지, 교회든지 웨딩드레스와 부케도 소박한 것을 골라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보면 남의 이목을 전혀 개의치 않는 서양인의 실용적인 사고가 정말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말이다.

 

a 지인의 아들 전통혼례식 풍물패의 공연으로 흥겨운 잔칫집 분위기를 돋우고...

지인의 아들 전통혼례식 풍물패의 공연으로 흥겨운 잔칫집 분위기를 돋우고... ⓒ 조명자

▲ 지인의 아들 전통혼례식 풍물패의 공연으로 흥겨운 잔칫집 분위기를 돋우고... ⓒ 조명자

 

a  마당에서 전통혼례식을 올린 지인의 아들. 신랑신부 맞절 순서다.

마당에서 전통혼례식을 올린 지인의 아들. 신랑신부 맞절 순서다. ⓒ 조명자

마당에서 전통혼례식을 올린 지인의 아들. 신랑신부 맞절 순서다. ⓒ 조명자

a  형님의 결혼식에 식구가 빠질 수 있나?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 '사자'가 하객들 사이에 의젓하게 좌정하고 있다.

형님의 결혼식에 식구가 빠질 수 있나?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 '사자'가 하객들 사이에 의젓하게 좌정하고 있다. ⓒ 조명자

형님의 결혼식에 식구가 빠질 수 있나?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 '사자'가 하객들 사이에 의젓하게 좌정하고 있다. ⓒ 조명자

 

정말 남편 말대로 경건하면서도 잔칫집 분위기가 물씬 나는 '마당결혼식'을 결심해 봐? 얼마 전 자기 집 마당에서 전통혼례 방식으로 아들 결혼식을 올려주는 지인의 경사에 다녀온 뒤부터 그런 생각이 부쩍 더해진다.

 

물론 서양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신랑과 서양인 신부의 결혼식이라는 특이점이 있었지만, 사물놀이패의 축하공연이 어우러진 전통혼례는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가깝게 지내는 하객들이 신랑신부의 첫 출발을 마음껏 축복해주면서 흥겨운 잔치마당을 함께 하는 모습. 우리 조상들의 초례청 풍경을 보는 것 같아 너무나 흥겨웠다.

 

지금부터 슬슬 아이들 앉혀놓고 '마당결혼식'에 관한 토론을 해 볼꺼나. 아이들과 마음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축의금에 대한 미련이… 아아, 이 속물인간의 한계라니.

#마당 결혼식 #전통혼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2. 2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3. 3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4. 4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5. 5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