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유혹과 가혹한 시련은 본시 한 뿌리이다
매일 새벽 6시부터 시작하는 백팔배의 60번째는 ‘나를 강하게 하는 시련에 감사하며’ 올리는 절이다. 시련은 흔히 대장간에서 쇠를 담금질하는 과정에 비유한다. 세상은 대장간이고 나는 담금질 당하는 쇠조각이다. 내가 전가의 보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만큼 시련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에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신은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했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 사실을 증명했다.
인생을 여유 있게 80년으로 계산하더라도 이제 내 나이 60에 가까우니 겨울 문턱에 서 있는 셈이다. 20의 봄을 지나고 40의 여름에 이른 후 이제 60의 가을을 거의 다 보냈으니 80의 겨울만 남았다. 남은 겨울삶의 질은 지금까지 지은 인생 농사의 결과에 좌우될 것이다.
우리집 텃밭 앞의 감나무는 올해 매우 풍성한 열매를 맺었고 시랑헌 콩밭은 병충해 때문에 한 알도 수확하지 못했다. 다들 콩 농사만큼 쉬운 농사가 없다는 데도 말이다. 나의 인생 농사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춥고 배고프지 않을 정도는 될 것이다’라고 자위 하지만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른 둘이 되가는 사내자식을 두고 있는 탓에 결혼자금과 비상금 명목으로 약간의 돈을 저축해두고 있다. 10월 초에 집사람은 정기적금이 만기되어 다시 연장하려고 은행에 간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읽은 경제문제를 다룬 기사들이 생각 나, 우리나라 원화보다 미국 달러가 더 변동 폭이 적을 것 같으니 달러로 외환정기적금을 넣으라고 했다.
나는 졸지에 환 투기꾼이 되었다. 나의 달러 저축금액의 가치는 하루에도 천만원이 넘게 출렁거린다. 근무시간에도 수시로 환율이 궁금해졌고 미국증권 시장도 밤잠을 설치면서 들랑거리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밤낮으로 매수 타임을 쫒는 동안 정신이 많이 피폐해졌다. 이것은 아니다 싶어 외환적금을 해약하고 다시 한화 정기적금으로 되돌아왔다.
나와 집사람은 나의 건강이 악화되면 서울에서 살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소규모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여 전세 놓고 있다. 약 7년 전에 샀다. 한때는 매입 금액의 3배 정도까지 올랐다. 지금은 현금으로 전환하여 보유하고 싶어 급매물로 내 놓은 지 몇 개월이 됐지만 부동산에서 단 한차례도 연락이 없다.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재산가치의 폭락은 모두가 당하는 일이니 운명의 소관이고, 재산가치의 폭락에서 파생된 몇푼의 불로소득을 기분좋은 횡재라고 여기는 나와 집사람의 계산방식은 어리석은 원숭이의 조삼모사(朝三暮四)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불로소득의 유혹은 강하다. 집사람은 달러가치가 천 이백 원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한번 들어가 보자고 슬며시 충동한다. 오랫동안 꿀단지에 머무는 개미들이 온몸에 끈적거리는 꿀을 묻히고 바둥거리다가 결국 꿀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은 볼 수있는 자만이 볼 수있는 자연의 섭리이다.
선량들은 탐욕의 본질과 그 종착역 알아야할 때
대부분의 서민들은 살고 있는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사는 집은 그저 사는 집일 뿐이다. 은퇴 후에는 연금이나 저축한 예금으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은 그것이 아니다. 지금 1억원이 내년에도 1억원의 가치를 갖고 있을 것이란 기대는 낭패보기 쉬운 상황이 되버렸다.
미국의 자본주의 상징인 월가는 쓰러져가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기축통화의 기득권을 이용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돈을 마구 찍어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 이러한 돈은 결국 세계 곳곳으로 흘러들어가 거품과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결국은 미국 자본주의 붕괴라는 초유의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버는 돈은 없고 연금이나 저축에 의존할 은퇴 예정자들의 생활비는 물가 상승곡선을 따라갈 수 없고 소유하고있는 돈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여 생계를 꾸리는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올 것 같아 걱정이다. 오늘 읽어본 <오마이뉴스> 한 기사의 제목은 'MB는 펀드를 권하고 오바마는 저축을 권한다'였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고속 경제성장을 위한 저금리 경제정책으로 부동산 거품이 일었고 거품의 많은 부분을 투기억제 명목으로 정부에서 걷어갔다. 10억짜리 아파트를 팔면 3~4억이 세금이다. 투전판을 벌려놓고 고리를 뜯는 시정잡배들이나 할 수있는 행위를 정부에서 권장하고 부채질한 샘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걷친 양도소득세는 몇 십 조 원에 이르고 각종 대형 국책사업의 보상금으로 풀릴 돈의 규모가 몇 백 조 원에 이른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흥청망청의 잔치판은 어차피 모두가 취해있으니까 모르겠지만 이제 잔치도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반듯이 심한 악취를 풍길 뒷마당에 남겨질 쓰레기들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혹한 시련과 타협
나는 몇 년 전 뷰차드부부가 버려진 돌산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카나다 벤쿠버 앞 빅토리아 섬에 있는 뷰차드가든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때 나도 집사람과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많은 시행착오 때문에 발생한 금전적인 손해와 정신적 육체적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견딜만한 것들이었다.
집사람은 사랑헌 겨울준비를 위한 마무리 단계인 몰딩작업과 실리콘작업을 하다가 잠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전동공구 상해 사고를 내고말았다. 수술 후 3주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집사람은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인 피해 의식이 겹쳐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있다. 자신이 바보 같기도 하고 내가 원망스럽기도 한 모양이다. 집사람이 상처를 입은 지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그녀를 원 상태로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영원히 어려울 것 같다.
어제 아침엔 사랑헌의 목수 일을 위한 공구들을 대충 챙겨가지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몇푼안 되는 현금을 아끼고 싶고 집사람 마음의 병이 심각하니 당분간 사랑헌 일을 모두 보류하겠다는 의미이다. 오후에는 동남아 여행을 떠나는 집사람을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왔다. 일주일이 못되는 기간이나마 나는 혼자 있게 됐다. 33년간 동고동락한 나의 인생 동반자이다. 집사람을 공항으로 떠나보내고 나니 당혹스러움과 혼자만의 여유가 동시에 밀려든다.
건강을 담보로 잡힌 나의 선택
나는 뇌졸중을 앓고 난 후부터 건강문제를 가장 우선시 했다. 몇 년 남은 정년퇴임도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앞당길 계획이었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다시 정년 때까지 연구업무에 복귀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한다. 나와 집사람은 정년을 못 채우고 뇌졸중이 재발되어 연구소를 그만두는 것 보다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요양을 위한 전원생활이 바람직하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전 세계로 번지는 금융시장의 위기와 실물경기의 후퇴 양상을 지켜보면서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연구소 업무에 충실해야할 것 같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돈을 버는 기간을 늘리고 여분의 돈을 비축함이 현명하다는 판단에서이다. 대신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틈새를 마련해 둬야겠다.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한 일에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들은 건축물 완공 후 자기가 저 집을 지었다고 말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보아왔다. 우습고 어색하게 들렸으나 건축설계 공부에 입문하고 난 후에는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고 충분히 공감하게 됬다. 두 칸의 오두막을 지어보면서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다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행동인지 알게되었다. 젊고 건강한 목수들이 시공하더라도 설계와 시공감리는 내손으로 하고 싶다.
건축설계 공부를 위해 Autocad 프로그램과 건축전용 Revit Architecture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집 서재에 있는 컴퓨터에 설치하였다. 서양의 중목구조 방식의 Timber Frame 설계전용프로그램도 Dietrich's NA사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하여 설치하였다. 사랑헌으로 내려가서 해야할 본격적인 건축작업을 3년 보류하고 그 동안 설계위주의 공부와 건축이론 공부로 꿈을 달래기로 한 것이다. 현명한 선택으로 이뤄지길 바랄뿐이다. 이미 건강을 담보로 잡힌 선택이다.
집 창고를 목공 작업실로 꾸며 내가 설계한 모형을 축소모델로 제작해 볼 생각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끝나면, 나의 설계도면을 목조건축의 본 고장으로 보내 검증 받아 시공할까 생각하고 있다. 시공 전에 국내 한옥학교 6개월 코스와 캐나다 대학에서 개설한 전문 Timber Frame 건축과정을 이수하려고 하지만 꿈으로 끝날까 두렵다.
요즈음 사고방식은 ‘천하를 얻고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에서 ‘건강을 지킨다고 해도, 어른으로써 지녀야 할 품위를 잃어버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담스런 짐이 된다면 생존의 의미가 있을까?’로 바꿨다. 어린애 같은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집사람 품에 안겨 “그 동안 고마웠네, 나 먼저 감세”라고 말할 때까지 경제적으로 자립한 인간이고 싶다. 누구에게도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인으로 최후까지 남고 싶다.
연말까지 국내 학술지에 1편, 국외학술지에 1편의 논문을 기재하기 위해 오늘도 나의 능력의 12분을 사용하고 있다.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최상의 노력이다. 겨울의 문턱이지만 연구소 앞마당의 단풍은 아름답기 만 하다.
2008.11.12 11:0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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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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