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11.14 16:04수정 2008.11.14 16:04
"로이 로이 끄라통, 로이 로이 끄라통 ♬"
태국의 전통악기 '승'을 배울때 더듬더듬 쳤던 노래이다. 요 근래 거리를 다니면 이 노래가 귓가에 많이 들리곤 했다.
"'까올리 낙쓱사(한국의 대학생들)', 프레의 로이끄라통은 재밌있답니다. 한 번 체험해보겠습니까?"
쏨싹 교장선생님의 제안, 우리는 11월 11일 전야제를 보기 위해 잠시 왕리앙 마을을 뒤로 하고 프레 시내로 나갔다. 태국 북부의 고도 치앙마이, 람푼, 람빵과 같은 날 '로이끄라통'을 여는 프레는 전야제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싸눅마이?(즐거운가?)"
쏨싹 선생님이 묻는다. 확실히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프레지역에 전야제 행렬이 족히 1㎞가 넘고, 미인선발대회가 함께 열리니 흥미로웠다. 각 지역에서 선발된 미인들은 각종 전구와 조형물로 치장된 차 중간에 앉아서 '미스 코리아'가 손을 흔들듯이 웃으면서 사람들을 향해 인사했고, 그 뒤를 잇는 행렬은 각자 마을에 특색에 맞게 전통춤 행렬, 꽃다발 행렬, 깃발 행렬 등을 진행했다. 그 행렬에는 마을의 노인부터 아이까지, 경찰관부터 선생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참여하고 있었다.
행렬이 끝 무렵에 다다르자, 야시장이 선 중심에선 '무에타이'가 선보여졌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법한 아이부터 제법 성인티가 나는 청소년까지의 흥미진진한 무에타이를 지켜보았다. 두 개의 체육관에서 선수를 선발해서 토너먼트 식으로 진행되는 듯한 경기는 프레지역의 복싱연합 스탭들이 관할해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중학생 정도로 되보이는 여자아이들의 무에타이 경기!
이 경기 전 나는 쏨싹 선생님 덕에 '까올리(한국사람)'라는 이유로 링 위에 올라가 선수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는 의식을 했다. 한 선수는 덩치가 좋은데 얼굴에 전혀 표정이 없었고, 다른 한 선수는 깡 말랐는데 얼굴에 재기가 가득했다. 공을 울렸다. 시종일관 덩치 좋은 선수가 경기를 주도했지만, 깡 마른 선수의 때린 횟수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결국 심판은 깡마른 선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때, 덩치 좋은 선수 체육관의 사람들이 집단적인 반발 의사를 드러내고 격한 항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등 뒤로 돈이 오갔다. 가장 큰 축제판에 일종의 도박이 썩인 듯 했다. 프레만 해도 시골지역이라 1년에 몇 번 못보는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이 운집해 있었는데 갑자기 안타까운 심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니 축제판이 이렇게 어그러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만 같아서 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가에는 수많은 열기구 형태의 연들이 하늘을 날라다니고 있었다. 흡사 수많은 반딧불이 달로 달려가는 것만 같았다. 소원을 빌어서 하늘로 날려보내는 것, 우리도 쏨싹 선생님과 한 개를 날려보냈는데, 소원을 빌지 못했다. 몇 개의 소원을 생각해보니 또다시 나의 욕심과 허무한 감성들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서였다.
다음 날, 학교에 등교하니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힘이 좋은 아이들은 바나나 나무와 잎을 베어오고, 손놀림이 좋은 아이들은 그것을 바로 다듬어 냈다. 섬세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꽃을 꺽고, 잘러진 재료들로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끄라통(배)' 만들기였다.
뭔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어느 곳 한 군데에 끼어들 틈을 못 발견하겠다. 선생님들 한 분이 개입하질 않는데 아이들은 어느 새 몇 몇 모듬으로 나뉘어져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개인이 띄울 끄라통은 이미 하나씩 만들고, 단체로 띄울 끄라통은 모듬에 따라 재료가 공수되고 가장 상급생인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리어카에 올려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내가 이것저것 만들 때마다 '마이 쑤어이(안 예쁘다)'를 연발하던 아이들은 작업이 끝나갈 때 쯤 내 것을 하나 만들어줬다. 물론 영어선생님의 강압(?)적인 사주가 아이들한테 통했을 테지만.
밥을 먹고, 합주부와 전교생이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퍼레이드를 벌였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축제를 자신의 직접 참여하는 기분,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다. 드디어 학교 내의 연꽃 연못에 끄라통을 띄웠다. 소원을 빌라고 옆에서 야단인 아이들을 뒤로 하고 어제 빌지 못한 소원을 빌었다.
"우리가 무엇을 주려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기보다 서로가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고 잊지 않길 바랍니다"라고. 말은 쉬운데, 너무 어려운 소원이다.
져녁이 되자 동네 아이들이 집으로 몰려와 '왕친' 지역에서 하는 로이 끄라통 축제에 가자고 한다. 우리는 20명쯤 되는 아이들과 트럭에 포개져서 왕친까지 달려갔다. 어제 전야제의 행렬이 이 곳 왕친으로 이동해서 다시 거리 행렬을 진행했다. 왕친은 이 번에 로이 끄라통을 위해 선택된 지역인지 프레 시내보다 훨씬 큰 야시장이 서 있었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때때로 왕리앙 학교 아이들을 마주쳤는데 "고!"라고 부르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 중 이름은 커녕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여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정작 아이들 얼굴을 얼마나 유심하게 보나, 단상들이 다시금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왕친에는 귀가 멍멍할 정도로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곳곳에서 공연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적지 않이 흥분해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적당히 술기운이 돌아보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은 이틀동안 계속된 로이 끄라통에 이내 지쳐버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전국민이 참여하는 축제가 있나 싶다.
로이끄라통, 전교생이 준비하고 마을의 대부분 사람들이 준비해서 진행하는 축제. 내 아버지 뻘 되는 쏨싹 선생님 친구들이 웃통을 벗고 불꽃쇼를 진행하고, 할머니뻘 되는 분들이 몇 ㎞를 춤을 추며 행진했다. 왕리왕에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는 각자 손으로 만든 끄라통을 띄우고, 경찰관과 선생님도 춤을 추며 행진하는 난장. 로이끄라통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흥분을 보면서 그나마 겪어봤던 대학에서의 축제를 끄집어내봤다.
준비하는 이들만 준비하고, 연예인들의 공연 때만 반짝하는 우리 축제. 어느 새 돈에 문들고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비판받는 우리 축제. 축제 속에 주체가 사라졌다는 우리 축제. 카메라도 구경꾼도 없는 축제였지만 왕리앙 학교에서 열린 로이 끄라통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모두가 만들고 모두가 참여해서였다.
오래도록 왕리앙 학교의 로이끄라통이 이어지길, 그리고 그 때의 감성들이 우리네 삶에 평생토록 간직되길. 한국인들 사이에서 우리의 '잔치'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다시금 우리모두 어울릴 수 있는 '잔치'가 벌어지길 희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 치앙마이, 람푼, 람빵, 프레의 로이 끄라통 축제는 11월 12일이였습니다.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태국 팀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활동할 예정입니다.
2008.11.14 16:04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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